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한국일보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애써 ‘배액 손해배상제’라는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언어유희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일보는 “언론의 권력 비판 보도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 자명한 법안을 대안 없이 밀어붙인다”고 비판했다.

반면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우려할 일이 아니며 일반 시민 피해 구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언론학자의 주장도 나온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 기자설명회에서 노종면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 기자설명회에서 노종면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최민희)는 지난 5일 배액 손해배상제 골자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초안을 공개하고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언론개혁 특위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액의 배액으로 배상 금액을 결정하는 '배액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손배액은 ‘고의 허위보도’ ‘중과실 허위보도’ ‘허위 보도 인용·매개’ 등으로 분류해 차등 적용된다.

정치인, 공직자, 대기업 등 권력자를 청구 대상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언론계의 요구는 담기지 않았다. 대신 권력층의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기 위한 장치로 '언론중재워원회 조정 신청 우선주의'를 제시했다. 권력자가 배액 손배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언중위의 조정신청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또 중간판결을 도입해 언론사가 배상 손배소에 대한 부당함을 따져볼 수 있도록 했다. 중간판결 신청의 이유가 인정되면 제소 자체가 기각된다. 

한국일보는 8일 사설 <악의 없어도 언론에 징벌적 손배, 권력 비판 말라는 건가>에서 “특위 측은 ‘징벌적 수준은 아니다’며 애써 ‘배액(倍額) 손해배상제’라는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언어유희일 뿐”이라고 말했다. 

언론현업단체들이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언론중재법 개정, 속도전 반대한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미디어스)
언론현업단체들이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언론중재법 개정, 속도전 반대한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미디어스)

한국일보는 “배상 규모 상한조차 없다. 허위 보도에 따른 시민 피해 구제를 강화한다는 명분이 아무리 옳아도, 언론의 권력 비판 보도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 자명한 법안을 대안 없이 밀어붙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언론개혁특위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초안은 허위 사실 또는 조작된 정보를 고의 또는 중과실로 다중에 알리는 행위와 보도물을 ‘허위·조작 보도’로 규정해 사실상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게 했다. 악의나 고의성이 없어도 중과실이 입증되면 징벌적 손배 대상이 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현재는 오보에 대해 1,000만 원 손해배상이 이뤄졌다면, 경우에 따라 1억 원, 2억 원 손해배상도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권력층은 손배 청구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언론계의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언중위 조정 신청을 거치도록 하는 완충 장치를 뒀지만, 권력층이 보도를 봉쇄하기 위한 소송을 남발할 길을 열어준 것이다. 보도 초기 당사자들이 허위·조작 보도라 주장하며 징벌적 손배에 나서는 일이 빈번해지면 권력 감시가 위축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김건희 명품백 수수 보도’ ‘천공·건진법사 국정개입 의혹 보도’ 모두 초기 허위 보도라는 공격을 받았다면서 “심지어 ‘바이든-날리면’ 보도를 한 언론사는 전용기 탑승이 배제된 채 경찰 수사를 받았다. 당시 징벌적 배상이 있었다면 의혹 보도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민주당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민주당을 향해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은 말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주권 언론개혁 특별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정청래 당대표(가운데), 최민희 위원장(오른쪽), 김현 부위원장(왼쪽)이 자리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주권 언론개혁 특별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정청래 당대표(가운데), 최민희 위원장(오른쪽), 김현 부위원장(왼쪽)이 자리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반면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명예교수는 경향신문 칼럼 <언론중재법 개정 논의, 언론 신뢰 높이는 계기 되길>에서 “권력자나 대기업의 전략적 봉쇄 소송은 이길 것을 기대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소송 과정을 통해 지레 비판을 위축시키려는 전략”이라면서 “배액배상제는 판결에 따라 효력을 갖게 되므로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고의나 중대과실이 없다면 우려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 명예교수는 “배액배상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정치인이나 기업들이 소송을 더 많이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승소하지 못한다면 배상액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며 “기자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탐사보도 부서를 더욱 꺼릴 것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이는 언론 내부 현실이 문제로 보인다”고 했다. 

정 명예교수는 “배액배상의 요건은 고의나 중과실”이라면서 “사실 고의·중과실의 구체적 기준을 일일이 법률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대법원도 2024년 5월 9일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노컷뉴스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에서 ‘취재 과정이나 취재로부터 보도에 이르기까지의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의 정도, 그 밖의 주위 여러 사정 등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현업의 의견을 반영해 현실성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모으고 정리한 지침을 마련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정 명예교수는 “좀 더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것은 허위보도로 인한 일반 시민들의 피해 구제”라면서 “사회적 관계가 파탄 나고 작은 사업체가 파산 지경에 이르러도 허위보도 피해자가 구제받을 길은 멀고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 명예교수는 허위보도로 피해를 본 시민들이 소송을 제기해도 시간과 비용만 소모될 뿐 실질적 구제가 어렵다면서 이들에 대한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명예교수는 “미국에서도 공인과 사인은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의 입증 책임이 다르다”면서 “민주당도 서두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언론계 의견을 수렴하고 법안의 세부적인 내용을 다듬기 위한 숙의와 공론화를 좀 더 거쳐야 하겠지만, 언론들도 내부 취재 보도 관행을 새롭게 하고 사실 확인 과정을 강화해 언론의 책임성과 신뢰를 높이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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