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올해 30살로 갓 접어든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는 청년이다. 군을 제대한 이후 이주노동자 한글교실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주노동조합에서 상근을 시작한지 3년이 되어간다. 사실 29에서 30살로 한 살 더 먹은 게 대수이겠느냐만 일단 나이의 첫 자리가 바뀌었기에 3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고민에 빠져 사는 요즈음이다.

그런 나에게 힘들 때마다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안타깝게도 여자친구는 아니고 멀리 방글라데시에서 온 세이크(가명)라는 친구다. 나름 이주노동조합에서 일을 한지 3년이 넘어가지만 정말 터놓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이주노동자가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 중 가장 친구처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바로 세이크이다. 오늘은 이 친구를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들을 몇 가지 풀어볼까 한다.

일단 세이크는 요리를 잘한다. 생각해보면 그를 처음 만난 것도 요리 때문이었다. 이주노동자한글교실을 활동을 막 시작했던 2010년 당시 서대문에 위치했던 이주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다. 파티라고 했지만 떡볶이에 과자, 맥주 정도가 전부였고 어리둥절하던 나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준 사람이 바로 세이크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2년 5월 난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가 되었다. 그 뒤로 세이크의 퇴직금 문제를 같이 해결하기도 하고 홍대에서 세이크가 나오는 연극을 보기도 하면서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동지처럼 관계를 이어나갔다.

나에게 방글라데시 친구가 생긴 건 분명 그 전과는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때때로 세이크 집에 가서 방글라데시 커리와 난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천천히 방글라데시 말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고 종종 방글라데시 역사, 문화, 정치 등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난 한국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온 그에게 뭔가 좋은 추억을 하나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세이크에게 서울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을 물어봤다. 그의 답은 예상 밖이었다. “꿈의 나라! 롯데월드에 가보고 싶다!”

최근 안전문제로 제2롯데월드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었지만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을 못 들어주겠는가? 둘 다 쉬는 날을 골라 세이크가 꿈에도 그리던 롯데월드로 출발했다. 그런데 웬걸! 싸게 할인받고 싶어서 샀던 소셜커머스로 샀던 자유이용권 쿠폰이 내국인 전용이라는 것이다. 고객센터에 문의해서 외국인은 외국인등록증이 있는 경우 제시를 하면 할인이 가능하다고 안내를 받았지만 왠지 놀이공원에서도 인종차별이 있는 것 같아 내심 불쾌했다.

롯데월드에는 정말 사람들로 바글바글 거렸고 우리는 긴 줄을 기다리며 바이킹, 신밧드의 모험, 범퍼카 등을 즐겼다. 줄을 기다리면서 한 무리의 초등학생 꼬마친구들이 세이크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보곤 방글라데시라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영어 조기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계속 영어로 질문을 했는데 오히려 세이크가 한국말로 대답을 하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해가 지고 어두운 저녁이 되자 롯데월드 실내에서 아름다운 퍼레이드 행사가 시작되었다. 퍼레이드에는 외국인으로 보이는 무용수들도 꽤 많았다. 그 순간 작년 이맘때 큰 이슈가 되었던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에서 일했던 아프리카 예술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퍼레이드에 나오는 외국인 무용수들도 예술흥행비자(e-6)로 입국하여 일을 하고 있을 텐데 이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일까? 관광객 입장에서 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대놓고 물어보긴 어려웠지만 화려한 퍼레이드 뒤에 감춰진 이들의 속사정이 궁금해졌다. 2007년도에 이주노조에서 에버랜드 무용수들의 노예계약에 대해서 고발했던 사례도 있었는데 언젠가 다시 와서 이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들어봐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롯데월드의 문을 나섰다.

먼 타국땅에 와서 힘든 공장 일을 버티면서도 주변의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상담하는 세이크를 보고 있노라면 스스로도 자극이 많이 된다. 오늘 하루 롯데월드에서 보낸 시간들이 세이크에게 어떤 추억으로 남게 될까? 정문을 나올 때 크게 적혀있는 꿈의 나라 롯데월드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세이크도 꿈의 나라 한국을 찾아와 코리안드림을 꿈꾼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이크는 한국사람들에게 이주노동자의 삶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한 편 찍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다. 그의 꿈이 꼭 이뤄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데 이주노동조합과 내가 세이크의 곁에 든든한 벗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 박진우 활동가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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