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윤석열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여러 의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방식’에 관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출신이고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수사하는 특검에서 활약했다. 대통령이 권력을 어떻게 절제해 절차에 맞게 행사해야 할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 할 이력을 가진 거다. 그런데 잊을만하면 ‘비선’ 논란이 불거진다. 국정운영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인지 제대로 된 진단과 해명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논란은 7일 한국일보 보도로 촉발됐다. 윤석열 대통령 측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가 영수회담을 앞두고 물밑 협상을 맡는 ‘비공식 특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두 사람을 한자리에 불러 인터뷰했는데, 공개된 사진을 보면 함성득 원장은 빨간색 넥타이를, 임혁백 교수는 파란색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간의 대화의 정치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두 사람은 넥타이 색깔도 일부러 맞췄다”고 부연하고 있다. 바이라인을 확인해보면 여야에 출입하는 기자 2명과 인턴 기자 이름이 확인된다. 상당한 공을 들인 인터뷰 기사라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집무실에 도착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맞이하며 악수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집무실에 도착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맞이하며 악수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그런데 인터뷰 기사에 나오는 얘기는 정치적 상식에 맞지 않는 게 많다. 서로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공식 라인에 없는 인사가 역할을 한 것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의 대선 경쟁자가 될 인물은 인사에서 배제하겠다고 하거나 골프회동이나 부부동반 모임까지 제안한 사실 등은 그동안의 정치 문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부부동반 모임’은 이런 얘기가 무슨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을 다시 추진할 거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구성원 일부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처벌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아는 대통령이 신뢰가 쌓인 상황을 전제했다지만 굳이 ‘부부동반 모임’을 제안한 맥락은 뭘까?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물밑 접촉이나 비공식 특사 등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함성득 원장과 임혁백 교수의 설명은 두 사람이 지어낸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구체적이다. 이 중 일부의 주장은 일부 정황적인 근거가 있다는 게 한국일보의 시각이다. 한국일보는 8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에 직접 전화를 걸어 건강을 염려하는 안부 인사를 건넸다고 민주당이 공개한 바를 보도했는데, 이 기사에는 앞서 두 사람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 측이 ‘핫라인 구축’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다시 언급돼 있다. 당시의 제안이 실제 안부를 묻는 통화로 이어진 거라는 얘긴데, 대통령실 반응에 대한 우회적인 반론으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야당 측 인사라 사실 부인이 비교적 쉬운 대상인 임혁백 교수야 그렇다 쳐도 함성득 원장이 인터뷰에 응해 민감할 수 있는 주제를 여러 가지 얘기한 것도 의문이다. 대통령 혹은 대통령실과 아무런 교감도 없이 이 정도의 얘기를 언론 인터뷰에서, 그것도 넥타이까지 맞춰 착용하고 부담없이 풀어놓을 수 있었을까? 사전에 누군가와 어느 정도의 협의는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대통령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사실이 아닌 게 아니라 대통령실이 그저 모르는 바가 있는 게 아닌가?

조선일보 4월 18일 사설 유튜브 썸네일 갈무리
조선일보 4월 18일 사설 유튜브 썸네일 갈무리

이러니 자연스럽게 박영선-양정철 기용설로 불거졌던 ‘비선’ 논란으로 관심이 옮겨갈 수밖에 없다. 박영선-양정철 기용설도 기성의 정치 문법에 안 맞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두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건희 여사와도 직간접적 인연을 갖고 있다. 한국일보 인터뷰 기사에 윤석열 대통령 측 메신저로 등장한 함성득 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사저에 거주하던 시절의 이웃 주민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맥락 때문인지 보수언론은 함성득 원장에 대해 ‘윤 대통령 부부’와 친분이 있는 인물로 서술하고 있다.

만일 기존에 언론을 통해 ‘비선’으로 불렸던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주변 인사들이 ‘협치의 진정성’ 등을 증명하기 위해 함성득 원장과 임혁백 교수 등에 언론 인터뷰 등을 추진할 것을 제안한 거라고 가정한다면? 그러면 많은 부분이 설명 된다.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인터뷰 시점이나 ‘부부 동반 모임’ 등을 거론한 맥락, 대통령실이 두 사람의 일부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과장됐다’고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 배경 등등.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는데, 대통령이 특히 정무 기획과 관련한 부분을 이런 식으로 영부인과 가까운 일부 인사들에 의존하고 있다면 다른 대목에선 어떻겠는가? 앞으로 부활한 민정수석은 주로 무엇을 하는 것인가? 이제 민정수석과 호흡을 맞추게 된 공직기강비서관은 이 정권에서 왜 채상병 사건 관련 문제에 개입하였는가? ‘비선 논란’은 그 자체로 편의적이고 임의적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증명한다.

물론 대통령실이나 여당 인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논란의 실체는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국정 운영의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차원에서는 ‘해프닝’으로 웃고 지나가거나 무작정 부인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기자회견이든 뭐든 대통령이 해명할 성격의 문제라는 얘기다. 그러한 해명을 대통령이 실제로, 납득이 되는 방식으로 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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