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다들 고대하던 영수회담이 열린다는데 기대감은 크지 않다. 의제 조율에 실패해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회담이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주까지 더불어민주당은 태도가 분명찮은 대통령실을 향해 이런 저런 요구의 수위를 높여가는 와중이었다. 다소 수세에 몰렸던 대통령실은 2차 실무회동 이후 여론전 차원에서 반격에 나서는 분위기였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주요 의제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할만한 명분쌓기에 들어간 거 아니냐는 의심이다.
가령 25일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가 한국은행의 1분기 경제성장률 속보치에 이례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브리핑에 나선 게 그렇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우리나라 1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은 1.3%를 기록했는데 애초 시장 예상은 그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이러한 ‘깜짝 성과’에 대해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는 ‘민간 주도의 성장 경로 회복’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각기 브리핑에 나섰다. 정부의 성장률 기여도가 0%p였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정부의 ‘핑크빛 전망’에 대해선 몇 가지 반론이 존재한다. 1분기 실질 경제성장률 1.3%의 배경으로 한국은행이 들고 있는 건 첫째로 기저효과, 둘째로 날씨와 휴대폰 신제품 출시 등 계절적 요인, 셋째가 반도체 등 일부 수출 품목의 선전이다. 첫째와 둘째는 일시적인 거고 셋째의 경우 앞으로 반도체 경기가 좋을 것으로만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민간 주도의 성장 경로 회복’이 이뤄진 것인지 지금 시점에서 판단하긴 어렵다는 거다.
그럼에도 대통령실과 정부가 호들갑에 나선 이유는 뭘까? 영수회담의 주요 의제 중 하나가 민생회복지원금과 관련된 13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과 관련된 것이므로 이를 거부할 명분을 쌓기 위한 게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민간 주도의 성장 경로 회복’이 이뤄졌다면, 추경은 불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이전까지만 해도 이 대목과 관련해선 액수와 범위를 절충한 형태로 합의가 가능하리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의제를 둘러싼 줄다리기 국면이 조성되자 대통령실과 정부가 강경론으로 돌아서는 기류라는 해석도 가능해진 거다.
공교롭게도 25일 국가보훈부 역시 최근 본회의에 직회부된 민주유공자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 요청을 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거부권 행사 자제 요구 역시 영수회담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거론하겠다는 주요 의제 중 하나다. 국회에서 논의되는 법안에 대해 유관 부처가 특정한 입장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영수회담 관련 의제를 줄다리기 하는 국면에 ‘거부권 행사 요청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속한다. 대통령으로서는 야당의 ‘거부권 행사 자제’ 요구에 대해 “당신들이 또 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해 일선 부처에서도 거부권 행사 요구가 있는 상황이라 확답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게 된 셈인데, 이게 아무런 정치적 고려 없이 이뤄질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이다.
의제를 두고 평행선을 달리는 국면에 접어들면 회담 당사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는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회담을 깨거나 의제 관련 합의를 포기하거나다. 이재명 대표는 후자를 택했다. 회담을 무산시킨 것에 대해 서로를 탓하는 책임론 공방에 돌입하는 것보다는, 성과가 미미하더라도 회담 자체는 이뤄지도록 하고 이를 근거로 해서 다음 수를 모색하는 길을 선택한 거다.
만일 영수회담의 성사 그 자체가 어떤 정치적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면, 그건 그게 대통령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냐를 따져야 할 것이다. 적어도 의제를 둘러싼 논의에서 대통령의 변화 가능성은 감지하기 어려웠다. 변화를 하지 않기 위한 방벽을 쌓는 모습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게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 ‘과한 요구’를 거듭했기 때문이라면, 의제를 정하지 말고 회담을 하기로 한 이후엔 달라져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공수처장 후보자 지명을 보면 그렇다. 대통령실은 제기되는 비판에 대해 지명을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라는 얘기 아니냐는 취지로 항변한다. 그러나 맥락이 중요하다. 공수처장 후보자 지명은 전임자가 퇴임한 지 97일 만이고 후보추천위가 2명을 추천한 이후만도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이후다. 뭉개기로 일관하다 야당이 영수회담에서 ‘채상병 특검’ 얘기를 한다고 하니,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고 있는 게 특검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거 같으니, 뒤늦게야 부랴부랴 임명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안 할 수 없다.
대통령실은 공수처장 후보자 지명은 특검과 무관하고 선거와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고려한 거라고 설명했다. 풀어서 얘기하면, 선거 전이라 인사청문회가 진행될 수 없을 거 같아 지명을 미뤘던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만일 대통령이 미리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했으면 인사청문회 일정은 지연됐어도 책임은 국회가, 특히 다수당인 야당이 뒤집어 썼을 것이다. 대통령실의 해명은, 굳이 그런 길을 택하지 않고 오히려 대통령이 스스로 의심을 받게 되는 경우의 수를 선택했다는 건데, 그걸 누가 믿겠나.
한겨레는 29일 사설에서 “윤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얘기 많이 듣겠다”고 여러차례 말했다. 그러나 ‘듣겠다’는 뜻이 ‘받아들이겠다’(accept)가 아닌, 말 그대로 ‘듣겠다’(listen to)에 그치는 수준이라면 곤란하다”고 했는데, 정권의 이런 태도를 보면 불행하게도 이번 회담은 그냥 ‘듣고 마는’ 이벤트에 그치게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윤석열 스타일’은 앞으로도 주욱 계속된다는 예고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회담은 그렇다 치고 나라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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