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지만 난 노래를 참 좋아한다. 술이 한잔 들어가면 2차로 무조건 노래방에 가자고 해서 언젠가부터 내가 노래방의 ㄴ자만 꺼내도 다들 안 된다고 일침을 놓는다. 그렇다고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글부터는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를 하나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이번에 내가 소개할 곡은 2003년도에 안재욱4집 ‘Reds In Anjaewook’에 실린 ‘친구’라는 곡이다. 원래 주화건이라는 중국의 국민가수가 1997년에 발표한 노래를 안재욱이 번안해 불렀다. 흔히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마지막에 다 같이 부르는 대표적인 노래(비슷한 노래로 015B의 ‘이젠안녕’, 전람회의 ‘졸업’ 등…)인데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가 정말 좋아서 부를 때마다 울컥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갑자기 “친구”라는 노래를 꺼낸 이유는 최근 내가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가 곧 한국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이주노동자이다. 약 9년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온갖 고생을 하던 그 친구를 알게 된지도 햇수로만 5년이 넘어간다. 나이차이도 크지 않아 정말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곧잘 술을 함께 마시던 친구였는데 어느 날 집안문제로 인하여 급히 귀국을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순간 ‘연락만 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던 이 친구를 이제 한동안 볼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안 좋았다. 그 이후에 굳이 술 한 잔만 더 하자고 우겨서 갔던 맥주집에서 치킨 한 마리를 시켜놓고 30대 남자 2명이 눈물만 흘렸다는 건 믿거나 말거나이다.

▲ 영화 <반두비>(감독 신동일, 2009년작)의 한 장면. 한국의 고등학생 민서와 이주노동자 카림이 우연히 일로 친구가 되고, 두 사람은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사장님 댁을 찾는다. (사진=포털사이트 다음 영화정보)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이주노동자와 이렇게 급작스런 헤어짐이 처음은 아니었다. 예전에 알고 지냈던 네팔 형이 회사 기숙사에 출입국단속반직원들이 들이닥쳐서 하루아침에 단속된 일도 있었다. 단속이 있기 며칠 전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다음 주에 술 한 잔 해요”라고 했던 형을 차디찬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 송환대기실에서 마주보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는 도대체 이런 순간에는 내가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아님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말도 제대로 못했다. 그저 그 형이 좋아하던 김과 네팔에 있는 딸 선물을 챙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내가 친하게 지내는 이주노동자들과 언젠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헤어질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늘 마음 한편에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나눈 이야기들, 같이 밥을 먹으러 갔던 식당 풍경, 늘 따라 부르던 그 나라의 유행가, 맨 처음 알려준 그 나라의 인사말 등이 정말 소중한 순간순간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옛말에 거자필반 회자정리(去者必返 會者定離) 즉,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만나는 이주노동자는 언젠가 한국을 떠나게 되고, 그리고 떠난 이주노동자는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사람 인생이 평균적으로 80년을 산다고 한다면 사실 우리의 만남과 이별은 어느 순간에나 존재하는 것이기에 흘러간 시간들을 아쉬워하지 않고 다시 또 만날 그 어느 날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 친구의 송별회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함께 찍은 사진들을 모아서 짧은 영상을 하나 만들었다. 그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안재욱의 ‘친구’를 삽입했는데 그 노래 마지막 가사가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이 노래 가사처럼 어느 곳에 있어도 다른 삶을 살아도 그 친구를 만난 건 나에게 큰 행복이었다. 언젠가 다시 또 아무렇지도 않게 술 한 잔 기울이며 이 노래를 흥얼거릴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어느 곳에 있어도 다른 삶을 살아도
언제나 나에게 위로가 되준 너

늘 푸른 나무처럼 항상 변하지 않을
널 얻은 이세상 그걸로 충분해
내 삶이 하나듯 친구도 하나야

[출처] 안재욱 - 친구 (2003)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