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민생은 외면하고 방탄에 올인한다’는 평가는 이 정권이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상시적으로 해오던 비난이다. 그런데 최근 벌어진 일을 보면 과연 그런 주장을 할 입장이 되기는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채상병 특검법은 결국 폐기됐다. 여당에서 상당한 이탈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언론은 당 지도부의 끈기있는 단속과 공공기관장 인사 등을 앞세운 정권 차원의 회유가 먹힌 것이라고 분석한다. 채상병 특검의 정당성 및 필요성과는 별개로 이탈표 규모가 상당할 경우 윤석열 정권은 정치적 위기에 빠지게 되고 심지어는 탄핵도 걱정할 일이 된다는 논리가 힘을 발휘했다는 해석도 있다. 여의도 사람들끼리는 끄덕거릴 얘기일지 모르나 일반 국민들 입장에선 가슴을 칠 얘기다.

찬성, 반대, 무효표의 분포를 분석한 결과를 두고 오히려 범야권에서 이탈표가 나온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천 과정에 대한 반발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의원들이 상당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셈을 해보면 이런 지적은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범야권에서 이탈표가 나온 게 사태의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채상병 특검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음에도 오로지 자신들만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대통령을 감싸는 ‘방탄’에 나선 여당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다.
더군다나 여당은 채상병 특검 재의결 저지에 몰두한 나머지 마지막 본회의에서 그간 미뤄둔 숙제를 해결해 온 관행 아닌 관행조차 무너뜨렸다. 여야가 이미 합의했거나 절충하기로 한 법안의 상당수를 여당의 상임위 보이콧 덕에 처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채상병 특검법 처리와 나머지를 분리 대응하기로 했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던 법안들이다. 여당이 그러지 않았던 것은 결국 ‘방탄’ 이외에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조선일보가 29일자 사설에서 “특검법과 민생법이 무슨 상관이라고 한꺼번에 거부하나”, “대통령이 이렇게 하기를 원했다는데 국민의힘은 민생보다 대통령 뜻이 더 중한가”라고 썼을 정도다.
이 문제는 감춘다고 감출 수 없고 뭉갠다고 뭉갤 수 없는 의혹이다. 당장 29일 언론 보도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전 장관 간의 통화 사실이 드러난 대목을 보자. 대통령실과 여당의 주요 인사들은 대통령과 장관 또는 장관과 주요 기관장 등 인사들이 상시적으로 통화를 하면서 의견 조율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통화’와 ‘외압’을 분리하고 후자를 부정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문제는 통화 여부가 아니라, 통화가 어떤 맥락에서 이뤄졌다고 볼 것인가에 있다. 한겨레 29일 보도를 보면 대통령 또는 대통령실은 사건의 주요 국면마다 이종섭 전 장관에게 전화를 했고 그 이후 사태는 급물살을 탔다.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 혹은 대통령실로부터 지시를 받거나 보고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일 해외 출장 상태인 이종섭 전 장관과 직접 통화한 이후 박정훈 대령에 대한 보직해임 처분이 이뤄졌고 경찰로 넘어간 기록을 회수하기 위한 움직임이 전면화된 점 등은 그냥 보아 넘기기 어려운 내용이다.
의혹을 밝히려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앞서 다른 글에서도 수차례 반복해서 지적했듯 정권과 여당은 수사기관의 수사에 협력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피해가려고 하거나 오히려 견제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종섭 전 장관이 처한 상황을 보면 대통령이 이종섭 전 장관에 대한 공수처 수사 등에 대해 견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이종섭 전 장관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 그 다음 조사 대상자는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걸 그대로 용인하지는 않겠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해진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여당을 움직여 채상병 특검 재의결을 막은 후 야당이 일방 처리한 법안 상당수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대상인 5개 법안 중 세월호참사피해구제지원특별법만 공포됐고 나머지는 국무회의에서의 건의에 따라 실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어졌다. 국회에 재의를 요구한 것이라지만 본회의를 열 물리적 시간이 없어 실제로 재의를 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21대 국회로 되돌아 온 법안을 22대에서 재의결할 수는 없기에 거부권 행사의 대상이 된 법안들은 그대로 폐기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됐다.
과연 권력의 자의적이고 편의적 운용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방탄’을 정당화하기 위해 야당의 횡포를 강조하는 간편한 해법을 선택한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다수 유권자들은 ‘이탈표’ 규모의 성격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점을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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