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엘리엇(Eliot)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 : 1922년작)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est month)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실 12달 중 어느 달이 고달프지 않겠냐만은 적어도 2014년 4월16일 이후로 매년 4월은 우리들에게 304명의 목숨이 꺼져가는 것을 생중계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가장 잔인한 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잔인한 달은 비단 한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와 이주노조 10주년 기념행사를 하루 남긴 4월25일은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이주노조 조합원들에게 전화를 해서 내일 꼭 일정에 나오라고 신신당부를 하던 차에 쿠마르형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25일 오전에 7.9 규모의 대지진이 네팔을 강타하여 수천 명의 사상자와 천문학적 규모의 건물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지 통신 및 전기 시설이 마비되어서 가족들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항상 밝은 목소리로 통화를 하던 쿠마르형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슬프게 들려서 차마 “괜찮을 거에요”라는 위로조차 못하고 다른 곳에 더 알아보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로 찾아본 뉴스들과 SNS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정말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계속되는 여진으로 인해 집을 나와서 노숙해야 하는 사람들, 장비가 없어 손으로 사람을 구조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들이 연일 보도되었다.

자연재해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인간은 쉽게 무기력해진다. 급하게 세월호 리본을 구해서 여러 나라 이주노동자들과 네팔 지진 피해 희생자 추모와 실종자 귀환을 기원하는 묵념과 추모행진을 진행했지만 그것은 우리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줄 뿐 끔찍한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 역시 주변 조합원들에게 전화를 돌려서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급하게 네팔로 휴가를 가야하는 노동자 대신 사장에게 부탁을 하는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간들만 흘러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네팔로 귀국한 이주노동자들이 만든 신미궈(solidarity center of nepalese migrant workers: SCENEMIGWO)에서는 미처 손이 닿지 않는 오지에 쌀 소금 담요 텐트 같은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또한 민주노총에서는 네팔노총과의 논의를 거쳐 5월1일 노동절을 시작으로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대규모 네팔지진 피해복구를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이주노조 역시 신미궈를 통해 가장 빠르게 필요한 곳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합원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시작하였다. (우리은행 1002-746-400396 Rai Roshan)

하지만 언젠가는 이 구호의 손길이 멈추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 당장 생사를 가르는 긴급구호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전국토를 강타한 대지진으로부터 네팔 국민들이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장기적인 지원과 연대가 꼭 필요할 것이다. 그 방법이 무엇일지 아직 가늠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후원을 하는 것, 네팔 현지 소식에 대해서 글을 통해 알리는 것, 무엇보다도 고국의 아픔을 견뎌내고 있는 네팔 이주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놓지 않는 것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잔인한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유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무회의에서 통과되고 네팔 대지진의 사상자는 만 명을 돌파했다. 그래서 쿠마르형을 비롯한 네팔동지들에게 쉽게 힘내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기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잔인한 봄을 견뎌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리고 네팔의 있는 이름 모를 민중들도 “희망”을 찾고 또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다시 또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주던 그대를
눈물과 아픔도 쉽게 이겨낼 수 있도록 지켜주던 그대를 희망을
- 꽃다지 3집 <진주> 중 ‘희망’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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