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필리버스터, 단독 처리, 거부권 행사의 답답한 국면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다. 거대 양당이 지배하는 한국 정치에서 이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혼란스럽다.

채상병 특검을 기필코 막겠다는 여당의 스탠스로 보면 의석 수가 모자란 상태에선 무제한 토론에 나서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하는 등의 유권자가 보기에 그럴듯한 정치적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여당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별로 그럴 의지는 없는 것 같다. 

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채상병특검법안'이 상정되자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를 시작하고 있다(연합뉴스)
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채상병특검법안'이 상정되자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를 시작하고 있다(연합뉴스)

가령 “채상병 특검은 탄핵의 교두보일 뿐”이라는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의 주장에 대해 생각해보자. 유상범 의원뿐 아니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당권주자들도 대개 이런 주장을 한다. 그런데 특검이 바로 탄핵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지금 시점에선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특검 수사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한 법 위반이 확인돼야 탄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대통령 격노설’ 자체를 부정했다. 이전 국면에서 대통령실이나 여당 관계자들이 “수사권 없는 박정훈 대령이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게 개정 군사법원법 취지에 맞지 않아서” 또는 “하급 간부들까지 처벌하는 것은 과하다고 봐서” 의견을 제시한 차원이었다고 한 것보다도 한 발짝 더 후퇴한 거다.

아마 대통령실의 후퇴는 방금 두 가지 논리가 모두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다들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법원법 개정 이후에도 군은 사망 사건에 대해 박정훈 대령이 이끈 해병대수사단의 방식을 계속 적용해왔다. 이는 최근의 훈련병 사망 사건에도 마찬가지였다. ‘하급 간부 처벌 반대론’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게, 결국 국방부 조사본부가 경찰로부터 수사 자료를 회수해 재검토한 결과 혐의 대상자에서 제외된 것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직급이 놓은 인사들이다. ‘하급 간부’ 2명에 대해선 그대로 혐의가 적용되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항명을 한 것인가? 애초에 대통령이 수사 내용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개입이다. 따라서 ‘격노설’을 어떤 형태로든 인정하면 용산은 난감해진다. 그러니 ‘격노설’ 자체를 부정하는방향으로 후퇴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검은 탄핵의 교두보”라고 하면, 오히려 대통령의 법 위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하는 발언으로 느껴진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면 걸릴 게 있고, 그러면 탄핵이 현실이 될 수 있으니 반드시 막아야 된다는, 그런 얘기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이러면 특검의 당위는 더 강화된다. ‘우리 편’을 향한 위기조장용 메시지 발신에만 몰두한 나머지 전체 메시지의 정합성이 흐트러진 것이다.

이제 필리버스터가 종료되면 채상병 특검법은 본회의를 통과할 거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거다. 그럼 재의결 여부가 관건이 되는데 쉬워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108석 중 8명 이상의 이탈이 필요한데 여당은 이번에도 상당히 강력한 표단속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변수가 될 수 있는 건 조국혁신당의 입장이다. 조국혁신당은 현재 논의 중인 특검법의 비교섭단체 추천권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이러면 범야권에는 개혁신당이 추천권을 갖는 방법, 아예 추천 방식을 수정한 새로운 특검법안을 발의하는 방법 등 다양한 카드가 생긴다. 여기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게 ‘한동훈발 제3자 추천 특검론’이다. 범야권이 합의해 개혁신당의 천하람 의원 등이 주장한 것처럼 대한변협 등이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내용의 특검법을 새로 발의하기로 한다면,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한동훈 전 위원장 측은 ‘제3자 추천’이 반드시 대법원장 추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 바 있다. 특검 추진에 진정성이 있다면 대한변협이 추천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 입장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동훈 전 위원장은 2일 보도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변협이 해도 논란이 있을 거라 대법원장 추천이 가장 깔끔하다. 전례도 있고, 조희대 대법원장은 민주당이 당론으로 인준한 분이다. 헌법재판소에서 (대법원장 추천이 삼권분립에 위배되는)위헌이 아니라는 결론도 났다”고 했다.

이건 제대로 된 답변이라 볼 수 없다. 첫째, 대법원장 추천도 ‘심판이 선수를 결정하느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둘째,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대법원장이든 대한변협이든 특검 추천권은 입법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거다. 셋째, 대법원장 인준에 대한 찬성 여부는 여기서 논할 문제가 아니다. 대법원장으로서의 인준이지 특검 추천권자로서의 인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제3자 추천 특검론’은 특검을 막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건가?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민형배, 장경태, 전용기 의원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비위 의혹'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제출하는 모습(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민형배, 장경태, 전용기 의원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비위 의혹'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제출하는 모습(연합뉴스)

여당이 이러한 자해적 정치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제1야당이 대안적 정치세력으로서의 모습을 보이면 정권 교체의 가능성은 배가될 것이다. 지금 제1야당의 가장 큰 약점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 문제이다. 수사와 재판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으니 최대한 이 변수를 최소화하면서 다른 의제를 들고 정국을 돌파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느닷없이 검사 탄핵을 추진한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 대상은 이재명 전 대표 관련 사건 수사에 손을 댄 검사들이다. 이재명 전 대표가 연임 의사를 밝혀야 하는 상황에, 방탄이니 사법방해니 하는 얘기가 안 나올 수 없다. 한겨레는 4일 사설에서 “이 전 대표 수사·기소에 관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탄핵소추돼서도 안 되지만, 같은 이유로 비위 의혹을 덮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이 의혹들 중엔 소문 수준의 얘기들도 포함돼 있다는 거다. 심지어 무슨 대변 얘기까지 탄핵 사유로 돼 있다. 이게 맞나?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소추안 처리로 직행하는 게 아니라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탄핵조사 등 절차를 거칠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회 다수당이 더불어민주당인 상황에서, 유권자들 눈에 그게 어떻게 보이겠는가? 검찰이 자정능력이 없고 의혹이 제기되어도 감찰도 안 하고 죄가 돼도 ‘99만원 세트’로 빠져나가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맞다. 

그러나 이건 정치 얘기다. ‘빌드업’이 문제란 것이다. 최소한 수사 기관을 통한 시정을 충분히 모색한 후에, 이게 진행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인 탄핵을 꺼낼 수밖에 없게 됐다는 식의 얘기가 가능해야 하지 않나? 그게 없으니 뭐가 그리 급하냐는 생각을 안 할 수 없게 되고, 그러면 결국 ‘방탄’ 얘기로 갈 수밖에 없게 되는 거다. 정권과 여당도 이상하지만, 스스로 약점을 노출하면서 함정으로 걸어들어가는 제1야당의 이런 행보도 이해가 안 된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견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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