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감사원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 한상혁) 감사에 돌입하기 전 내부 훈령인 디지털 포렌식 실시 기준을 대폭 완화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기관이 포렌식을 하려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감사원이 검찰의 수고를 덜어준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이 감사원과 방통위로부터 받은 자료와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그동안 제한적으로 허용해왔던 디지털 포렌식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첫 적용대상은 방통위였다. 

최재해 감사원장(왼쪽)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사진기자단)
최재해 감사원장(왼쪽)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7월 8일 감사원은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에서 '두 차례 이상 서면 요구를 거부하거나 감사자료 은닉 정황이 있을 때' 등으로 제한하던 포렌식 실시 기준을 삭제했다. 이 밖에 ▲포렌식 사전 절차 ▲직무수행 관련 디지털 자료 선별 추출 ▲디지털 자료 감사목적 외 이용금지 ▲디지털 자료상 개인정보·비밀 누설금지 등의 규정이 삭제됐다. 총 7쪽에 달하던 규정은 2쪽으로 축소됐다. 포렌식 결재자도 1급 간부 이상에서 국·과장 위임으로 간소화됐다. 해당 규정은 2020년 10월 피감사자 권익보호 강화를 위해 제정됐다. 

7월 11일 개정된 규정이 시행됐으며 이날 감사원은 방통위에 '감사실시 예고' 공문을 발송했다. 감사원은 7월 14일 '감사업무 쇄신 단행'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디지털 포렌식과 관련해 결재 단계를 간소화하고 대원칙 중심으로 검토기준을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이날 방통위에 '디지털포렌식 실시 통지서' 공문을 보냈다. 

민주당은 감사원이 전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대비해 내부 훈령을 개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 기동민 의원은 11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의 통화에서 "방통위에 감사실시 예고 공문을 발송했 때 방침이 처음 시행돼 적용됐다. 감사원의 디지털 포렌식 실시 기준 대폭완화가 사실상 수사 예비단계에서 근거자료로 쓰이고 있다"며 "자료 전체가 사정기관, 검찰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심각한 인권유린 행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기 의원은 "감사원이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 효율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 분담에 충실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법에 명시된 자기 직분과 역할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감사원과 검찰의 포렌식 공조는 감사원이 검찰의 수사 청부기관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며 "대통령실의 지시와 내통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3일 검찰이 압수수색 중인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건물에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3일 검찰이 압수수색 중인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건물에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감사원은 지난 6월 22일부터 2개월 넘게 방통위 감사를 벌였다. 감사원은 방통위에 상설 감사장을 두고 면담조사와 PC 하드디스크 포렌식 등을 진행해 이례적인 고강도 감사라는 지적이 방통위 안팎에서 제기됐다. 

감사원은 PC 하드디스크 포렌식과 2020년 종편·보도전문PP 재승인 심사위원 대상 소환조사를 벌인 결과 방통위가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를 조작한 정황을 확보했다며 '수사참고자료'를 검찰에 이첩했다. 포렌식 자료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수사참고자료'를 바탕으로 지난달 23일 방통위와 일부 재승인 심사위원 등을 압수수색했다. 

감사원은 재승인 심사위원들을 소환조사하면서 심사위원들이 수기로 작성한 채점표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채점표에는 수정 전 점수가 병기돼 있다고 한다. 감사원이 확인했다는 '점수 조작 정황'으로 추정된다. 

서울북부지검이 제시한 압수수색 영장에 따르면, 한 심사위원은 TV조선의 중점심사사항 중 일부 항목 점수를 기존보다 올려 수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심사위원 한 명은 중점심사사항이 아닌 다른 항목의 점수를 수정했다. TV조선은 중점심사사항에서 과락 평가를 받아 '조건부 재승인' 또는 '재승인 취소' 대상에 올랐으며 이후 방통위로부터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다.

감사원은 '디지털 자료 수집 및 관리 규정'을 타 기관 기준을 참고해 지난 6월 30일 개정했으며 방통위 감사 실시를 염두에 두고 개정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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