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학내 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였던 “전태일 열사 추모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해에 가장 이슈가 되었던 분야를 선정하고 몇 명의 동아리 인원들이 팀을 짜서 약 한달 간의 준비과정을 거쳐서 전태일 열사의 기일인 11월13일 즈음하여 학내행사장에서 연극, 영상, 노래, 몸짓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열사 정신을 학우들에게 알리는 것이 행사의 주요 내용이었다.

2005년 당시에 이주노조가 막 출범한 뒤였고 명동성당 농성투쟁의 여운이 많이 회자되던 시기였던 터라 “이주노동자팀”이 결성되었고 “STOP CRACK DOWN!"(단속추방반대!)이라는 이주노동자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서 무작정 안산역에 있는 컨테이너 연습실을 찾아간 적이 있다. 연습실에서 시장 치킨을 같이 뜯으면서 들었던 이야기는 마치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면서 부르짖었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 일하는 기계 아니에요. 사람이에요” “돈 못받고 쫓겨난 친구들 많이 있어요. 우리가 만든 노래도 다 진짜 있는 이야기에요” “우리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 권리 보장해주세요” 이 밖에도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 해줄수 있는 것이라곤 그들이 멋지게 부르는 노래를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서 CD에 넣어서 꼭 선물해주겠다는 약속말곤 없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 이주노조 후원주점에서 다시 만난 “STOP CRACK DOWN” 밴드 멤버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알고보니 그 몇 달 사이에 몇 명이 단속에 걸려서 추방된 것이다. 기말고사를 핑계로 다음에 가야지 하면서 미뤘던 선물을 끝내 주지 못하고 본국으로 추방되었던 이주노동자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여전히 내가 만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는 더 좋아지기는커녕 더욱 악화되고 있다. 몇일 전 청소년 때 한국에 들어와서 영화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일과 영화 양쪽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한 이주노동자가 단속에 걸려서 결국 본국으로 추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저런 핑계들로 얼굴도 한번 보러가지 못한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러우면서도 여전히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이토록 어렵구나 하는 답답한 마음도 컸다.

▲14일 서울 시내에서 열리는 민중총궐기 지도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내 주변에는 1년 넘게 부당해고에 맞서 재판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세월호로 인해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들과 함께 길거리에 나섰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있는 한국인 노동자,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난민재판을 앞두고 있는 난민신청자들을 비롯하여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외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침이 4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사회의 가장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11월14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민중총궐기”가 열린다. 노동, 빈민, 여성, 장애, 농민, 성소수자, 청년 등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모두 모여 박근혜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국정화 교과서 저지를 위한 총궐기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정작 박근혜 대통령 본인은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국외순방에 나설 예정이고 정부는 공안대책협의회를 열고 각 부처장관 공동명의의 담화문을 발표하는 등 민중총궐기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엄포를 늘어놓고 있다. 한편으로 또다시 뻥파업이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섞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민중총궐기를 통해 우리 스스로에게 반격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어느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이른바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전태일 열사와 같은 죽음이 더 이상은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를 통해 민중들의 통쾌한 반격을 날려보자. 이주노동자들도 한국노동자들과 함께 어깨 걸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민중총궐기로 달려나갈 것이다.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