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기간이 전례없이 '10일'로 단축된 배경에 법체처의 하루짜리 검토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법제처는 최민희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상임위원 내정자의 결격사유에 대한 법령해석이 수개월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은 상위법과 충돌하는 등 국회 입법권 침해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15일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방송통신위원회의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과 관련해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과 이상인 위원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15일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방송통신위원회의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과 관련해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과 이상인 위원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6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법제처는 지난 15일 방통위에 '입법예고 기간 단축 확인서'를 보냈다. 법제처는 이 문서에서 "수신료를 분리 징수함으로써 국민이 수신료 징수 여부를 명확히 인지하여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국민이 겪는 불편을 신속하게 해소할 필요가 있는 바, 입법예고 기간을 단축하는 것에 대하여 협의하였음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방통위가 법제처에 입법예고 기간 단축을 위한 협의를 요청한 날짜는 14일이다. 당시 방통위는 '수신료를 분리 징수함으로써 수신료 징수 여부를 명확히 인지하여 납부할 수 있게 하는 등 국민 불편을 해소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신속한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법제처가 방통위 의견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검토 의견을 하루 만에 내놓은 것이다. 현행 행정절차법상 입법예고 기간은 통상 '40일 이상'이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한겨레에 "KBS가 방송법 시행령 개정 절차의 진행을 정지시켜달라며 헌법재판소에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는 법적 논란이 큰 중대사안인데도, 법제처는 방통위 주장을 그대로 '복붙'한 검토 의견을 내며 입법예고 기간 단축을 허용해줬다"며 "수신료 분리징수가 정권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공영방송 장악 프로젝트의 일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라고 지적했다. 

방통위의 수신료 분리징수는 "속도의 폭력"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방통위는 대통령실이 어뷰징(중복전송) 온라인 여론조사를 근거로 수신료 분리징수를 권고한 지 11일 만에 시행령 입법예고에 나섰다. 

또 경향신문이 2012년 3월 15일 이후 국민참여 입법센터 홈페이지에 공개된 방통위의 시행령 입법예고 83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평균 입법예고 기간은 37.2일이었다. 83건 중 70건(84.3%)의 입법 예고 기간은 행정절차법상 규정을 지킨 40일 이상이었다. 40일 미만은 13건(15.7%)이었고 이 중 20일 미만은 7건(8.4%)에 불과했다. 2016년 4월 27일 공고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의 입법예고 기간이 12일로 가장 짧았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16일 논평에서 "정상의 민주 정치를 압살하는 속도의 폭력이 무섭다. 열흘 동안 의견을 내놓으라고 하는 말에서 우리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며 "대통령실이 사실상 공영방송 길들이기 차원에서 결정 하달한 조치다. 반대 의견을 철저히 무시, 배제하면서 이루어진 지금까지의 비정상적 구조가 열흘 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형식적으로 이어질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21일 오전 과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21일 오전 과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야당 추천 김현 방통위원에 따르면 방통위는 규제심사를 요청하지 않고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을 상임위원 간담회에 상정했다. 국무조정실은 방통위로부터 뒤늦게 규제심사 요청을 받은 뒤 하루 만에 '규제심사 대상 없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KBS·EBS 공적재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하루 만에 졸속심사가 이뤄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방통위의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추진은 상위법 충돌, 국회 입법권 무시 등의 논란을 빚고 있다. 방송법은 수신료 납부·징수 업무 위탁 근거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납부 의무자의 범위, 징수 절차 등 수신료와 관련한 중요한 사항은 입법자인 국회가 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방통위와 법제처는 '신속한 국민 불편 해소'를 입법예고 기간 단축 사유로 들었지만, 수신료 분리징수가 시행되면 국민 불편과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시행되어도 수신료 납부 의무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26일 경향신문 칼럼 <KBS 수신료 분리징수 강행, 당장 멈춰야 한다>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분리징수를 하면 수신료를 안 낼 수도 있다고 착각하는 거 같다. 하지만 수신료는 공영방송 운영을 위한 특별 부담금으로, 방송법 64조에 따라 수상기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내야만 하는 의무 사항"이라며 "수신료 분리징수의 영향은 징수 방법이 바뀌더라도 수신료는 납부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따져보아야 한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수신료를 납부할 의사가 있는 사람의 경우 분리고지에 따라 매번 별도로 납부를 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납부 의사가 없는 사람의 경우 가산금 부과와 체납징수에 의해 불편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방송법은 미납 시 가산금을 부과해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66조). 또 체납의 경우 국세체납 처분의 예에 의하여 징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세징수법은 재산의 압류를 포함한 강제 징수를 규정하고 있다(24조)"며 "결국 징수원과 납부 대상자 사이의 잦은 실랑이질이 벌어지고, 사회적 갈등은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완규 법제처장 (사진=연합뉴스)

한편, 지난 3월 30일 국회 교섭단체 추천 몫으로 선출된 최민희 방통위원의 결격사유에 대한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지체되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 4월 11일 국민의힘 윤두현 의원실의 법령해석 자료 요구에 따라 법제처에 최 내정자 결격사유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최 내정자의 한국정보산업연합회 상근 부회장 이력이 방통위설치법상 결격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해석을 요청한 것이다.

이에 법제처는 지난달 8일 방통위에 보낸 '법령해석 요청 접수 알림'을 통해 ▲법령해석에 몇 개월 이상이 더 걸릴 수 있다 ▲법령해석 반려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령해석 절차가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지난 2014년 방통위가 국회가 추천한 고삼석 방통위원 내정자에 대한 결격사유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법제처는 6일 만에 '부적격'이라는 유권해석 결과를 방통위에 통보했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윤석열 방패'로 불린다.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사법연수원 동기인 이 처장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제기했던 징계 취소소송 변호인단을 이끌었으며 윤 대통령 장 모 최 씨 등 가족 사건 대리인을 맡았다. 대선 과정에서는 이른바 '윤석열 캠프 법률팀'에 합류했다. 대선 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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