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치적 반대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2022년 3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첫 출근길 발언
윤석열 대통령이 민정수석실을 부활시켰다. 여당 총선 참패 이후 대통령 부부를 향한 특검 정국이 본격화되자 '용산 로펌'을 세우려는 목적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민정수석에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이 임명됐다. 김 전 차관은 검사 시절 무죄로 종결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 '5만 달러' 뇌물수수 의혹 수사를 지휘하고,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 농지법 위반 의혹을 무혐의 처분했다. 윤 대통령은 '민심'을 듣기 위해 민정수석실을 부활시켰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직접 "민정수석실을 설치하기로 했다. 새로이 민정수석을 맡아줄 신임 김주현 민정수석"이라고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민정수석실 부활 이유는 '민심 청취'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제가 인수위원회 때 민정수석실을 안 만들겠다고 한 게 아니고 정치를 시작하면서, 2021년 7월 문화일보와 인터뷰하면서 '대통령이 되면 민정수석실 설치 않겠다'고 얘기했다"며 "그 기조를 지금까지 유지해왔는데 민심 청취 기능이 너무 취약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언론 사설부터 주변 조언 등을 많이 받았다"며 "모든 정권에서 기능을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인데 민정 업무가 제대로 안 되니까 저도 고심을 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사법리스크를 대비하기 위한 민정수석실 부활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국민을 위해 설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사법리스크가 있다면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민정수석이 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검찰 출인 인사가 민정수석에 임명돼 부적절하다는 지적에는 "민심정보라 하지만 결국 정보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정보를 다루는 부서는 꼭 법률가가 지휘하면서 법치주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여당 총선 참패 이후 민정수석실을 부활시키는 이유는 '채 해병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등 특검 정국에 따른 방어 목적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 출신 민정수석으로 검·경 사정기관을 장악하고, 낮은 지지율로 흔들릴 우려가 있는 공직기강을 다잡으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 신임 민정수석은 "앞으로 가감 없이 민심을 청취해 국정 운영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원석 연루된 '돈봉투 사건' 책임지고 물러나
김 신임 수석은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2년 후배다. 사법시험 합격은 윤 대통령보다 5년 빨랐다. 김 수석은 대구지검 안동지청장, 대검 중수부 특별수사지원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법무부 대변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법무부 검찰국장, 법무부 차관, 대검 차장검사 등 검찰·법무부 요직을 두루 지냈다. 민주당은 "김 수석은 박근혜 정부 법무차관으로 우병우 민정수석과 함께 사정기관 통제에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 수석은 2017년 5월 대검 차장검사로서 검찰총장 직무대행직을 수행하던 무렵 검찰을 떠났다. 2017년 4월 검찰 고위층의 이른바 '돈 봉투 만찬' 사건이 불거졌고, 감찰이 본격화되자 "원활한 검찰 운영을 위해 직을 내려놓을 때"라며 사의를 표명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찰개혁 바람이 불고 '돈 봉투 만찬' 사건이 더해지자 책임을 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당시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다.
'돈 봉투 사건'은 2017년 4월 21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울 서초동 소재의 한 음식점에서 검사 8명에게 현금 봉투를 준 사건을 말한다. 이 지검장은 법무부 검찰국 검사 2명에게 각각 100만원 씩, 안 국장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 검사 6명에게 각각 70~100만 원씩 현금봉투를 돌렸다. 안 국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인물 중 이원석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현 검찰총장), 정순신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윤석열 정부 국가수사본부장 낙마) 등이 있었다.
김 수석은 검찰을 떠나면서 '직이불사 광이불요'(곧으나 너무 뻗지는 않고 빛나나 눈부시게 하지는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검찰권 행사에 있어 신중과 절제를 강조한 말이었다.

한명숙·이동관 수사
김 수석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한명숙 전 총리 수사를 지휘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한 전 총리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은 한신건영으로부터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사건, 대한통운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사건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중 '5만 달러' 수사를 김 수석이 지휘했는데, 이 사건은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9억 원 수수 사건은 유죄로 결론났다.
