[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 청문회 도중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말했다. “법인카드 검증 이유를 모르겠다. 검증해서 뭘 어떡하려고. 어차피 탄핵시킬 건데...” 별 의미 없는 넋두리 같은 말이지만 이 발언에 최근까지 모든 황당한 사태의 본질이 담겨 있다고 본다.

보수언론은 장관급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사흘씩 하고도 야당이 대전MBC 현장 검증을 하러 간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꼬집고 있다. 맞다. ‘침대 축구’로 일관한 장관급 공직 후보자들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는 등 국회의 의사 표시를 하는 걸로 절차가 마무리 됐다. 대통령은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의 정도에 따라 공직자 임명을 강행하거나 포기했다.

물론 이런 정상적(?) 프로세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지속적으로 무너졌는데, 이 정권 들어서는 도대체 청문회를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어졌다. 이진숙 후보자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주장하듯 이런 정도의 논란이 있다면 어떤 공직도 맡아서는 안 된다.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은 사실이라면 형사적 조치의 대상이 된다. 공직자가 되더라도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2019년 10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자유한국당 영입인재 환영식'에서 황교안 대표가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에게 점퍼를 입혀주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9년 10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자유한국당 영입인재 환영식'에서 황교안 대표가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에게 점퍼를 입혀주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청문회에 임하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해명에 응해야 할 이진숙 후보자는 사실상 아무것도 해명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1만 원도 사용하지 않았다거나 “치킨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부인의 동어반복일 뿐이지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근거도 없이 아니라고만 하는 건 검증에 제대로 임하는 태도가 아니다. ‘며칠만 버티면 되겠지’하는 마음을 먹은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판국에 ‘어차피 탄핵시킬 건데 뭐하러 검증하느냐’는 여당 의원의 말은 ‘임명 강행’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하지만 3일간의 청문회에도 이진숙 후보자의 비협조적 태도 덕분에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시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이 이진숙 후보자를 임명 강행할 걸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이 정권이 그런 정권이고 대통령이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어차피 탄핵시킬 건데...”는 이 정권이 이렇게 막 나갈 수 있는 핑계다. 어떤 이들은 ‘원 포인트 릴리프’를 얘기한다. 이진숙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이 되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을 교체하고, 야당이 이를 빌미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 자진사퇴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장관급 후보자의 도덕성 논란 같은 건 신경 쓸 이유가 없는 거다. 어차피 한 달을 채우기도 어려울 사람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여당 의원의 ‘탄핵할 건데 검증을 뭐하러 하느냐’는 말은, ‘어차피 탄핵당할 거니 방통위원장은 아무나 해도 된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인 거다.

이상인 전 방통위 부위원장 탄핵소추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 이런 점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방통위법상 부위원장은 탄핵의 대상이 아니다. 야당의 주장은 이상인 전 부위원장이 위원장의 직무를 대행하였으므로 탄핵 대상이 된다는 거였다. 이에 대한 여당의 반론은 직무를 대행한 게 탄핵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거다. 탄핵 대상이 되느냐에 대한 쟁점이 있다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 자격의 문제가 있으면 헌법재판소가 각하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법적 다툼을 포기하고 이상인 전 부위원장을 바로 자진사퇴시켜 버렸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의 직무정지 상황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건데, ‘속도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뭘 그렇게 빨리 하고 싶은 건가?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방통위 부위원장은 상임위원 중 호선할 뿐이고 이상인 전 부위원장은 본질적으로 대통령 추천 상임위원이므로, 빈 자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임명하면 바로 메꿀 수 있다. 이 빈 자리에 누가 갈 것인지는 벌써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명된다. 판사 출신인 김태규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태규 부위원장은 애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장 후보자로 거명되던 인사인데, 놀랍게도 ‘공수처 무용론자’여서 후보추천위에서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결론이 날 수 없었다. 그러니 이후에 권익위 부위원장으로 보낸 것인데, 여기서의 활약상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결론에서 보는 바와 같다. ‘권익위가 아니라 건익위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게 한 장본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김태규 부위원장은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이 그랬듯 방송과 통신에 전문성이 있는 인사로는 볼 수 없는데, 그럼에도 정권이 방통위로 보내는 걸 보면, 결국 뭘 시킬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볼 수 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을 임명 강행하고 대통령 추천 상임위원을 지명하면 현재의 방통위 ‘0인 체제’는 신속하게 ‘2인 체제’로 복구된다. 그러면 여기서 원래 하려고 했던 방문진 이사진 교체 등을 교체하고 장렬하게 산화하면 그만이라는 식인 거다.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지명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 신태섭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지명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 신태섭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보수언론은 야당의 공세를 ‘MBC 지키기’ 등으로 부르지만 이러한 과정만 봐도 이런 사태의 본질은 ‘MBC 장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MBC 장악’이라는 걸 아예 부정하기 어려우니 ‘노영방송’ 등을 주장하며 ‘정상화’라는 프레임을 들고 나오지만, 군색한 논리다. MBC의 어떤 편향 등을 지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권력이 직접 나서서 이런 방식의 연속된 무리수를 통한 방송사 장악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거다.

‘전임 정권이 먼저 공영방송을 장악했기에 그걸 바로잡는 것뿐’이라는 주장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전임 정권 역시 무리수를 뒀을 수 있다. 그러나 전임 정권도 역시 ‘정상화’ 논리를 내세웠다. 이러면 아담과 이브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권력이 직접 나서 작전지휘를 하는 방식으로 방송사를 장악한 시초는 누구인가? 그것은 좌파를 솎아내야 한다고 대놓고 주장하던 이명박 정권이다.

보수가 만든 전통이면 적어도 보수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멀쩡한 사람을 보내 합리적으로 제도를 재설계하고 특정 정파가 권력을 잡더라도 공영방송이 흔들리지 않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는 척이라도 해야 그 다음에 오는 정권이 감히 악습을 되풀이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정권은 그런 것엔 관심이 없고 ‘상대가 막 나가니까 나도 막 나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방송 장악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전쟁에선 이런 태도를 ‘상호확증파괴’라고 부르는데, 그 결과는 공멸이기에 합리적 지휘부라면 이 시나리오를 피해가려고 한다. 그런데 이 정권은 오히려 ‘파괴’를 밀어 붙인다. 모두 망하기를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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