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미디어스에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한지도 열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주에 1회씩 글을 기고하다보니 어느새 20회나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시기적절하게 이주와 관련된 이슈에 대한 내용도 있었지만 때때로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한명의 활동가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을 때도 있었다. 이번 글은 20회를 맞이해서 그동안 만나왔던 이주노동자들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적어볼까 한다. 물론 노동시장 구조개악이나 파리 테러사건을 빌미로 한 테러방지법 제정 등으로 인해 시국이 뒤숭숭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한번 숨을 고른다는 의미에서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 이주노동자는 노동조합에 와서 처음으로 간 화성보호소에서 만난 젊은 베트남이주여성노동자였다. 무작정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그녀는 미등록으로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단속에 걸렸다. 여권도 잃어버리는 바람에 본국에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치 감옥과도 같은 보호소 면회실에서 투명한 아크릴 창 반대편에서 수화기를 통해 도와달라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어떻게 해야 하나’ 몇날며칠을 고민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을 해보니 그런 경우는 대사관을 통해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으면 된다고 해서 무작정 대사관을 찾아가 직원을 붙잡고 통사정을 했다. 다행히 직원의 도움으로 증명서가 발급됐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비행기값도 마련해 귀국할 수 있었다. 연신 “고맙다”면서 창밖에서 인사를 하는 그녀를 보면서 쫓겨나가는 사람이 고마워해야하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꽤나 오랫동안 함께 친구로 지냈던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이다.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에도 여러 번 나오는 롯데월드도 같이 놀러가고 송별회도 해주었던 바로 그 친구이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잠시 동안 같이 활동을 했지만 지금은 여러 이유들로 인해서 지방에 내려가 돈을 벌고 있다. 알고 지낸 건 5년이 넘고 1년 여 동안 함께 여러 활동들을 했는데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가끔 같이 갔던 식당이나 건물에 갈 때면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누가 보면 마치 여자친구와 이별한 사람같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이라는 것이 결국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를 잡고 계기가 있을 때마다 떠오르게 만드는 것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친구와의 헤어짐의 과정이 그리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긴 어려워서 일부러 마음속으로 잊고 살려고 했는데 얼마 전에 걸려온 전화 한통이 여러 감정들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가끔 ‘내가 왜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더욱 더 친해지기 어려운 이주노동자운동을 하고 있을까? 과연 내가 정말 믿고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이주노동자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고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 때마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걸 내려놓고 솔직하게 화도 내고 울기도 했던 친구가 한명 있었다는 게 삶의 위안이 될 때가 있다.

▲ 다같이^^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실명을 밝히자면 이주노조 우다야 위원장님과 섹알마문 수석부위원장님이다. 우다야 위원장님은 무려 4년째 위원장과 상근자로써 관계를 맺고 있고 섹알마문 수석부위원장님은 나이차는 나지만 언제나 편하게 이야기하고 술 한 잔 할 수 있는 형님이기에 소중한 사람이다. 올해 이주노조 합법화 쟁취에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결국 우다야, 마문 동지들의 책임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면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 이주노조 10주년 후원의 밤 행사를 치르고 합법화 이후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면서 이 어둠 같은 시기를 같이 헤쳐 나오고 있는 두 명의 이주동지들의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아마 조만간 이 두 동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경산이주노동자센터 후원주점에서 찍은 사진)

이밖에도 포천아프리카예술박물관 사건으로 만난 부르키나파소, 짐바브웨 이주노동자들, 이주노조 농성장에 하룻밤 자기 위해 전국에서 왔던 이주동지들, 본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SNS를 통해서 간간히 소식을 전해주는 이주노동자들 모두가 그립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지난 20회 동안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입장이나 관점에 대해서 작성하려는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었는데 결국은 그 안에 이주노동자들도 똑같이 사랑하고 슬퍼하고 때로는 화도 내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메르스 사태 때 병원에 가도 될지 걱정하는 이주노동자, 세월호 1주기 때 똑같이 슬퍼서 눈물 흘리는 이주노동자,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 분노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이 모두가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 좀더 사람냄새가 풍기는 그런 글로 다가갈 것을 약속드리고자 한다.

끝으로 광고 하나! 이번 주 일요일 고려대학교에서 이주노동자와 한국대학생들이 몇 달동안 브레히트의 극을 토대로 한국현실에 맞게 각색연출한 <예라고 하는 사람, 아니오라고 하는 사람>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평소에 이주노동자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이주노동자와 대학생이 함께 만드는 연극 한편 관람하는 것도 이번 주말의 멋진 추억이 되지 않을까?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포스터를 확인해주시기를 바라며 오늘의 추천 노래는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우리 모두는 아름답다!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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