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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지상파도 유료방송도 아니라 플랫폼이다![분석]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
박장준 기자 | 승인 2015.07.22 08:46

“방송은 일반상품과 다르게 제값이 없다” “한국의 채널거래 시장은 투명하지 않다” “가장 큰 콘텐츠사업자 지상파마저 존재가 삭제될 위기다” “사실 방송 자체가 사양 산업이다” “이동통신사 결합상품으로 방송은 ‘호프집의 라이터’가 됐다” “지상파만큼 못 만들 이유가 없는 게 자본이고, 지상파보다 더 잘 만드는 게 자본이다” “미디어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 “지금 이 시장에는 더 나쁜 놈과 덜 나쁜 놈만 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밑단에서부터 보자. 시청자의 90% 이상이 유료방송을 통해 지상파를 본다. 한 달에 만원도 안 되는 돈에 백 개가 넘는 채널을 시청할 수 있다. 결합하면 인터넷과 TV가 사실상 공짜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유료방송에 가입하는 게 합리적이다. 공짜 혹은 저가로 TV를 보는 '값'은 물론 있다. 50번대 이하에서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CJ E&M 인기채널, 드라마채널 사이에 끼어 있는 홈쇼핑채널을 봐야 한다. 지핑재핑(zipping-zapping)의 수고로움도 반복해야 한다. 위약금은 이상하게 쓰면 쓸수록 늘어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래도 비싼 것보다는 낫다.

   
 

모든 것을 감안해도 싼게 나은 가입자, ‘죽을 맛’이라면서 쉽게 돈 버는 사업자

사업자들은 ‘출혈경쟁과 저가구조 때문에 죽을 맛’이라며 울상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연간 수백억, 수천 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다. 문제는 이 돈이 방송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방송광고 시장은 빨리 무너지고 있고 콘텐츠로 흘러 들어가는 돈은 늘지 않는다. 최근 지상파와 유료방송사업자들이 여론전에 소송까지 불사하며 치고받고 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널리즘의 위기’를 논하는 게 사치스러울 정도로 느껴지는 이전투구의 상황이다. 물론, 땅 파서 장사하는 사업자는 있을 수 없다는 단출한 논리로 강변된다.

채널당 280원씩 하는 재전송료 문제부터 VOD(주문형 비디오) 가격 산정까지 바람 잘 날이 없다. 지상파는 급기야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자(IPTV사업자)의 모바일플랫폼에서 방까지 뺏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직접 나서 협의체를 만들고 사업자들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오히려 정부의 개입으로 사업자들은 떠들 무대를 찾았다. “못 줍니다”고 드러누우면 손 쓸 방법이 없는 정부의 무능만 드러난다. 오히려 선진적인(?) 미국처럼 ‘블랙아웃’이 뉴스거리조차 안 되는 날을 기다리는 게 빠를지도 모른다.

복기해보자. 2008년 IPTV가 등장할 때, 지상파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는 웃었다. 프로그램을 사줄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IPTV가 없던 시절, 가입자가 1500만 규모이던 유료방송 시장은 지난 7년 사이 가입자가 2500만까지 늘어났다. 여기에 VOD 시장까지 개장했다. 가입자는 늘고, 팔 수 있는 상품은 많아지니 곧 신세계가 열린 것 마냥 환영했다. 하지만 모두가 가입자를 두고 침을 흘리면서, 전에 없던 ‘공정거래’ 문제가 복잡해졌다. 저작권, 이용료, 사용료 산정이 투명해야 하지만 다들 “돈이 없다”고 “시장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불멸의 ‘강자’였다가, 1/N 사업자로 수렴 중인 지상파는 특히 더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호들갑이다. 그 사이 학계는 고담준론의 체면을 벗어 던지고, 지상파와 유료방송으로 완전히 편이 갈렸다.

유료방송 성장 이후…무능해진 정부, 진영화된 학계

공영방송의 위기라는 언급이 진부해지기까지 한 상황이다. 한국의 공영방송은 핀란드 같이 공영방송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있고, 영국 보수당이 BBC를 무너뜨리려 시도하는 것처럼 존재감이 강력하지도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론 플랫폼으로서의 ‘지상파’는 붕괴한 탓이 크다. 직접수신율을 높이고, 지상파DMB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려 공적 플랫폼을 활용한 질좋은 방송 모델을 만드는 게 공영방송의 임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상파는 막상 여기에 큰 관심이 없다. 최근 몇 년간 지상파의 관심은 오로지 ‘제값 받기’와 ‘방송광고 규제완화’에만 쏠려 있다. 정책방향을 이렇게 잡다보니 유료방송을 그저 ‘돈줄’로만 보는 지상파다.

