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하자 '공론장을 위협하는 정치인 발언도 어떻게 규율할 것인지 함께 논의하라'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악의적 프레임', '상대편 악마화'를 핵심 전술로 삼아 팬덤을 형성하는 정치인이 언론의 책무만 강조하면 개혁 명분이 깎인다는 비판이다.
28일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중앙일보 시평 <언론개혁의 진정성을 보이려면>에서 "집권 여당은 언론개혁의 핵심과제로 고의적 왜곡이나 허위성에 대해 책임을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한다"며 "국정과제의 가장 선두에 둔 것이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임을 볼 때 언론개혁의 궁극적 목적은 진실에 근거한 공론장 회복을 통한 국민통합이다. 불행히도 인류가 현재 누리고 있는 미디어 환경은 무언가를 파괴하고 쪼개는 데는 능하나 어떤 것을 합치고 세우는 데는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해묵은 문제이고, 정파성 토대 위에 허위조작정보 문제의 심각성은 커진다며 "여기에 팬덤 정치가 가세한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언론의 정파성과 팬덤 정치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도 하면서 상대에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한다"며 "그래서 여론생태계 전체를 볼 때, 언론의 주요 정보원인 정치인의 발언이 지금 이대로라면 언론의 책무성 강화만으로 공론장의 복원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팬덤 결집의 전략판에서 악의적 프레임 씌우기나 상대편 악마화는 핵심 전술이다. 명백한 허위정보만큼 공론장의 질서를 위협하는 것은 사실과 허구가 적당히 버무려진 정보"라며 "'냄새가 난다'라거나 '배후가 있다'는 등 근거가 부족한 의혹제기나 악의적 프레임이 그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언제부터인가 국회 회의장 중계를 보면, 말로 의견을 말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모습보다 손에 든 플래카드만 보인다. 의혹을 제기하거나 자극적인 언어로 양극단의 사고를 부추기는 진원지는 과연 어디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며 "기억하기 쉬운 유행어를 만들어 퍼뜨려야 유명한 정치인이 된다. 국민은 유능한 정치인을 원하지만, 팬덤정치 아래 정당은 유명한 정치인을 선호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국민통합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언론의 책임을 묻는 동시에 정치인의 발언을 어떻게 규율할 것인지도 동시에 논의해야 한다"며 "국회 윤리위원회는 명시적으로는 막말 등 의원의 품우와 직무윤리에 관한 사항을 다룬다고는 하나 제 식구 감씨기에는 여야가 온전한 통합 상태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꾸준히 제기해 온 윤리위원회의 상설화나 의회윤리법은 감감무소식"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정당현수막에 등장하는 끝도 없는 혐오 표현들도 문제"라며 "현수막은 선택하지 않아도 강제로 보게 되는 강력한 미디어다. 국회는 정당의 현수막을 옥외광고물법의 예외로 두어 정치 혐오의 일상환경을 상시화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공론장 복원을 위해서는 처벌보다 구조적 지원 제도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공론장의 복원은 정보가 생산되고 퍼 날라지고 소비되는 전체 생태계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공염불이 될 것이다. 이제 인공지능까지 합세한 정보의 바닷속에서 허위성, 악의성을 잡아내 입증하는 데 설사 성공한다 할지라도 이것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며 "현행법상 온라인 신문은 자택 주소와 인터넷 도메인만 가지고 개인사업자 등록만 하면 뚝딱 만들 수 있다. (중략)우선 이렇게 느슨한 등록제도부터 살피고, 이와 더불어 팩트체크 기관 지원 같은 양질의 저널리즘을 세우는 구조적인 지원이 때려잡기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019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우리 사회에서 혐오표현을 조장하는 주체 1위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이 혐오표현을 조장한다는 응답은 58.8%, 언론이 조장한다는 응답은 49.1%로 나타났다. 정치인, 언론이 혐오표현 관련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응답은 각각 3.8%, 11.3%에 그쳤다.
지난 2021년 5월 인권위가 발표한 온라인 혐오표현 인식조사 결과, 혐오표현 발생·심화 원인으로 ▲인터넷서비스 사업자들이 혐오표현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85.5%) ▲언론의 보도 태도가 혐오를 부추긴다(79.2%) ▲정치인 등 유명인들도 혐오표현을 쓰다 보니 문제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76.3%) 등의 응답이 나왔다. 2019년 조사와 비교해 가장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인 혐오표현 발생 원인은 ‘정치인 등 유명인들도 혐오표현을 쓰다 보니 문제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로, 2019년 49.4%에서 2021년 76.3%로 26.9%p 급증했다.
