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의 육성이 나왔다. 명태균 씨와의 통화에서 “공관위(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하는 내용이다. 통화 시점은 2022년 5월 9일로 대통령 취임 하루 전이다. 명태균 씨는 이 내용을 같은 해 6월 15일 지인에게 들려주며 상황을 해설한다. 김건희 여사의 요구를 윤석열 대통령이 들어주지 않다가 결국 원하는 대로 하는 와중이라는 것이다.

의혹은 꼬리를 물고 확산될 수밖에 없다. 첫째, 이로써 대통령이 대선 후보 경선 이후 명태균 씨와 관계를 끊었다는 대통령실의 기존 해명은 거짓말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동훈 대표와의 회동 자리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한 바 있다. 둘째, 대통령의 공천 개입 의혹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셋째,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했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제기돼왔던 의혹은 명태균 씨가 여론조사 등을 왜곡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 대선 후보 경선과 본선에 기여했고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은 이에 따른 ‘거래’의 성격일 가능성이 있다는 거였다. 이제 그러한 의혹 역시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등이 11월 31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녹취 파일을 공개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탄핵 사유로 볼 수 있냐는 질문에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등이 11월 31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녹취 파일을 공개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탄핵 사유로 볼 수 있냐는 질문에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답했다.(연합뉴스)

대통령실의 수준 이하 해명은 이 같은 맥락을 강화한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공천관리위를 통해 뭔가를 보고 받은 일이 없고 따로 지시한 일도 없으며, 명태균 씨와의 통화는 그저 좋은 말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자신이 대통령과 그 배우자를 돕고 있다고 생각하는 명태균 씨에게 “내가 김영선 공천을 부탁했다”고 말만 하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면 그건 뭘 의미할까? 대통령실의 해명은 대통령이 명태균 씨를 속이고 기만하고 농락하고 뒤통수쳤다는 뜻에 가깝다. 대통령의 육성이 공개됐는데 대통령실이 이런 식으로 해명하는 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할 말이 없다는 거 아니겠나.

친윤계라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도 황당하다. 권성동 의원 등은 녹취의 시점 당시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다는 점을 들어 공직선거법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할 공무원 신분이 아니었다는 점을 들어 법률 위반 사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육성이 나왔는데 정권의 주류라는 사람들이 탄핵 사유가 되느냐 아니냐부터 따지고 있는 것 자체가 이 정권이 얼마나 중대한 위기에 빠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 제목으로 유명해진 경구가 있음에도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건 너 나 우리 모두 이 건과 관련해 탄핵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이미 이르러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의혹은 단지 공천 개입이라는 단발성 사건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 씨 사이의 대가관계는 김영선 전 의원 공천으로만 구성되는 것인가? 이른바 창원 산단 문제는 어떤가? 또, 이번 녹취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나듯 명태균 씨와 윤석열 대통령 사이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김건희 여사가 끼어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추가로 공개된 녹취 등을 보면 명태균 씨는 김건희 여사에게 부탁을 받았다거나, 부탁을 해야 한다거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식의 표현을 반복한다. 김건희 여사가 국정 전반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든 표현이다.

10월 3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10월 3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정권이라면 특검이든 어디든 이 사안은 독립성이 보장되는 수사기관에 일단 넘기고 지도자와 정치인들은 민생을 논하자는 식으로 대응을 하는 게 정공법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정권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의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변명으로 일관하며 애초에 수습 못할 사태를 계속 눈덩이 굴리듯 키우고 있다. 국정운영 동력을 복구하기보다는 법적 책임을 면하는 방법을 찾는 데에 혈안이 돼있다는 걸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거다.

녹취의 주요 등장인물인 명태균 씨는 땜질식 오락가락 설명을 하다 급기야 ‘숨겨놨던 휴대전화는 불태우고 죄가 있다면 잡혀가겠다’고 주장하는 데 이르렀다. 설명을 하고 진실을 밝히면 되는데 갑자기 증거를 불태우겠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메시지의 수신자는 누구인가?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나는 민주당에 협력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 믿어주십시오, 그러니 꼬리를 자르더라도 법적 책임은 적당히만 지게 해주십시오’ 이런 뜻 아닌가?

다른 사안에서 범법 의심을 받는 사람들끼리의 증거인멸과 ’원격 거래’(?)가 이런 식으로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과연 검찰은 어떻게 했을까? 이런 광경이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는 특검 사안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에 무슨 더 할 말이 있을 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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