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아빠 찬스’ 특혜채용 의혹은 선관위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건이다. 그런데 정치권이 이 사건을 계기로 선관위를 바람 불기 전에 드러눕는 존재로 만드는 게 바람직할까? 그렇진 않다. 그렇잖아도 정치권은 선관위와 ‘이해충돌’ 관계에 숙명적으로 놓여있지 않나.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다루듯 해야 할 텐데, 전혀 그런 고려는 없어 보여 유감이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하는 것은 더불어민주당과 유착됐기 때문”이라는 식의 정권 차원의 총공세를 어떻게 봐야 할까? 선관위의 감사 거부가 자신들의 ‘철밥통’을 유지하고 이 문제를 유야무야해야겠다는 취지라면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거부할 만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그건 살펴봐야 할 문제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2일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회의를 마치고 위원장실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2일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회의를 마치고 위원장실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양쪽은 여러 법적 쟁점을 거론하고 있다. 가령 감사원의 직무감찰규칙은 직무감찰대상 및 사무를 열거하고 있는데, 여기에 선관위가 포함된다고 볼 것인지는 애매하다. 선관위가 헌법기관이냐 행정기관이냐, 헌법기관이라 하더라도 인사 관련 사무가 대상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 등의 쟁점에선 이쪽 얘기 들어보면 그게 맞는 거 같고, 저쪽 얘기 들어보면 또 그것도 맞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법리적 논쟁보다 더 중요한 핵심은 감사원의 직무감찰이 정치적으로 오염될 소지가 없느냐 하는 거다. ‘직무감찰’은 쉽게 말해 대상이 되는 기관이나 공무원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감찰하는 것인데, 비유하자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탈탈 터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감찰을 수행하는 주체의 임의적 편의적 성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구체적 혐의가 있을 때 법에 따라 진행하고 방어권 행사를 보장해야 하는 수사기관의 수사와는 다르다.

선관위는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중립적이고 독립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주체이다. 만일 감사원의 직무감찰이 정권의 정치적 의도를 갖고 진행된다고 하면 선관위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을까? 중앙일보 등 언론 보도를 보면 이미 1994년 감사원법 개정 당시 신민당(정주영이 창당한 통일국민당과 박찬종의 신정치개혁당이 합당한 당으로 1980년까지 존재한 신민당과는 별개)의 유수호 의원(유승민 전 의원의 부친이다)은 “만약 대통령이 ‘집중적으로 선관위를 직무 감찰해서 야당이 선거운동을 못 하도록 통제하라’고 하면 감사원장이 대통령 말을 안 들을 수 있겠느냐”, “감사원의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이 야당을 탄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물론 이 보도는 당시 감사원법 개정안은 선관위를 직무감찰 예외 대상으로 적시하지 않는 걸로 결론냈으므로 지금도 직무감찰 대상으로 보는 게 맞다는 취지인데, 한국일보는 관련 보도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여야는 1995년 쟁점 사안을 재논의하자는 합의 각서를 쓰는 조건으로 원안을 통과시켰지만, 재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때도 논란의 여지를 남긴 채였다는 거다. 이후에도 양당은 자리를 바꿔가며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직무감찰을 하게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로 다퉈왔지만 유야무야 된 게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내용이다.

아무튼 이 우려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선 감사원이 그야말로 엄정중립의 역사를 지켜왔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했다. 감사원의 위상과 존재감이 커진 것은 문민정부에서 감사원장을 맡았던 이회창 전 총리 덕인데, 그는 ‘대쪽’ 이미지로 정치적 체급을 키워 대선에 도전하는 등 정계에 입문했다. 근래 들어서는 대통령이 감사원장 후보자를 지명할 때마다 논란이 되었는데, 이명박 정권 때는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정동기 변호사를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하는 바람에 여당이 나서서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 사퇴를 시키는 촌극이 벌어질 정도였다. 문재인 정권에서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해 탈원전 감사를 밀어붙인 최재형 감사원장은 스스로 감사원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킨 상징적 인물이 될 기회를 걷어차고 누구의 말에 휘둘린 것인지 ‘제2의 이회창’ 모델로 대선 출마를 강행했다 중도에 그만두는 방식으로 정계입문한 상태이다. 최재해 현 감사원장은 ‘감사원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인가’라는 국회의원의 질의에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해 논란이 된 일도 있다. 과연 감사원이 중립적이고 독립적으로 직무감찰을 할 수 있는 주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연합뉴스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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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정권에선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의 행태가 논란이 된다. 선관위가 직무감찰을 거부하면 지구가 멸망하는 것처럼 하는 태도의 배경에도 이 인물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독특한 ‘동물의 왕국’ 세계관으로 이미 논란이 됐는데, 송사리 피래미 급 사건이 아닌 '고래급 상어급 사건'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해 감사 인력 교육에 활용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감사원 사무처를 총괄하는 인사가 “상어급 이상의 사냥에 몰입해 국가와 국민에게 의미 있는 임빠꾸(‘임팩트’를 표현하려 한 걸로 추정됨)를 주는 감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안의 중대성보다는 여론에 미치는 영향을 우선시하겠다는 것 아닌가? 중진 의원이나 회장님 수사를 해야 검찰의 권한이 커진다는 특수부 검사 스타일의 세계관과 판박이다.

물론 어떤 사건의 경우에는 특수부 검사 스타일로 거악과 맞서야 할 필요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선관위가 그럴 대상인가? 여당은 선관위가 “쇼핑하듯 조사기관을 선택한다”고 비난했는데, 어차피 경찰이 수사해도 검찰에 송치하면 보완수사든 압수수색이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이러는 것은 수사기관이 법원이나 그에 준하는 기관에 대해선 막무가내로 칼을 휘두르는 걸 부담스러워 하니 호승심과 명예욕에 불타는 행동대장을 앞세워 목표를 달성하려 하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

그 ‘목표’란 뭔가? 국민의힘은 선관위에 대하여 비이성적 문제제기를 계속해왔다. 부정선거 논란이나 현수막 문구 시비 같은 게 대표적이다. 선수가 심판을 흔들고 싶어하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노출해온 셈인데, 그 연장선이 아닌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 떠나서 감사원의 이런 상태가 유지된 채로 직무감찰이 이뤄지는 게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유병호 사무총장 체제의 감사원이 일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할 것이다. 백보 천보 만보를 양보해 그렇다 치자. 다음 정권, 다다음 정권의 감사원도 그러리라고 보장할 수 있나? 앞서 유수호 의원이 과거 우려했던 “대통령이 ‘집중적으로 선관위를 직무 감찰해서 야당이 선거운동을 못 하도록 통제하라’고 하면…”의 상황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나? 그때가서 부당한 시도에 선관위가 저항하면 “과거에 직무감찰을 수용한 사례가 있다”며 압박할 거 아닌가?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을 정당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면 감사원의 위상을 그에 맞게 조정하는 게 필요하다. 최소한 대통령 직속기관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중립적 독립적 위상을 갖도록 하자는 대안이 함께 제출돼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유병호 사무총장 논란 때 이미 이런저런 감사원 개혁안이 논의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감사원을 국회 산하기관으로 전락시켜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통제하려는 초헌법적, 명백한 헌법 파괴 행위를 즉각 중지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이 제출한 개헌안에는 대통령 소속인 감사원을 독립기관화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때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개헌안의 이런저런 다른 내용을 들어 “사회주의 개헌”이라며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이런 전례를 볼 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자는 얘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방도가 있겠는가? 물론 선관위가 논란을 자초한 면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이런 태도가 오히려 선관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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