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최초로 이주노동자들이 일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필리핀 출신 가사노동자들이 서울 강남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1987년의 동아일보 기사를 미루어 짐작컨대 88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이 아시아지역에 널리 알려지면서 알음알음 이주노동자들이 입국한 것이 시초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대략 30년 동안 한국 땅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것이다.

1991년 해외투자법인 연수제도(해외에 공장이 있는 한국 사업주가 현지 노동자를 한국에 데려와서 기술 연수시키는 제도)가 실시되고 1994년 산업기술연수제도(해외노동자에게 한국의 선진 기술을 가르쳐주는 목적으로 연수생을 받아들이는 제도)를 거쳐 2004년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서 현재까지 15개 국가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15년 약 57만명의 이주노동자가 국내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제도는 계속 바뀌고 이주노동자들의 숫자 역시 나날이 증가하는데 이주노동자들이 처지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노동조합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첫마디로 “우리 회사 사장님 나빠요” “월급 안줘, 때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나쁜 말 해요”라고 말한다. 오래 전 유행한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이 계속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최초의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당선된 이자스민 국회의원은 지난 9월2일 이주노동자 노동권 향상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에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이 토론자로 참석한 것은 실제 정부와 여당에서 고용허가제를 바꿀 의지가 있는지를 타진하기 위함이었다. 몇 달 전부터 이자스민 의원실과 이주 관련 단체들이 고용허가제 7대 문제점을 선정하고 (① 사업장 변경 제한, ② 주거환경과 식대, ③ ‘성실근로자’ 재입국 취업, ④ 알선장 없는 구직활동, ⑤ 사업장 변경 기간 제한, ⑥ 산업재해 보험 미적용 사업장 취업, ⑦ 출국만기보험제도의 퇴직금 권리 제한) 고용노동부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몇 차례 가졌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실질적인 개선방안이 제출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당일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발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현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바꿀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7대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들 중에서 출국 후 14일 이내 퇴직금을 받도록 되어있는 출국만기보험제도의 경우 오히려 긍정적으로 제도가 안착화했다고 평가하면서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긍정적 성과로 포장하기 바빠 보였다.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과 방청석에 있는 이주활동가들이 현행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다양한 사례들과 개선방안까지 언급했지만, 그때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신중히 검토를 하겠다면서 어느 하나도 개선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세미나의 취지조차 무색할 정도로 안타까웠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차별적용하자는 국회의원들의 발언이나 저성과자나 근무불량자를 해고할 수 있는 일반해고에 대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겠다는 9·13 노사정 야합은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나마 남아있는 노동권조차 박탈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사장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너네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사업장에서 쫓아내는 이주노동자가 이주노조에 찾아와서 결국 부당해고를 다투어 승소한 사례가 적지 않은데 이마저도 일반해고를 통해 합법적인 해고를 남발하게 되는 것이 심히 우려가 된다.

민주노총에서는 “노사정 야합 규탄! 가짜 노동개혁 분쇄! 재벌책임 노동개혁 쟁취!”를 내걸고 9월19일 토요일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오후3시부터 총파업 선포 결의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주노동조합도 한국인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하고자하는 정부에 맞선 투쟁에 함께 하고자 한다.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후퇴하면 가장 먼저 철퇴를 맞는 사람이 바로 이주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민주노총과 이주노조의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켜내는 투쟁에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를 해주시길 바란다.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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