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엄명환(오렌지가 좋아)님이 2시 40분에 영면하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과 장례식장 등이 협의되는 대로 다시 공지드리겠습니다.”

지난 6월 10일 수요일, 사무실에서 회의 참석차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순간 머리가 아찔거리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눈물이 계속 멈추지 않았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떠난 것도 아닐뿐더러 솔직히 고백하자면 술 한잔도 같이 해보지 못한 故 오렌지님이 떠난 것이 그 순간에는 너무 슬펐다.

▲ ‘오렌지가 좋아’ 활동가(오른쪽)의 모습 (사진=다산인권센터)

故 오렌지가 좋아(본명 엄명환)님을 떠올리면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이 수원이주민센터 주최로 열린 이주민의 날 행사장이다. 행사 마지막 순서로 단체사진을 찍는 게 있었다. 작은 키에 엄청 무거운 배낭을 매고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약간 안쓰럽기도 했다.

사실 재차 고백하자면 난 故 오렌지님이 비싼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주민활동가로 당시에 착각했었다. 또한 화성 팔탄지역에서 공장이 폭발하여 영정사진조차 없는 이주노동자의 장례식을 치르고 화성시청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할 때에도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故 오렌지님은 자리를 지켜주었다. 그 밖에도 경기이주공대위 주최로 열리는 기자회견, 캠페인, 집회 등등 거의 모든 일정에 故 오렌지님은 항상 카메라를 들고 함께 했었다.

▲ 오렌지님은 이주노동자, 삼성 백혈병노동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밀양 할매할배들을 기록해왔다.
▲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후원의 밤 오렌지님이 찍은 사진. 황상기 어르신과 고 황유미 역을 맡은 박희정 배우.

그리고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故 오렌지님이 찾아간 현장이 비단 이주노동자 뿐만 아니라 쌍용차 해고자 복직 투쟁, 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 인정 투쟁,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등 투쟁현장을 종횡무진 하면서 연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12살때부터 신부전증으로 앓아서 이틀에 한 번꼴로 투석을 받아야 하는 몸에 전국의 현장을 누빈다는 것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추모제 중에 생전에 故 오렌지님이 찍었던 사진들을 영상으로 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 사진 한 장 한 장이 정말 따뜻한 시선들로 가득차 있었다. 사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찍는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사진 속에 담긴다면 故 오렌지님은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떠나고 열흘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제 농담처럼 기자 없이 기자회견 하게 생겼다고 하소연할 때 달려와서 카메라를 들어줄 故 오렌지님이 더 이상 없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너무 자연스러워서 차마 따로 술 한잔 하자고 이야기 해 볼 생각조차 못했던 故 오렌지님이 꽤나 긴 휴가를 떠났다.

故오렌지님의 장례식장을 가면서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노래를 소개하면서 마무리짓고자 한다. 생전에 술 한잔도 못해보고 사랑이니 뭐니 하고 떠드는 것도 우습다고 생각하여 사실 이 글을 쓰는 것도 주제넘는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故오렌지님이 찍은 그 사진들이 있기에 그 힘겨운 투쟁의 과정들이 때로는 마음을 따뜻하게 때로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오래오래 사람들 마음에 기억되리라 믿는다.

오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 김광진 3집 <편지>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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