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서울역광장에서 2015 국제성소수자 혐오반대의날(아이다호)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때마침 이주노동조합에서도 합법화 캠페인을 기획하던 중 좋은 기회다 싶어 부스를 신청했다. 하지만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다고 했던가. 부스신청과 함께 그날 저녁에 열리는 본행사에서 인권활동가 합창단에 함께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덜컥 승낙해버렸다. 합창곡은 지민주님의 <길 그 끝에 서서>였는데 워낙 유명하고 학생 때부터 즐겨 듣던 노래였기 때문에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합창날 D-day가 다가오는데 합창연습을 언제 어디서 하겠다는 연락이 전혀 없었다. 같이 하기로 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워낙 인권활동가들이 바쁜 바람에 모일 수가 없어서 당일 행사장에서 잠깐 연습하고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은 핸드폰에 음악을 넣고 무한반복해서 듣는 것뿐이었다.

드디어 행사 당일, 서울역광장은 전국에서 모인 성소수자단체들과 인권단체들로 북적였다. 한편 “항문섹스도 인권이냐” “동성애는 망국이다” 등 아주 선정적인 단어들만 골라서 피켓팅을 하고 있는 종교단체라고 말하고 차별주의자로 보이는 분들도 계셨다. 2시부터 부스행사가 시작되어 이주노조 합법화 유인물과 엽서쓰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엽서 쓰고 가세요”라고 이야기하는 도중 멀리서 한 목사님의 기도소리가 들리는데 흡사 속사포랩퍼로 유명한 아웃사이더에 버금가는 랩실력을 뽐내셨다. 아마 바로 앞에서 듣는 신자들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지만 듣거나 말거나 기도소리는 계속 울려퍼졌다.

2시간 동안의 부스행사가 끝나고 천막 뒤에서 처음으로 만난 합창단원들이 핸드폰 스피커에 맞춰서 <길 그 끝에 서서> 노래 연습을 시작했다. 본 공연까지 2시간 남짓 남은 상황에서 노래 제목마냥 백척간두의 정신으로 노래연습을 하니 가사도 빨리 외워지고 일단 큰 목소리로 내지르는데까지는 성공했다. 합창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화음(!)이지만 애초에 2시간 만에 화음을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악보를 보더라도 가사는 틀리지 말자는 결의를 다지고 리허설을 마쳤다. 그러던 중에 무대 옆에서 몇몇 사람들이 몰려와 악다구니를 써가면서 성소수자들에게 혐오발언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떤 분은 그 말에 너무 상처를 받은 나머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합창 사진. 필자는 왼쪽에서 세번째.

그때 합창을 잘하든 못하든 최소한 이 가사에 담긴 마음이라도 잘 전달해서 상처받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리고 오른 무대에서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불렀던 것 같다. 다행히 다시 눈을 뜨고 바라본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깃발을 흔들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웠다.

합창 이야기를 주저리 늘어놓았지만 사실 5월17일은 1990년 같은 날 WHO(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것을 기념하여 HOMOPHOBIA, TRANSPHOBIA에 대항하는 전 세계 공동행동의 날이다. 사실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한국사회에 거주하는 180만명에 가까운 이주민 안에서도 다양한 성소수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주노동조합 규약 제13조(권리)에서 모든 젠더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족한 실력이지만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소수자들과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활동가들의 합창은 그 자체만으로도 분명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글을 쓰는 도중에 아이다호 데이와 관련하여 여러 자료를 찾다보니 이미 전세계적으로 아이다호 데이에 대한 노래 ‘you make me proud’를 합창한 영상이 있었다.

‘내가 춤출수 없으면 혁명이 아니다’라는 책제목처럼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이 모여서 함께 노래하는 것만큼 즐겁고 힘이 나는 것이 또 있을까? 아무리 소수자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연대의 목소리로 함께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 힘을 믿기에 조만간 이주노동조합 행사에도 인권활동가 합창단을 초청해보고자 한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얍!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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