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유권자는 냉정했다. 여당은 윤석열 정권과 함께 심판당했다. 개헌선은 간신히 지켰지만 민심의 법정에선 정치적으로 탄핵당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범야권은 190에 육박하는 성과를 얻게 되었다.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숫자인데, 190석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잠시 나중으로 미루자.
윤석열 정권은 왜 심판당했는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파탄적 국정운영 때문이다. 자의적 판단에 의존한 것 아닌가 싶은 무리수는 밀어 붙이면서, 남들의 지적은 듣지 않는다. 대통령이 아끼는 사람은 끝까지 감싸면서 아니다 싶은 대상은 적으로 몰고 내쫓으려 든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일에는 직접 전면에 나서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는 인색하다. 뒷수습은 참모의 몫이다. 당 장악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 김건희 여사 논란에 대한 대응, 이종섭 호주 대사 문제, 의대 증원 관련 갈등의 방치 등에서 이런 모습이 일관되게 나타난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404/308511_211790_2418.jpg)
윤석열 대통령의 이미지가 전형적인 ‘폭군’의 그것으로 수렴되는 사이, 경제와 민생은 내팽개쳐졌다. 고물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선거를 의식한 단기적인 것에 그쳤다. 여당 인사들은 방송에 나와 고물가는 세계적 현상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렇다면 지도자가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며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가자는 설득을 했어야 할 일이다. “대파 875원” 발언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는 오해나 무지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대응으로 생색이나 내려고 하는 태도 자체가 민생을 도외시하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등판은 윤석열 대통령을 커튼 뒤로 밀어내는 효과를 짧게나마 발휘했다. 그러나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이견이 당과 용산 사이에 불거지고 이게 사퇴 요구로 이어지면서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한계를 노출하기 시작했다. 총선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용산이 공천, 이종섭-황상무 논란에 대한 대응 등으로 대립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다시 선거의 주인공 자리에 복귀했다. 정권심판론의 재점화다.
이런 상황은 보수층의 분열을 야기했다. 정권심판론이 커진 것의 책임이 용산에 있는지 여당에 있는지를 두고 지지층의 입장이 갈렸다. 이들의 결집을 위해서라도 상대에 대한 비난이 필요했고, 이는 ‘이-조 심판론’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지층 확장이라는 측면에선 역효과였다. 민생을 외면하면서 무슨 야당을 심판하잔 얘기를 하느냐는 반론에 부딪친 거다.
뒤늦게 민생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안정론-일꾼론으로 전환하자는 제안도 나왔으나 이는 어려운 과제였다. 애초에 국정에 대한 ‘그랜드 디자인’이 없는, 남의 잘못을 들춰내고 그게 범죄임을 입증하는 것에 일생을 걸어온 검사 출신들이 그런 판단과 대응을 제대로 해낼 리는 없는 것이다. 결국 여당의 선거는 끝까지 별다른 변수 없이 ‘이-조 심판론’만을 붙든 상태로 정권심판론에 대응하지 못해 대패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러니 또 책임론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는 11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당에 잔류하는 것을 전제로 “‘윤-한 갈등 시즌 2’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고 썼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가까운 인사들은 선거 패배에 대한 대통령실 책임을 언급하지만, 대통령실의 태도는 또 다르다는 거다. 동아일보는 “대통령실은 여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한 위원장이 요구했던 이종섭 주호주 대사 사퇴, 의료개혁 대화 등을 모두 수용한 만큼 한 위원장의 책임이 크다는 기류”라고 썼다.
총선에 대패하고 집안 싸움까지 벌인다면? 그걸 감당 가능하겠는가? 이러니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사퇴할 수밖에 없다. 선거에 졌으니 순리로 봐도 그게 맞다. 그러나 사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이제 누가 여당을 이끌어야 하는가? 대패하는 와중에 살아남은 나경원, 권영세, 안철수 당선자 등이 언급되지만 용산과 국민 모두 그 정도 수습책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일각에서 대통령 탈당 요구 가능성이 언급되는 것에 일리가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대통령은 그것을 수용할 태세가 되어 있는가?
일각에선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통령실 참모들의 일괄 사의표명은 그런 차원일 것이다. 선거 결과가 이 모양이니 다들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늘 ‘그 다음’이다.
언론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5년 내내 여소야대 국면을 감당해야 하는 대통령에게 거국내각 구성까지 각오하라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는가? 방송을 손아귀에 넣고 흔들며 탄압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배우자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를 용인하고 채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특검을 수용할 각오가 돼 있는가? 지금까지의 파탄적 국정운영을 전부 다시 원위치 시킬 준비가 돼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더 큰 민심의 파고를 목도하게 될 거라는 것, 이게 총선 결과가 보여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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