김 수석은 한 전 총리 기소 당시 언론 질의응답에서 "공소제기에 필요한 수사는 다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에게 인사청탁 목적으로 금품을 건넸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이 검찰 기소의 핵심 근거였다. '곽 전 사장의 건강이 좋지 않아 진술의 신빙성이 문제된다는 지적이 있다'는 언론 질문에 김 수석은 "진술을 듣고 확인할 때는 별 문제가 없다고 봤으며 진술은 일관됐다"고 답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줬다는 진술을 믿을 수 없고 다른 증거도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공판 과정에서 곽 전 사장의 진술은 10만 달러→3만 달러→5만 달러로, '직접 돈을 줬다'에서 '총리공관 의자에 뒀다'로 계속 바뀌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강압수사' 가능성을 판결문에 적시했다. 재판부는 "하루종일 검사의 추궁을 받으며 조사를 받은 피고인 곽영욱으로서는 새벽 두 시까지 이어지는 조사와 면담으로 오히려 생사의 기로에 서는 극단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추단된다"고 했다. 또 곽 전 사장이 횡령 혐의로 기소돼 있고,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내사를 받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재판부는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하나로 뇌물공여 부분에 대해 검찰에 협조적 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유일한 직접증거인 곽 전 사장의 진술은 신빙성이 부족하고, 그밖에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한 전 총리가 5만 달러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곽 전 사장의 진술에서 일관성이 부족하고, 뇌물이 건네졌다는 당시 오찬장의 상황 등을 살펴볼 때 돈을 주고 받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며, 곽 전 사장이 검찰의 선처를 기대하고 허위사실을 진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해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에는 위법이 없다"며 2013년 3월 검찰 상고를 기각했다. 김 수석은 2013년 4월 검찰청 인사·예산·조직을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에 올랐다.

김 수석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시절인 2008년 12월, 불법 농지 취득 혐의로 민주당이 고발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결정했다. 김 수석은 ▲이 대변인과 부인은 농지 취득 과정에 구체적으로 관여한 바가 없다 ▲농지법 위반 부분은 2007년 12월 공소시효가 완성됐다 ▲농지 취득 과정에서 허위 서류를 작성했다는 의혹은 허위로 보기 어려워 문서위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언론사(국민일보)에 전화를 건 부분은 전화를 받은 언론사 쪽에서 압력을 받은 적 없다고 밝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가 되지 않는다고 결론 냈다.
하지만 이동관 대변인 농지법 위반 의혹을 취재했던 기자는 "이동관씨의 불법적인 농지 보유는 의혹이 아닌 팩트이다. 그가 시인한 유일한 불법행위"라고 했다. 지난해 8월 김원철 한겨레 사회부장은 칼럼 <2008년 이동관 농지구입 사건의 전말>에서 취재 당시 이동관 대변인으로부터 "큰일 할 수 있게 한번만 기회를 줘" "이 기사 나가면 진짜 곤란해져" 등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김 부장은 농지법 위반 의혹의 핵심은 '투기 의혹' 외에 '거짓말'이 있다고 했다. 위장전입, 농업경영계획서 위조 등 도시거주민의 농지 보유는 필연적으로 거짓말을 수반한다는 해석이다. 김 부장은 "(이 후보자는)강원도 춘천시 농지 8109㎡를 부인 명의로 지인 3명과 함께 공동 보유 중이었다. 서울에 살지만, 춘천 농지를 직접 경작하겠다는 농업경영계획서도 제출했다"며 "역시 ‘거짓말’이 문제였다. 제3자가 그의 부인 명의의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했는데, 대리 제출 사유에 ‘해외 출타’라는 거짓말이 적혀 있었다"고 했다.
2008년 4월 국민일보는 이동관 대변인 부인의 농지법 위반 의혹을 취재 보도하려 했다. 하지만 기사는 출고되지 않았다. 국민일보 노조는 이동관 대변인이 국민일보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건을 넘어가주면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기사외압 논란이 불거졌으나 국민일보 편집국장은 기사 가치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기사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이동관 대변인은 개인적 친분이 있는 관계에서 봐달라고 부탁한 것이지 압력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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