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부담이 되는 사건 및 상황에 대해 윤석열 정권은 본격적인 ‘방탄’ 모드로 들어가기로 한 모양이다. 채상병 사건은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는데, 이종호 전 대표는 공익신고자 A 씨와의 대화에서 언급된 ‘VIP’에 대해 ‘해병대 사령관’이라고 했다가 ‘김건희 여사’라고 하는 등 횡설수설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은 이종호 전 대표에 대한 수사가 엄정하게 진행될 경우, 이 사건이 권력 핵심부에 대한 의혹으로 직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종호 전 대표의 ‘횡설수설’은 공익신고자 A 씨가 어디까지 폭로할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기존의 해명과 새로운 보도 모두를 충족하는 설명을 내놓으려다 빚어지는 일로 보인다. 이종호 전 대표가 주장하는 ‘VIP 해병대 사령관설’은 ‘멋쟁해병’ 단체 채팅방 멤버인 청와대 경호처 출신 B 씨의 주장을 자신이 A 씨에게 전달해준 것뿐이라는 주장의 연장선이다. 평소 B 씨가 해병대사령관을 VIP라고 불렀기에 생긴 오해라는 거다.

한겨레 7월 12일 자 보도
한겨레 7월 12일 자 보도

하지만 한겨레 등은 이종호 전 대표가 평소 윤석열 대통령을 ‘V1’, 김건희 여사를 ‘V2’로 불렀다는 A 씨의 주장을 보도했다. 여기엔 식사 자리 등에서 이종호 전 대표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로비와 관련한 전모를 밝혔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종호 전 대표가 언론에 “VIP는 김건희 여사”란 취지의 설명을 추가로 한 건 이 때문인 걸로 보인다. 한국일보 관련 보도를 보면 이종호 전 대표는 ‘A 씨와 대화할 때의 VIP는 김건희 여사였고 B 씨와 대화할 때의 VIP는 해병대 사령관’이었다는 취지로 설명한다. B 씨 얘기를 옮기다 보니, 해병대 사령관을 의미하는 VIP 얘기를 A 씨가 김건희 여사로 알아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로 이해된다.

누가 보더라도 사후에 끼워맞춰 만든 변명으로 보이는 논리다. 이런 변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건희 여사를 VIP로 칭하는 녹취 등이 나오면 “VIP는 해병대 사령관”이라는 논리가 깨지기 때문이다. 즉, 이 해명은 오히려 실제 김건희 여사를 VIP로 지칭하는 대화가 실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데 보통 ‘VIP’는 대통령을 지칭하지 영부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 영부인을 ‘VIP’라고 불렀다면, 김건희 여사와 그만큼 긴밀하고 특수한 관계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 등은 공익신고자 A 씨가 청와대 경호처 출신 B 씨와 지난 6월 말 통화에서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의 배후는 김용현 경호처장’이라는 취지 주장을 한 걸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 말은 ‘멋쟁해병’ 채팅방이 공개된 시점이다. 연합뉴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종호 전 대표로부터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의 배후에 ‘VIP’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A 씨는 B 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임성근 전 사단장을 대통령실이 보호하려고 한 것 같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딱하다’라고 A 씨가 말한 데 대해 B 씨는 “그 XX가 오버했지”라고 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개입설에 대해선 별다른 반응없이 박정훈 전 단장을 공격한 것이다.

B 씨는 임성근 전 사단장과 문자를 주고 받을 정도의 친분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구명 로비의 실체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 올해 6월 통화에서 ‘김용현 배후설’을 언급했다면 모종의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연합뉴스는 “로비 의혹의 실체를 숨기려 김 처장에게로 시선을 돌리려고 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라고 기사에 쓰고 있다.

그간 공수처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바로 아래에 해당하는 인물들에 대한 수사는 어떻게든 진도를 빼왔지만, 대통령실로 향하는 수사에 대해선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에 대해선 어떤 논리로 봐도 엄정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공수처가 김용현 경호처장까지 수사 대상에 넣는다면 지금으로선 그 정도도 상당한 성과다. 그러나 앞서 B 씨의 A 씨를 대상으로 한 ‘플레이’가 의심되는 언급은, 마지막의 마지막 단계엔 김용현 처장을 ‘꼬리 자르기’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기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한다.

[단독] 검찰도 주목한 '김 여사-이종호' 관계…서면질의 있었다 / JTBC '뉴스룸' 7월 10일 보도화면 갈무리
[단독] 검찰도 주목한 '김 여사-이종호' 관계…서면질의 있었다 / JTBC '뉴스룸' 7월 10일 보도화면 갈무리

공수처는 권력 핵심부로 직행할 수밖에 없는 이종호 전 대표 관련 수사 앞에서도 영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공수처가 최근 해병대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신청한 통신 영장은 줄줄이 기각됐는데, 법조계 관계자들은 통신 영장이 연달아 기각되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수처 수사팀의 검사 및 수사를 총괄하는 부장검사가 이종호 전 대표를 과거 변호한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회피 신청을 했다는 보도는 황당한 기분이 들 정도다. ‘멋쟁해병’ 단체 채팅방이 공개된 건 6월 26일인데, 7월 4일 공익신고자 조사에는 문제의 검사가 참여했다고 한다. 어떤 기준을 갖고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또, 빈 자리는 어떤 성향의 검사가 채우게 되는 것인가? 우려가 되는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수처 수사를 지켜보고 결과가 부실하면 특검을 먼저 주장하겠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봐도 이미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수처뿐만이 아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조사하는 검찰도 황당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보도를 보면 이 문제로 조사를 받은 행정관이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와의 만남 직후 명품백 반환을 지시했지만 이행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행정관이 뒤집어쓰기로 한 것인가? ‘아차, 깜빡했네’로 퉁치고 김건희 여사 조사는 서면이나 방문조사로 갈음하고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은 ‘침대축구’ 모드를 계속 이어가려는 것 아닌가? 이러니 특검을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탄은 그만두고 어떤 형태로든 특검을 수용해야 한다. 상식으로 보면 이미 수용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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