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처리에 여야가 합의했다고 한다.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국회의장과 관련단체가 협의해 3명을, 여야 각 4명을 추천하는 것에서 국회의장 추천 1명 여야 각 4명을 추천하는 걸로 바꾸고 직권조사 권한 및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권을 삭제하는 것 등이 핵심이다.
이대로 법안이 처리되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법안이 국회로 되돌아온 지 석달여 만에 이태원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합의에는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독소조항’을 언급한 게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여야 합의로 수정안을 마련하면 수용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갖고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독소조항’이라 한 것은 맞는 주장도 아니다. 대통령은 특별조사위원회가 수사기관에 압수수색을 의뢰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영장주의에 어긋난다는 취지로 표현했는데, 해당 조항에 따르더라도 압수수색 영장은 검사가 청구하고 법관이 내주도록 돼 있고, 이 조항은 이미 이전의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등에도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이런 이유로 자신의 거부권 행사를 정당화한 것은 합리적 태도라 볼 수 없다.

그런데 어쨌든 이러한 발언 덕에 해당 조항을 제거한 수정안 마련을 전제로 ‘독소조항을 제거했으니 합의 처리해야 한다’는 논리를 여당이 거부할 수 없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합의는 이러한 논리적 구조의 안에서 이루어졌다. 수정안은 별도의 법안이므로 대통령은 여전히 형식적으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앞서 ‘독소조항을 제거했다’는 명분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뿐이다.
물론 합의로 특조위의 권한이 축소된 것에 대한 걱정은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문제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여전히 진술서 및 자료 제출 요구, 사실조회 및 동행명령권 등이 수정된 법안에도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도 법안이 합의 처리됐으니 만큼 정부 여당의 진상규명을 위한 전폭적 협조를 기대한다는 기류다. 즉, 특조위의 조사 대상이 될 정부 기관 등이 자료 제출에 비협조적일 경우 압수수색을 의뢰하는 등의 강제적 수단이 사라진 대신, 법안을 합의 처리했다는 명분으로 밀어 붙이는 방식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불안감은 남는다. 정권이 ‘합의 처리’했다는 명분을 얼마나 존중할 것인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스타일’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했다. 과거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특조위 구성에서부터 여야와 유가족이 대립하게 되는 경우의 수도 있을 수 있다. 여당이 말도 안 되는 인사들을 특조위원으로 추천하면 시작 단계에서부터 진상규명은 어그러지기 시작할 거다. 이런 모양새가 되지 않으려면 권력의 정점에서부터 진상규명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하다. 성과를 기대하기 위해선 대통령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거다.
당장은 채상병 특검에 대한 태도를 보는 것도 변화의 가늠자가 될 수 있다. 영수회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언급한 특검 등에 대통령은 답하지 않았다. 작정하고 무시한 것인지 다른 주제에 대한 길고 장황한 답변을 하다보니 시간이 모자랐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까지 고려한 의사 일정을 고려한다. 이것 자체가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는 게 변화의 시작이다.

‘윤석열 리더십’의 변화를 전망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은 민정수석실의 부활이다. 명칭이 법률수석실이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수석비서관을 누가 맡게 되는 것인지는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것 같다. 언론은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이나 박찬호 전 광주지검장 등을 유력하게 거론한다. 대통령실은 민심 청취를 위해선 민정수석 부활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검사 출신이 민심 청취에 유리한 이유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앞서 거론된 인사들 중 한 사람은 ‘우병우 사단’, 또 한 사람은 ‘윤석열 사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이 ‘민심 청취’에 주력할 인물인지 아니면 사정기관 장악과 주요 수사 대응에 골몰할 인물일지는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특별감찰관 임명이나 제2부속실 설치에 있어서 진전이 있어야 속아주기라도 할 것인데 대통령이 직접 거론한 이 두 가지 의제에 있어서도 ‘검토중’ 이상의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권력을 견제하는 성격의 조직 및 기관은 없거나 유명무실하고 ‘비선 논란’이 벌어져도 대통령은 별도 조치를 하지 않는다. 김건희 여사와 관계된 수사는 지지부진한 가운데 검찰이 소환조사를 검토했다더라는 식의 ‘카더라’만 난무한다. 이러한 가운데 대통령실을 겨냥하게 될 특검에는 부정적 의사 표시로 일관하면서 검사 출신이 책임을 맡는 민정수석실을 부활시키겠다고 하면, 대통령의 변화를 믿어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데,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홍철호 정무수석은 대통령에게 “국민들 눈물이 있는 곳에 대통령이 계셔야 한다”고 했다는데, 거기서 그 ‘국민들’은 과연 누구일까? ‘대통령의 식구’에만 그치는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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