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채 해병 특검법'의 재표결을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대통령이 격노하면 죄냐"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격노'와 '수사외압 의혹'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 필요성과 법적 책임을 사단하려는 여론전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윤 대통령의 '격노'가 촉발한 대통령실·국방부·해병대의 '호들갑'을 밝히는 게 수사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국민의힘은 '채 해병 특검법'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고 이탈표를 단속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특검 찬성 입장을 밝힌 의원들에 대해 "당을 떠나라"고 공격하는 등 총선 참패 이후에도 민심을 거스르고 있다는 언론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성일종 사무총장, 왼쪽은 정점식 정책위의장.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성일종 사무총장, 왼쪽은 정점식 정책위의장. (사진=연합뉴스)

28일 열리는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채 해병 특검법' 재표결 안건이 상정된다. 특검법이 재의결되려면 구속 수감된 윤관석 의원을 제외한 재적 의원 295명 중 197명(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범야권 의원 180명 전원이 찬성하면 국민의힘에서 17명 이상의 이탈표가 나와야 특검법이 통과된다. 국회 본회의에 출석하지 않는 국민의힘 의원이 많아질수록 재적의원이 줄어 특검법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는 변수도 있다. 

현재까지 국민의힘에서 공개적으로 특검 찬성 입장을 나타낸 의원은 김웅·안철수·유의동·최재형·김근태 의원 5명이다. 재표결은 무기명 비밀투표로 이뤄진다. 22대 총선에서 낙선·낙천한 국민의힘 의원은 58명이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전 의원총회를 열어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할 예정이다. 

국민의힘 성일종 사무총장은 지난 26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대통령이 문제가 있다고 격노하면 안 되나. 격노한 게 죄인가"라고 말했다. 앞서 신동욱 국민의힘 국회의원 당선자도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대통령이 격노하면 안 되냐"고 말한 바 있다. 

성 총장은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나온 사람들한테 벌을 주라고 기소 의견을 낸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인데, 대통령이 노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성 총장은 윤 대통령이 사단장이 아니라 하급 간부를 처벌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라며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해병대 사령관에게 이 같은 부분을 정확하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첩 보류에 대통령 지시는 없었다'는 이 전 장관의 주장과 배치된다. 

28일 동아일보는 사설 <“대통령 격노한 게 죄냐”고… 그게 촉발한 모든 ‘호들갑’이 문제>에서 ▲2023년 7월 31일 윤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 이후 용산·국방부·해병대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이 대통령실 전화를 받은 정황이 있다 ▲이 전 장관은 해병대 수사보고서의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해병대 수사단 브리핑이 취소됐다 ▲대통령안보비서관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통화했다 ▲2023년 8월 2일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자료를 이첩하자 국가안보실 2차장과 공직기강비서관까지 나서 국방부·해병대 관계자들과 통화했고 자료는 회수됐다 등 수사외압 의혹의 얼개를 그렸다. 

동아일보는 "이렇게 호들갑을 떤 이유를 밝히는 게 외압 의혹 수사의 핵심이다. 그러려면 윤 대통령이 화를 냈는지보다 누구에게 어떤 지시를 했는지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그런데 '격노가 죄냐'는 성 총장의 발언은 윤 대통령의 격노 자체가 외압의 본질이고 처벌 대상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이다. 법적 쟁점을 흐리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성 총장 주장대로 하급간부 처벌 문제를 윤 대통령이 문제 삼은 것이라면 그것 역시 진위가 가려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하지만 진상을 알고 있을 만한 사람들은 모두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며 "이들의 침묵과 회피는 용산과 군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더욱 키울 뿐"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 전 장관이 윤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 밝히지 않고 "격노를 접한 사실이 없다"고만 하고 있고, 김 사령관은 'VIP 격노설'이 담긴 본인 녹취파일이 발견됐는데도 해명이 없다고 짚었다.

