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준현 언론인권칼럼] 이재명 정부에서 언론개혁의 일환으로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정부 때도 민주당이 도입을 추진했다가 여러 문제로 인해 성사되지 않았지만 새 정부 들어 다시 힘을 받는 모습입니다. 언론인권센터는 예전부터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와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구제 현실화 방안의 하나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적극 찬성하여 왔습니다. 현 정부의 언론중재법 개정 시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한편 언론계에서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부정적이거나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언론보도에 대한 책임강화 방안은 언론자유를 위축시켜 권력과 자본의 비판 감시기능이 약화될 것이므로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하지만 그간 진행되어 온 경과를 보면 이런 주장은 궁극적으로는 현재의 언론피해 구제제도를 건들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여전히 왜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대표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의 움직임이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지, 그러한 정책에 대하여 많은 시민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언론계의 자기평가와 반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2021년 8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정의당·언론현업4단체 '언론중재법 개정 규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2021년 8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정의당·언론현업4단체 '언론중재법 개정 규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특히나 지난 정부 때 언론 현업단체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반대하면서 자율규제의 원칙을 앞세웠습니다. 그리고 민간중심의 통합자율규제기구를 만들어 보겠다는 청사진도 내놓았습니다. 4년이 지났지만 통합자율규제기구는 그 단초조차 만들어내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4년 전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시도는 자율규제라는 명분을 내세워 한순간의 소나기처럼 피해갔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언론개혁은 파도처럼 눈앞에 닥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구체적인 언론중재법 개정내용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지금 추진하는 개정 내용은 지난 정부 때의 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전에도, 그리고 현재도 쟁점이 있는 지점에 대해 약간 사족을 붙이겠습니다.

언론계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시행하더라도 적용대상에서 정치인, 공직자, 대기업 등 관련 보도는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 공인의 비리 취재나 탐사보도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게 근거입니다. 나아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시행되고 있었다면 ‘바이든-날리면’ 보도나 ‘김건희 의혹’ 보도는 없었을 것이라는 견강부회식 주장도 펴고 있습니다.  갑자기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마치 공직자가 예상외 결과를 두려워해서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거나, 법관이 오판을 무서워서 판결을 못 내리겠다는 식의 푸념처럼 들립니다. 아예 공인에 대하여는 악의적 허위보도를 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손에 얻고자 하는 속내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언론중재법 (PG) (연합뉴스)
언론중재법 (PG) (연합뉴스)

과문하긴 하지만 언론보도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고 있는 미국에서 탐사보도가 활발하지 않다는 자료를 본 적은 없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탐사보도 위축으로 직결된다는 주장은 언론의 자기방어 논리이자 자기연민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꽃길만 걷고 싶다는 게 인간의 본성이겠지만, 언론인의 사명은 아닙니다. 더욱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권력비리보도나 탐사보도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위축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탐사보도든 다른 보도든 그 결과물이 허위로 밝혀졌을 때, 덧붙여 언론이 그 허위성을 알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악의적으로 보도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법원의 판례는 공인이나 공적사항에 대하여는 의혹제기한 언론보도가 설사 추후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더라도 언론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면 위법성이 없다고 인정하여 면책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탐사보도 위축’이라는 공식은 애초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언론이 고의 중과실로 허위보도하면 피해자가 공직자이거나 일반 개인이거나를 구분하지 않고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을 가지는 것이 타당합니다. 악의적 허위보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언론의 비판과 감시기능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악의적 허위보도의 고의 중과실을 누가 입증할 것인지도 여전히 쟁점 중 하나입니다. 이전 민주당 개정안에는 고의, 중과실 추정조항이 있었지만 이보다는 "언론사 등이 고의 중과실이 없다고 입증하면 징벌적 손배 대상은 아니다"는 식으로 면책 조항을 규정하여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언론사의 입장이 아니라 언론 내부의 취재 과정과 보도 경위를 알 수 없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해결책을 바라봐야 합니다. 

지난 1일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언론보도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방안 마련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지난 1일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언론보도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방안 마련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한편 등록된 언론사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언론보도의 기능을 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이나 1인 미디어 등의 소위 ‘가짜뉴스’,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규제에 대한 도입 여론도 강합니다. 적어도 언론중재법에 "등록된 언론사의 보도가 아니라더라도 사실적 주장을 통한 유사언론보도”도 정정, 반론, 손해배상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시행령 등에서 적용 대상 유사언론보도의 기준과 범위(구독자수 등)를 정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만합니다.

언론계의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우려의 밑바닥에는 일종의 ‘포비아’ 현상처럼 막연한 공포심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약간 어설픈 처방이지만 이성적 판단이 우선입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언론의 사명에 기초하여 취재 보도 편집과정에서의 저널리즘의 직업적 윤리와 전문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언론계에 조심스레 제언드립니다.

♣ 김준현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장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 제 1061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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