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때아닌 계엄 논란이다.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의심하던 바가 여야 대표간 회담에서 돌발적으로 언급된 탓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 자체는 평소의 즉흥적 스타일이 반영된 것을 보인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면책특권 포기’ 등을 말하니 “국회의원 특권에 상응하는 대통령 소추권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행정적 독재국가로 흘러갈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맞받으면서 나온 얘기인 것이다. 그러나 인화성이 워낙 높은 이슈를 제1야당 대표가 직접 거론한 셈이 돼 논란이 확대됐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괴담’ 운운하며 더불어민주당을 비난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실은 ‘나치’, ‘스탈린’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그 근거가 뭔지는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정권이 계엄을 준비하고 있다는 주장을 명확한 근거없이 하는 건 바람직한 방식의 정치라고 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 이 주장에 정치적으로 힘을 싣는 걸로 얻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고 본다. 애초에 ‘계엄 준비설’은 강성 지지층 중심의 이슈였다. 뉴스의 중심으로 끌려나올 성격의 얘긴 아닌 거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는 따로 짚어야 한다.
애초 이 의혹은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보내는 이해할 수 없는 인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경호처장으로 일하면서 ‘실세 중의 실세’로 불리던 인사다. 이러한 인사가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가면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 국가안보실장을 맡게 됐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평소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흠모해왔다고 한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12일 신원식 장관이 “언젠가는 김관진을 넘어서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일도 있다고 보도했다. 국방부 장관 출신의 국가안보실장이 됨으로써 신원식 장관은 ‘김관진급’이 되었다. 장관 자리라는 ‘실리’는 어쩔 수 없이 내놨지만 대신 ‘명예’를 갖게 된 모양새인 것이다.
갑작스레 날벼락을 맞게 된 것은 직전까지 국가안보실장이던 장호진 대통령실 외교안보특보다. 그는 자신이 교체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해외 정상 외교 과정에서 국가안보실을 안보전문가 위주로 개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됐고, 장호진 특보의 경우 과거 미국의 헨리 키신저와 같은 위상을 갖는 ‘리베로’ 역할을 맡기기 위해 용산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는 등의 예우를 갖추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4일 동아일보 칼럼을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공사 중인 특보 사무실을 굳이 살펴보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과거 정권에서 ‘특보’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는 시도였을 거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중동과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국가안보 사령탑이 군인 출신으로 교체돼야 했는지 의문”이라고 했고, ‘키신저론’에 대해서는 “그는 6년 넘게 백악관에서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한 최장수 국가안보보좌관”이라고 했다. “키신저의 성과는 충분한 권한과 국가적 지원, 이를 보장받을 직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거다. 결국 장호진 특보에 대한 인사는 ‘한국의 헨리 키신저’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최측근을 국방부 장관으로 보내기 위해 무리를 하는 과정에서 억지로 자리를 만든 것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최측근을 국방부 장관으로 굳이 보내려고 한 이유는 뭘까? 군을 더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뭘까? 군심이 동요하고 있는 일에 대응을 해야 하거나, 앞으로 군심이 동요할 일을 하려는 생각 아니냐는 의심을 해볼 만하다. 채상병 사건과 같은 게 전자에 해당하고 계엄 검토와 같은 게 후자에 해당한다. 마침 계엄을 검토하고 실행하는 주요 과정에 관여할 수 있는 직책의 인사들이 다 ‘충암고 라인’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 아닌가?
물론 군부독재 시절의 비상계엄과 같은 일이 현실화 될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정권이 스스로 말하는 대로, 아무리 실세가 국방부 장관 자리에 앉는다 해도 군이 군말없이 따를지부터가 의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적 맥락도 그렇지만,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되는 일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의 우려대로 실제 군 조직 내에서 계엄 검토와 같은 일이 실행됐다고 해도, 이는 실제 실행 단계에 들어가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수준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국민이 ‘혹시…’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그건 국민이 ‘괴담’에 속는 개돼지(?)여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리더십이 그만큼 불안하게 비치기 때문이다. 가령 대통령이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의료대란 우려에 대해 답변한 걸 보라. 응급실 상황을 포함한 관련 질문을 의료개혁에 반대하는 의사들 주장을 옮기는 것처럼 취급한다. 세상만사가 전부 ‘올바른 개혁에 동조하는 내 편’과 ‘반발하는 상대 편’이다.

대통령은 야당 국회의원이 대통령과 배우자를 향해 ‘살인자’라고 하고 사과를 하지 않았고 피켓 등을 들 거라는 이유로 1987년 이후 처음으로 국회 개원식에 가지 않았다. 이러한 처사에 대해선 조선일보마저도 3일 사설에서 “(야당이 너무한 건 사실이지만) 대통령이 새 국회의 시작을 알리는 개원식에 불참한 것 역시 도를 넘었다”고 했다. 이날 동아일보의 사설 제목은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은 어찌 됐든 납득하기 어렵다”였다. 보수언론도 이해하지 못하는 행보의 연속이라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여의도 호사가들은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 체제의 여당도 믿지 못하게 돼 정치적 편집증에 빠진 상태가 된 게 아닌지 의심한다. 한동훈 대표의 여당과 이재명 대표의 야당이 채상병 특검을 포함한 무언가에 합의해 자신을 탄핵으로 내몰고 위기에 빠뜨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거다. 그래서 국회 전체와 대립하려고 드는 게 아니냐는 거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취임 이후 처음 조회를 열어 대통령실 직원들을 모아놓고 전의를 불태우게 했다는 보도는 이런 호사가들의 전망을 뒷받침하는 정황처럼 생각된다.
대통령실은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의 눈에는 탄핵만 보이느냐’는 식의 공세를 펴면서 계엄 관련 공세를 “탄핵빌드업”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총선 이후 ‘탄핵’은 더불어민주당만 얘기한 게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이 굳이 주장하지 않아도 정권과 국민의힘 사람들이 ‘야당은 탄핵만 꿈꾸느냐’는 식의 주장을 수시로 했다. 당시 일부 언론은 대통령실이 탄핵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고 심지어 ‘그런 경우 역풍을 기대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도 했다. 이 정권과 여당이 그런 식의 대응을 해온 건, 대통령의 리더십은 변할 기미가 없는데 총선 결과 범야권은 개헌선에 겨우 8석 미달하는 192석을 얻게 됐기 때문이다. 탄핵이니 계엄이니 하는 극단적 주제가 뉴스의 중심이 된 근본적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권과 여당이 정말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면 이 근본적 이유를 제거하면 된다. 총선 결과를 이제와서 바꿀 수는 없으니, 대통령의 리더십을 바꾸는 게 남은 유일한 답이다. 그러면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고 야당의 극단적 주장에 기댄 공세는 유권자들의 신뢰를 잃어 역풍의 연료가 될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리더십을 겨냥한 칼을 뽑을 것처럼 행동하던 한동훈 대표는 칼을 도로 칼집에 넣고는 2~3주에 한 번 정도 칼날 일부만 잠깐씩 보여주며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러니 뭐가 될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권과 여당은 현재 여의도 정치 상황의 공범이다. 남탓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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