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의 발단은 현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이자 영화를 3편이나 찍었고 매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까지 한 섹알마문 형의 말 한마디였다. “진우야, 너 예전에 연기하고 싶다고 했잖아. 내가 좋은 작품 하나 있는데 출연해볼래?”

솔직히 고백하자면 별 생각없이 보조출연 정도 하겠지 라는 마음에 흔쾌히 승낙했다. 시간이 흐르고 무더운 여름에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약 한 달 간 노숙농성도 하면서 내 머릿속에서 마문 형의 제안은 까마득히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문 형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다음 주 화요일에 시간 비워놔, 마석 가서 하루종일 촬영해야 해.”

가을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던 9월의 어느 날 몽골, 방글라데시 온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한국에서 태어나 영상 출연은 처음 해보는 나까지 가칭 <이주노동 인권 영상>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 몇일 전 대본을 받았는데 내 역할은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었다.

<도움맨> 30세, 백수캐릭터, 도움을 주고 싶어하고, 아는 정보도 많다. 하지만 행동은 허당

심지어 촬영 당일 정소희 감독님이 도움맨 의상으로 ‘M’이라는 알파벳이 크게 프린팅 되어있는 티셔츠와 망토,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경과 모자까지(다행히 모자는 머리크기에 비해 너무 작아서 포기) 건네주셨다. 흡사 어릴적 슈퍼맨 놀이할 때 입고 다니던 바로 그 복장이었다.

▲ 이텔몽크와 함께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한국에 이제 막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공장에서 여러 문제(근로계약서, 월급계산, 산재처리, 체류연장, 퇴직금 등)가 생길 때마다 주변에서 같이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물어봐도 속시원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럴 때 어디선가 M맨이 “그 문제 내가 알려주지!” 하면서 갑자기 나타나 자기가 아는 내용을 마구 떠들어댄다.

문제는 M맨 캐릭터가 허당이라는 점! 과장된 행동과 웃음소리, 느끼한 말투, 허둥지둥 하는 발걸음까지 연기 초짜인 내가 하기에 너무 고난도 연기였다(실제로 스스로의 연기가 너무 오글거려서 몇 번씩이나 NG를 냈다). 영상 마지막 부분에 무반주로 노래까지 불러야 한다고 했을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여긴 어디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시쳇말로 멘붕이 왔다.

사실 이 사업은 서울시에서 외국인근로자를 지원하기 위해 위탁을 준 사업 중 하나로 시작된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평소에 겪을 수 있는 여러 문제 상황에 대해서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목적으로 총 5편의 UCC를 촬영하는 것이다. 공익적인 목적으로 촬영하는데다가 평소에 일하던 모습 그대로 출연하면 된다고 해서 승낙한 것이었는데 연기를 하면 할수록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흑역사를 그것도 영상으로 찍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 촬영현장

아마 다음 달에 영상 후반작업이 완료되면 유투브에 총 50분 가량의 영상이 뜰텐데 과연 내가 이 영상을 교육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그전에 망토를 펄럭이며 뛰어다니는 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나 있을지가 심히 의문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법, 후반부에 가서는 기왕 찍는거 혼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이날 영상 촬영을 위해 마석공단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야만 했었다. 여전히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가야 나오는 허름한 이주노동자 기숙사, 10분만 있어도 머리가 아플정도로 먼지가 날리는 공장, 흔한 술집 하나 찾아보기 힘든 어두컴컴한 골목 등 마석가구공단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스산한 풍경이었다.

뒷풀이를 하면서 같이 출연한 이주노동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상에서 이제 막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로 출연했던 방글라데시 친구는 실제로 처음 일했던 사업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해서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중이어서 그런지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와닿았다고 한다. 한때 이주노동자로 일을 하다가 지금은 한국어능력시험 6급을 따고 대학입학을 준비했던 몽골 친구는 같은 몽골 출신의 이주노동자를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추천 노래는 영상 마지막 장면에서 무반주로 M맨이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불렀던 박상철님의 <무조건>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불러준다면 무조건 달려갈꺼야! 라고 차마 호언장담은 못하더라도 전국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어디 나 혼자 짊어질 수 있겠으랴,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전국의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이주활동가들과 함께 오늘도 달린다!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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