플랫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약정기간과 결합상품에 묶인 가입자들은 사실상 유료방송을 떠날 수 없는 처지다. ‘코드커팅’은 당분간 현실화되기 어렵다. 묶여 있는 가입자, 플랫폼의 힘이 지금보다 더 세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단적으로 채널은 이미 플랫폼사업자들이 장악한지 오래다. KT 올레TV만 하더라도 채널 50번 이하에 계열 PP가 운영하는 채널이 7개다. 여기에 ‘바꿔채널’로 불리는 가이드채널과 직사채널까지 하면 10여개가 된다. 스카이라이프 계열PP만 12개인데 이들은 언제든 다른 PP를 밀어낼 수 있다. 홈쇼핑 채널 7개에 데이터홈쇼핑(T커머스) 5개 사업자까지 하면 50번 아래 절반 이상이 플랫폼의 영역이 됐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난이 있고, 사업자들의 논리는 2012년 씨앤앰이 KBS2 재전송을 처음 중단했던 ‘블랙아웃’ 당시의 논리 구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힘의 관계에 따라 정리될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방송콘텐츠 ‘제값 받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해야 할 문제다. 특히 이 문제는 플랫폼에 대한 공적 규제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지엽적으로 보자면, 유료방송이 ‘지상파 없는 모델’을 시도하면서 시간을 끌면 언젠가 콘텐츠 선순환 고리가 끊어진다. 이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방송업계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 방치하면 콘텐츠와 플랫폼은 물론 시청자(가입자) 또한 피해를 보게 된다.

상황 정리를 위해, 전제할 것은 몇 가지 있다. ➀유료방송은 지상파 콘텐츠를 킬러 콘텐츠로 활용해 지상파 사이사이에 홈쇼핑을 편성해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➁유료방송이 지상파 콘텐츠의 유통에 기여하는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➂앞선 두 가지를 편익과 비용으로 환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➃유료방송사업자들은 배(방송)보다 배꼽(부가서비스)이 더 큰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다 ➄그럼에도 방송 가입자를 기반으로 한 사업인 만큼 콘텐츠 선순환을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

한찬희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은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지상파 방송 콘텐츠의 공정한 거래 문화 조성방안 토론회>에서 “플랫폼 분야는 소수의 사업자가 시장을 과점하는 구조이지만 콘텐츠 분야는 수많은 사업자가 제한된 광고 파이를 놓고 경쟁하는 구조”라며 “이러한 구조에서 콘텐츠 제작비는 급증하여 콘텐츠에 대한 효율적인 투자대비 산출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재전송료를 가입자당 280원에서 최소 469원으로 인상하고, 현재 7대 3 수준인 VOD 수익배분을 콘텐츠 사업자에 더 유리하게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찬희 연구원은 “유료플랫폼 간 가입자 유치 경쟁에 따른 방송 콘텐츠의 번들화(가입자 유치를 위해 낮은 가격의 방송콘텐츠 비용 책정)가 진행됐고, 인터넷과 통신비용을 비싸게 책정하는 결합상품 출시로 인해 콘텐츠 제공 사업자는 적당한 제공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향후 양질의 콘텐츠 생산이 어려워질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라며 결합상품에 대한 규제 또한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리하자면, 플랫폼이 콘텐츠에 더 많은 돈을 내려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가입자에게 돈 걷어 콘텐츠에 주는 식?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김성환 아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IPTV가 들어오면서 오히려 지상파의 협상력은 더 커졌다. 지상파가 재송신 대가를 논의할 수 있는 것도 이동통신사가 유료방송시장에 들어왔기 때문”이라며 “결합상품에서 방송이 무료든 아니든 방송이 기여하는 만큼 수익을 배분하도록 하는 구조만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통신사업자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진화하는 과정”이라며 “단순무식하게 가입자에게 돈을 걷어서 콘텐츠에 주는 식이 아니라, 가입자를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수익모델에서 일정부분이 콘텐츠에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상파는 제값 받기가 절박하다는 입장이다. 한광섭 SBS 기획본부 정책팀 차장은 “광고시장이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시청자의 추가 지불을 유도해, 이를 재원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이 ‘재원’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창훈 MBC 콘텐츠저작권보호팀장은 “앞으로 홈쇼핑과 플랫폼만 살아남을 것 같다”며 “5~6년 전만 하더라도 좋은 다큐멘터리, 사회공익 프로그램이 설 자리가 있었지만 지금 그런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판매는 0이다. 수익성만 본다면 VOD가 팔리고 수출이 가능한 예능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상파는 사업자들이 투명하게 정보를 주고받고 거래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MBC 이창훈 팀장은 유료방송이 제대로 저작권‧이용료를 정산하지 않고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투명한 거래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며 “빅데이터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하는 세계적인 IT기업들이 ‘시스템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를 구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IPTV 등장 이후 콘텐츠·채널 거래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과도기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거래관계를 불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홍원식 동덕여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방통위는 블랙아웃을 막아 시청권을 보호하겠다며 협의체를 구성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합리성을 저해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민수 강릉원주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미국 FCC처럼 협상이 결렬될 조짐이 있을 때부터 이용자에게 ‘공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유료방송 이용약관에 시청자(가입자)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장준 기자  wesh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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