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표적 심의 수단으로 악용된 ‘공정성’ 방송심의를 우선 자율규제에 맡기고, ‘통합형 언론 자율규제’ 기구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는 언론학자의 제언이 나왔다. 

류희림 위원장 체제 당시 방통심의위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공정성' '객관성' 등 모호한 조항을 적용해 비판 언론에 대한 중징계를 남발해 '입틀막 심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법원의 방통심의위 중징계 취소 판결이 이어지면서 행정력 낭비라는 비판까지 더해졌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10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10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21일 경향신문 칼럼 <방심위 공정성 심의, 자율규제로 바꿔야>에서 법원의 정연주 방통심의위원장 부당 해촉, 방통심의위 중징계 취소 판결을 거론하며 “윤석열 정권의 폭주는 언론 심의가 흉기로 변할 수 있음을 극명히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오래전부터 국가기구의 보도 공정성 심의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계속됐지만 당대 정권들은 이를 교정할 의지가 없었다”면서 “정권을 잡은 후에 어떤 방법으로든 방통심의위 구성을 여대야소로 만들어 놓으면 유혹적인 통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차별 심의 제재는 언론의 위축을 가져오고 사실상 반헌법적인 사전검열 효과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류희림 체제 방통심의위와 선방심의위는 공정성·객관성 조항 등을 적용해 '뉴스타파 인용보도', '윤석열 부부·정부여당 비판 보도'에 중징계를 남발했다. 방송사들이 방통심의위 제재에 불복해 제기한 제재효력 정지 가처분은 모두 법원에서 인용됐다. 현재 30건의 제재 처분 취소 소송 중 현재까지 1심 결과가 나온 13건 모두 방송사가 승소했다.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기 방통심의위(2011~2024년) 의결에서 만장일치 비율은 평균 47.6%였지만 '공정성 조항' 적용 심의의 만장일치 비율은 5~6%대에 불과했다. 특히 여권 성향 위원일수록 법정제재에 동의한 비율이 높았다.

지난 2021년 9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 자율규제 강화를 위한 언론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지난 2021년 9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 자율규제 강화를 위한 언론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강 교수는 “그만큼 공정성 심의가 모호하고, 정파적이었다는 이야기”라면서 “정부·여당 측이 다수를 차지한 위원회에서 정부·여당을 비판한 보도 내용이 불공정하다고 판정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한 일”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공정성 심의만 뺀다면 방통심의위는 여전히 필요하다”면서 “헌법재판소도 방심위 제도는 방송의 공적 역할을 고려할 때 합헌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므로 한림대 최영재 교수 말대로 욕설 등 위법·위해한 내용, 즉 ‘낮은 수준의 표현’은 공적 규제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공정성 등 ‘높은 수준의 표현’에 대한 규제는 자율규제가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우선 공정성 조항 적용 심의는 한국방송협회 등의 자율규제에 위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최종적으로는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을 망라한 ‘통합형 언론 자율기구’를 설립해, 점점 중요해지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 문제를 담당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문재인 정권은 말기인 2021년 허위조작정보로 인한 피해를 막겠다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추진했고 언론 현업단체들은 이에 반대했다"며 "그 대신 이들은 자율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 단체의 의뢰로 학자 몇 명이 만들어 준 것이 ‘통합형 언론 자율기구 설립 방안’이었는데, 곧이어 정권이 교체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 추진이 멈추자, 현업단체도 그 약속이행을 멈췄다”고 지적했다.

영국자율규제기구 IMPRESS(왼쪽), 독일 언론평의회(오른쪽) 홈페이지 갈무리
영국자율규제기구 IMPRESS(왼쪽), 독일 언론평의회(오른쪽) 홈페이지 갈무리

강 교수는 “다시 언론 관련 제도를 손보는 시점에서 방송 공정성 심의는 물론 허위조작정보 규제 등을 담당할 자율기구 설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자율규제만이 언론자유와 충돌하지 않는 사회적 책임 실현 방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영국의 임프레스(IMPRESS), 독일의 언론평의회, 스웨덴의 미디어윤리평의회 등 서구 주요 선진국들도 그렇게 한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행정규제기구 Ofcom은 방송지침, 윤리규정 등을 명시하고 있으나 직접적으로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해 심의하지 않는다. 영국은 자율규제기구인 IMPRESS가 자율·사후제재 역할을 담당한다. 다만 민원인이 IMPRESS의 자율규제 결과에 불만족할 경우 Ofcom에 불만 사항을 제기할 수 있다. Ofcom은 민원이 접수된 방송사의 방송법 위반 여부를 검토한다. 

독일 언론평의회는 1956년 언론계가 연방정부의 언론규제법 제정을 거부하고 언론의 자율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설립한 자율규제기구다. 1973년에는 ‘언론윤리강령’을 공식 제정하고, 시민 불만을 접수·심의하는 불만처리위원회를 마련해 언론피해 구제 기능을 구체화했다.

한편 지난해 방통심의위의 ‘보도 공정성’ 심의를 자율규제 영역으로 이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방통심의위원회의 보도 공정성 심의를 폐지’하고, 방송사업자가 자체 심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해민 의원은 지난해 방통심의위 국정감사에서 “류희림 방통심의위의 공정성은 대통령 심기 지키기, 여사 지키기, MBC 표적 심의하기 등 정부·여당 보호 도구”라며 “진영에 따라 공정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늘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 방통심의위는 최소한의 불법 정보만 심의하고 보도의 공정성은 방송사 자율규제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