한편, 정부여당에서 '나도 가짜뉴스 피해자'라는 발언이 이어졌다. 28일 한국일보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0일 민주당 지도부와의 비공개 만찬에서 "나도 가짜뉴스 피해자"라며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필요성을 피력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이 대통령은 만찬에서 자신을 괴롭힌 가짜뉴스 사례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며 "이 대통령이 '소년원 출신'이라는 내용으로, 이를 가짜뉴스로 유포한 이는 2023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죄로 벌금 6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지난 대선에서도 다시 유통되면서 이 대통령을 괴롭혔다"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정치권에선 당정이 언론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이 내각뿐 아니라 언론개혁을 추진 중인 여당 지도부를 만나 가짜뉴스 근절 의지를 재차 강조했기 때문"이라며 "다만 복수의 참석자는 '지나가는 방담 수준의 대화였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고 보도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추석 전까지 언론개혁을 마무리할 것이라며 최우선 과제로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내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 13일 당 언론개혁특위 출범식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악의적 언론보도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언론과 법정 싸움도 해 봤고, 양보하지 않고 승리하기도 했었다"며 "그 과정에서 정치인인 저도 많은 어려움과 힘듦이 있었는데 일반 국민들은 또 어찌 하겠나. 자유에 걸맞는 책임이 뒤따르지 않으면 언론의 자유 역시 성역일 수 없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일부 언론은 진실보다 당파성과 일부의 이익에 매몰돼 편파·악의적 보도를 일삼는 등 횡포를 지금까지 해 왔다. 이제 공영방송을 넘어 모든 언론을 국민께 돌려드릴 시간"이라며 "악의성을 가지고 고의적으로 반복해서 가짜뉴스를 생산한 경우에만 징벌적 손해배상이 되고, 그 판결 또한 판사의 판결로 하자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반대하는 언론계가 있다면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관련기사
- 민주당 언론개혁특위 “언론 오보 입증 책임, 특수한 경우 전환”
- 미디어 관련 입법에 부치는 기대와 우려
- 이 대통령, 여당 지도부에 "나도 가짜뉴스 피해자"
- 여야, 유튜브 제재에는 한마음 한뜻?
- '부정선거 음모론' 미 언론, 930억 배상금 폭탄 맞았다
- 민주당 '언론개혁' 설문조사 결과, 언론 징벌적 손배제 '꼴찌'
- 이 대통령 "허위조작 정보로부터 민주주의 지켜야"
- 민주당 언론개혁특위 "방통위 재편 10월 안에 끝낸다"
- 정청래 '전광석화 언론개혁'에 따라붙는 "무엇인가" "국민 공감대는"
- 최민희 "가짜뉴스 유튜브 손배-언론중재법, 언론개혁특위 주요 의제"
- 민주당 언론개혁특위 가동…허위조작정보 논의 계획
- 정청래 "'전광석화' 언론개혁특위 가동"…위원장에 최민희
- 이 대통령 "'가짜뉴스' 유튜브 징벌 배상 검토하라"
- 김병기 "언론, 징벌적 손배제 이야기까지 나오는 현실 생각해 봐야"
- '징벌적 손배제' 속도전에 "윤 정부 때 도입됐으면 김건희 보도 불가"
- 민주당 언론개혁, '방통위 산하 언론중재위' 모델 등장
- 김병기 "언론중재법은 가짜정보 근절법…청구권 배제 최소화해야"
- 신문협회보 "민주당 언론중재법, 위헌 논쟁 재현될 것"
- 징벌적 손해배상제 포비아에 대한 처방
- 이규연 "이 대통령이 언론 징벌적 손배제 말씀하신 적 없다”
- 언론연대 “민주당, 언론개혁법 초안도 없는데 9월 강행은 무리"
- "민주당,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액 '15~20배' 속도전"
- 언론현업단체 "징배제 결국 시민 피해…민주당 속도전 멈춰야"
- 민주당 '봉쇄소송 방지책'에 언론계는 여전히 소송 남발 우려
- 한국일보 "민주당 배액손배제,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워선 안돼"
- 최민희 "국민 다수, 정치인·대기업 언론 배액배상 동의"
- 언론현업단체 "언중위로 소송남발 방지?…불복을 법으로 막을 수 있나"
- 민주당의 '유튜브 배액 손배', 언론중재법 아닌 망법으로
- 민주당 '유튜브·포털 배액손배' 첫단추부터 "표현의 자유 위축"
- 언론노조 "권력자 손해배상 위자료 늘려주는 게 중요한가"
- 최욱 "언론 징배제 있었으면 '바이든' 외친 난 만신창이"
- '언론 징배제'가 PD수첩·추적60분·그알에 미칠 영향은
- 동아일보 "대통령, 언론징배제 제동…음모론 엄벌 제도 마련하라"
- “민주당도 권력자 남용 막자는 데 동의할 것”
- 민주당 '언론 징배제', 정보통신망법 선회
- 언론현업단체, 정청래에 '언론개혁법 25일 처리 연기' 요구
- 민주당 '허위조작정보 배액 배상제' 입법 속도전 철회하나
- 11개시민단체 "한국판 DSA?…일방적 입법, 언론개혁 아니다"
- 민주당 '허위조작정보 징벌적 손배 5배' 공식화
- "민주당 '한국형 표현통제법', 류희림 방심위와 다른가"
- "허위조작정보근절법, 윤석열 수신료분리징수 기시감" 왜?
- 최민희 허위조작정보근절법에 '이동관·류희림' 그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