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이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는 것이다 보니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이주아동을 만나는 일이 생기곤 한다. 그 중에 생각나는 일화 하나, 화성에 있는 태국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하는 날이었다. 한국어가 능숙한 이주노동자들이 많지 않다보니 당일 검사를 위한 보조통역으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태국인 여학생이 와서 큰 도움을 줬다. 고마운 마음에 빵이라도 하나 더 줄까 해서 ‘배고프니’ 묻는 질문에 ‘그딴 거 안 먹어’라는 매몰찬 대답이 돌아와서 내심 당황했다.

건강검진이 끝나고 집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차를 타고 가면서 뭔가 내가 잘못한 게 있나 해서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러자 입을 꼭 다물고 있던 링(가명)이 해준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11살 때 중도입국을 했던 링은 서투른 한국어 실력 때문에 2년을 낮춰서 초등학교 2학년으로 입학을 했고 동급생에 비해 나이도 많고 피부색도 다르던 탓에 선뜻 아이들 곁으로 섞이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했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게 이야기를 건네면 험한 말을 쓰거나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링의 가장 큰 고민은 중학교에 가서는 친구도 많이 사귀고 싶은데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럴 바에는 그냥 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일을 하고 있는 부모님 사정 때문에 갈 수도 없었다. 그 뒤로 링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던 끝에 인천에 있는 이주아동을 위한 대안학교를 찾았는데 이곳은 한국어 수업능력을 기르기 위한 1년간의 임시과정만 위탁교육이 가능해서 링에게는 맞지 않았다.

서두가 좀 길었는데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이주아동들을 만난 적이 있다. 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을 다니다가 산재를 당한 아이, 단속 때문에 무서워서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아이, 결국 단속에 걸린 부모님을 따라서 귀국하는데 모국어를 전혀 몰라서 걱정하는 아이 등을 만나면서 이주아동에 대한 고민은 계속 깊어졌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에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 자녀가 19만1328명이라고 하고 중학생의 경우 39.7%, 고등학생의 경우 69.6%가 학교를 중도에 이탈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추산이지만 부모가 미등록체류를 하고 있어서 본국에도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무국적아동이 대략 2만 명에 달한다는 국가인권위의 조사결과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난 2014년 12월18일 이자스민 의원 대표 발의로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주아동이 국적, 체류자격과 상관없이 교육권, 건강권, 사회권을 보장을 받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 법안의 취지이다. 하지만 이 법안에 대해서 인터넷상에서 ‘세금도 안내는데 무슨 권리를 보장해야 하느냐’는 내용의 비난 여론이 들끓으면서 국회 법사위에서 계류하고 있어 19대 국회에서 통과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인 상황이다. 이 법안이 하루빨리 통과돼 한국이 1991년에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이주아동을 포함해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아동에 대해 아동의 성장과 복지를 위한 특별한 배려와 적절한 법적 보호가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무지개학교 특강. 사진 가운데가 필자

한편으로는 이런 이주아동들이 마음 편하게 스스로의 꿈을 찾을 수 있는 통합형 대안학교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얼마 전 과천에 위치한 무지개대안학교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특강을 하기 위해서 방문한 적이 있다. 이른바 연령통합, 과목통합,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시행하는 것을 보면서 적잖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실제로 특강이 끝나고 같이 점심식사를 할 때까지 발달장애학생과 주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는 모습은 오랫동안 통합교육을 받아온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애초에 이주아동에 대한 통합교육까지 고려를 했는데 아직 그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특강 말미에 주변에 있는 이주민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 하나부터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자주 교류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던졌다. 마침 또 11월에 있는 인권문화제에 인종과 관련된 주제가 있으니 이주노조에서 부스행사 또는 공연 참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가능하다면 서두에 이야기했던 링과 같은 이주아동들도 초대해서 인권문제에 관심 있는 학생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언젠가 이주아동과 장애아동을 비롯한 다양한 아동들이 함께 모인 대안학교에서 뭐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꿈꾸며 오늘의 추천노래는 한국 최초의 대안학교인 간디학교의 교가 <꿈꾸지 않으면>이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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