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언론학계가 TV수신료를 분리징수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한국언론학회,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는 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공영방송 재원, 어떻게 할 것인가?>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TV수신료를 분리징수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5일 전체회의에 상정·처리할 예정이다. 방통위가 지난달 16일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지 3주 만이다.

우선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대통령실이 수신료분리징수를 급속히 추진하는 것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종합편성채널의 성장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홍 교수는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벌어졌던 정연주 KBS 사장 퇴출,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실의 KBS 보도국 개입 등을 거론하며 “과거 정부와 현 정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종편 채널의 성장으로 정권에 부합하는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굳이 다루기 힘든 이 공영방송을 통제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오히려 공공성을 약화시켰을 때 얻는 이익이 크기에 현 정권이 이런 방식을 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홍 교수는 “지금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는 정부·여당의 정책적 목표가 무엇인지 이해가 잘 안 된다”며 “정치권은 표면적으로 KBS의 불공정성을 근거로 삼는데, KBS가 현 정부에서만 불공정성 논란이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설사 있었다고 하더라도 불공정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KBS의 공정성을 강화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KBS의 존폐를 갖고 압박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권에 의해 휘둘릴 가능성을 더 높인다”고 지적했다.
김희경 미디어미래연구소 박사는 “방통위의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방통위는 독립적인 합의제 기구인데, 5명이 치열하게 논의해야 할 문제를 위원장과 위원 한 명이 배제된 상황에서 3명이 급하게 처리한 것은 분명히 법적 정당성과 절차성에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공영방송이 못하는 것을 다른 채널이 하고 있으니 굳이 필요한가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민영 방송은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프로그램이 좌지우지되는 것에 반해 공영방송은 공적 가치를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라며 “공영방송이 공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공적 재원”이라고 강조했다.
도준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공영방송의 정책 논의가 국내 공영방송 문제의 본질이 아닌 수신료 분리징수 방식에 대한 토론회가 열린 것에 대해 학자로서 자괴감과 참담함을 느낀다”며 “공영방송의 역할, 공적 의무, 재원조달 방식이 우선 논의돼야지, 징수 방식이 먼저 논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공영방송 구현 차원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도 교수는 “예를 들어 영국은 BBC 수신료와 관련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치열한 숙의 과정을 거쳤다”면서 “시청자 대다수는 공영방송 가치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당장 발생하는 지출 감소를 선호한다. 대통령실의 ‘국민토론’ 같이 추천 위주의 조사 결과가 공영방송 정책에 영향을 끼치게 해서는 안 된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현실화돼 사업적 콘텐츠 비중이 증가하면 제일 큰 피해자는 시청자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 교수는 KBS 스스로 반성할 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도 교수는 “KBS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선시대 사화를 방불케하는 조직의 당파적 분열을 피하지 못했고, 방만 경영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이 있었지만 가시적인 개선 결과를 제시하지 못했다. 문제의 상당 부분이 취약한 국내 공영방송 운영 제도와 정치권의 압력에 기인하지만 KBS 스스로 외압을 견딜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내지 못한 한계는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최선욱 KBS 전략기획실장은 “충격적인 것은 30년 동안 유지되던 제도가 3주 만에 무력화되는 과정을 봐야 하는 것”이라면서 “문제는 공포 이후 바로 시행되는 것이다. 당장 한전도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최 전략기획실장은 “관계기관 협의는 제대로 됐는지 모르겠다”며 “수신료 징수는 2000만 가구의 개인정보와도 관련돼 있는데 관계기관과 협의조차 안 돼 있다”고 말했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수신료 분리징수는 KBS 재원 구조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며 “KBS와 유료방송사간의 재송신 협상, 외주 제작사와의 계약, 방송 광고 시장 등 미디어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겠지만, 방송 미디어 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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