지난 25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야당·시민사회 공동 '해병대원특검법 거부 규탄 및 통과 촉구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5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야당·시민사회 공동 '해병대원특검법 거부 규탄 및 통과 촉구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사설 <억울한 죽음·항명죄, 채 상병 특검법은 21대 국회 책무다>에서 "여당 내에선 '대통령이 격노한 것이 죄냐'(성일종 사무총장), '격노했다고 수사대상인가'(전주혜 비대위원)라는 물타기성·적반하장식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며 "이런 말은 윤 대통령 격노 후 대통령실·국방부가 사단장 수사 이첩을 보류시키고 징계로 마무리하려 한 축소·은폐 정황과 배치된다. 살아 있는 권력인 대통령실을 예외 없이 공정하게 수사하려면 특검 도입을 피할 수 없다는 당위성도 커지고 있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21대 국회에서 특검법이 폐기되면 192석 범야권이 22대 국회에서 재발의할 예정이다. 정부·여당이 막으려 할수록 성난 민심을 마주할 게 자명하다"며 국민의힘의 각성을 촉구했다. 경향신문은 내부 단속에 주력하는 국민의힘에 "총선 민심을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거스르려는 건지 개탄스럽다"며 "여당은 굴종적 당정관계 속에 ‘윤심’만 따랐던 과거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민의힘 원내지도부와 윤재옥 전 원내대표 등이 표단속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윤 전 원내대표는 경북 지역을 돌면서 연락이 닿지 않는 의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 전원에게 특검법의 부당함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 원대 부대표단은 '1인당 최소 의원 8명씩' 담당을 나눠 본회의 참석을 독려하고 있다. 

한국일보 김회경 논설위원은 칼럼 <당론과 소신투표>에서 "여당에선 당론과 다른 견해를 밝힌 이들에게 '당을 떠나라', '소신이 아닌 몽니' 등의 험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며 "국회의원은 각 개인 자체가 독립적 헌법기관"이라고 강조했다. 김 논설위원은 "헌법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제46조 2항)고 규정하고 있고, 국회법은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제114조의2)고 명시하고 있다"고 했다. 

김 논설위원은 과거 민주당에서 공수처 설치법 표결에서 기권표를 행사한 금태섭 의원을 당론 위반으로 징계하고,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을 색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채 상병 특검법 표결을 앞둔 여당 내 표 단속 움직임도 예외일 수 없다"고 했다. 김 논설위원은 "당론이 '내 편이냐, 네 편이냐'를 가르는 잣대나 당 주류의 기득권 강화 수단으로 사용될 때 정치는 물론 의원들의 소신은 설 자리를 잃는다"고 했다. 

채 해병 실종 3시간 뒤인 2023년 7월19일 오전 11시40분께 채 해병이 소속된 해병대 포병 7대대의 대대장인 이아무개 중령과 임성근 사단장이 나눈 통화 내용 (한겨레TV '고 채 상병 죽음의 공동정범' 갈무리)
채 해병 실종 3시간 뒤인 2023년 7월19일 오전 11시40분께 채 해병이 소속된 해병대 포병 7대대의 대대장인 이아무개 중령과 임성근 사단장이 나눈 통화 내용 (한겨레TV '고 채 상병 죽음의 공동정범' 갈무리)

한겨레는 채 해병 순직사건 피의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이 수중수색을 원했다는 정황이 담긴 통화내용을 보도하며 특검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겨레는 지난 26일 유튜브채널 한겨레TV를 통해 '고 채 상병 죽음의 공동정범'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채 해병이 숨진 지난해 7월 19일, 해병대 1사단 산하 7여단장 박 모 대령과 포7대대장 이 모 중령의 통화내용 등이 담겼다. 당시 박 대령이 "사단장님이 (오늘)너희 1개 중대 보신다고 하셨는데 몇 중대로 안내하면 되냐”고 묻자 이 중령은 "그 물속에 좀 들어가 있는 거 보려면 간방교 일대로 가면 될 거 같다"고 답했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수중수색 지시가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임 전 사단장은 수색작업과 채 해병 사망사건이 '언론에 어떻게 비칠지'를 최우선으로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채 해병이 숨지기 전 공보정훈실장이 언론에 보도된 수중수색 장면 등을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내자 임 전 사단장은 "훌륭하게 공보활동이 이뤄졌구나"라고 칭찬했다. 이후 채 해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고, 나머지 장병들이 구조됐다는 보고를 받은 임 전 사단장은 포7대대장과 통화에서 "(생존장병들)지금 다 어디 있냐. 얘들 언론 이런 데 접촉이 되면 안 되는데...트라우마 이런 건 나중 문제고 애들 관리가 돼야 하거든"이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28일 사설 <공보만 신경, 장병 안전은 뒷전이었던 임성근 사단장>에서 "휘하 장병들의 생명·안전보다 사고가 언론에 어떻게 비칠지부터 걱정한 것이다. 지휘관으로서 기본적 자질조차 의심되는 태도"라며 "이런 임 사단장을 보호하기 위해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전방위적으로 움직였다는 게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이라고 썼다. 한겨레는 "임 사단장은 채 상병 사망 원인과 수사 외압을 규명하는 데 핵심 인물이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 발생 열달이 지나서야 소환조사했다"며 "수사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특검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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