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른바 ‘영수회담’은 의제를 둘러싼 줄다리기로 진도가 나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의제와 일정을 논의할 양측의 실무회동은 대통령실 정무수석 교체 등으로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대부분의 언론은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은 절충을 전제로 합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나머지 대목에 대해선 야당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을 의제의 가짓수를 늘려가는 가운데, 이를 대통령실이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한 상태다.
채상병 특검에 이어 새롭게 거론되고 있는 것들은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 등에 대한 사과, 방송3법 등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법안 및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 등이다. ‘영수회담’의 특성상 논의할 의제가 많아지면 성사 가능성이 낮아지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이 계속 테이블에 의제를 추가하는 이유는 나름의 처지 때문일 거다. 첫째, 당내에서 특정 정치인들이 자기 입지 강화를 위해 이런 저런 요구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상황에 지지자들이 이에 호응하는 상황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런 당이다.
둘째, 다른 정당과의 관계를 고려한 면도 있다. 가령 방송3법의 경우는 개혁신당 등 다른 야당도 강하게 요구하는 사안이다. 조국혁신당은 ‘범야권 연석회의’를 열어 ‘영수회담’ 테이블에 올릴 야권의 의제를 공식적으로 논의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수용하진 않았는데, 새로운 국회가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범야권 연석회의’라는 절차는 그렇다 치더라도, 특정 방향의 요구가 존재하는 걸 정치적으로 완전히 깔아 뭉개고 가기도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 - 이재명 대표 회담 (PG) [연합뉴스]](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404/308631_212060_1857.jpg)
그런데 ‘영수회담’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누구보다도 윤석열 대통령의 입지에 도움이 될 만한 이벤트다. 이런 정무적 판단이 가능하다면 의제와 관련된 부분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요구를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에서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카운터파트인 이재명 대표도 그 점에 포커스를 맞춰 야권 내에서도 ‘영수회담’ 정국을 영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그 ‘전폭적 수용’의 대상이 무엇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했다는 사과 등은 가능할까? 윤석열 대통령은 자기 확신과 고집이 강한 리더십의 소유자다. 한겨레는 25일 “윤 대통령이 그동안 자신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 가감 없이 얘기를 해왔는데, 정상이 만나는 자리에서까지 사과하고 시작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대통령실 관계자의 이러한 인식은 곧 대통령의 인식이기도 할 것인데, 지금까지 대통령의 발언과 태도에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 가감 없이 얘기를 해왔다’는 느낌을 받은 국민은 거의 없을 거다. 그럼에도 이렇게 얘기를 한다는 것은 ‘부족한 부분’이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거나, ‘가감 없이 얘기를 해왔다’는 것에 대한 심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전자라면 대통령이 사과할 일 없다고 생각할 거고, 후자라면 사과를 하더라도 대다수 국민에게 사과로 인식되지 않을 거다. 그러니 사과는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면 결국 채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특검이 남는다. 채상병 특검 수용은 여당 내에서도 필요성이 제기되는 사안이다. 이 기회에 대통령이 이에 대해 파격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 오히려 정치적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25일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이 쓴 칼럼이 그 대목을 지적한다. <‘채·김 특검 수용 결단’은 몽상인가>란 제목의 이 글에서 양상훈 주필이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채상병 특검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여당에서 이탈표가 나와 재의결 될 수 있는데 그러면 정권 전체가 깊은 내상을 입게 된다. 그러나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하면 오히려 ‘약점’은 ‘강점’이 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되느냐에 대해선 판사들도 판단이 다를 테고 대통령은 임기 동안 불소추특권도 갖는 데다 국민들도 ‘사단장에게까지 과실치사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채상병 특검 수용이라는 파격은 ‘영수회담’이라는 기회를 통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양상훈 주필은 “윤 대통령이 특검 수용 결단을 내릴 가능성은 0.1%도 안 될 것이다. 한 정치인은 ‘0′이라고 했다. 그는 필자와 같은 생각을 '몽상'이라고 했다”고 썼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태까지 공수처장 후보 지명을 미루고 있는데, 새로운 국회가 시작되고 원구성 논의 등이 길어지면 공수처장 후보가 뒤늦게 지명되더라도 인사청문회가 늦어져 새로운 공수처장이 수사를 이끄는 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대통령이 수사를 뭉개기 위해 공수처장 임명을 지연시키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이런 태도를 보면 채상병 특검에 대한 전격 수용은 기대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영수회담’과 관련한 여러 정치적 계산을 떠나 채상병 사건은 대통령실이 직접 움직여 당시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경찰 이첩을 뒤집게 한 흔적이 너무나 역력하다는 점에서 특검 사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수사 전문가인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영수회담’의 성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상을 제대로 밝히기 위해 특검을 수용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영수회담’의 성과는 덤으로 따라오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말이다. 그렇게라도 전향적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 이미 여러 대 때렸는 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유권자 입장에선 더 세게 때리는 수밖에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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