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정부가 지역 유선방송사업자를 인수한다

②‘무료보편’ 지상파와 ‘국내유일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를 활용, 지상파 수신시설과 유료방송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상파와 유료방송을 동시 수신하는 방송환경을 만든다

③‘무료보편’ 고화질DMB를 강화해 모바일IPTV를 대체한다

④지상파 다채널서비스와 스카이라이프 녹화기능을 활용해 VOD 구매를 대폭 줄인다

⑤OTT는 각자 선택한다

이런 유료방송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물론, 개꿈이다. 케이블도, IPTV도, OTT도, 모바일IPTV도, 지상파DMB도 사업자들의 영업 구역이 된지 오래다. 제7홈쇼핑에다가 T커머스까지 안겨, 홈쇼핑이 TV를 스멀스멀 잠식하고 있고, 콘텐츠사업자는 돈을 달라 아우성이고, 돈을 쥔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주주를 위한 ‘선순환’에만 집중한다. 마지막 보루인 지상파마저도 중간광고를 달라고 떼를 쓰는 중이고, 정부는 뉴스에 광고를 허용해 버렸다. 광고주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지만 시청자 목소리는 줄이고 있다.

지상파 OTT서비스 ‘푹’을 보자. 운영사인 콘텐츠연합플랫폼은 6월1일자로 가격인상을 통보했다. 콘텐츠를 늘리고 화질을 높이는 대신 실시간방송 기본상품 가격을 2900원(자동결제 기준)에서 3900원으로 인상한다고 했고, 이동통신사에 가입자 1인당 1900원(부가세 별도)이던 계약금액을 3900원(부가세 포함)으로 올린다고 통보했다. 이통사가 손해 볼 리는 없으니, 가격은 올라갈 것이다. “지상파의 요청으로 불가피하게~” 가격인상, 참 쉽다.

어찌하다보니 OTT가 “TV 그 이상”이 됐다. 거실TV로 지상파를 보는 것보다 스마트폰으로 시청하는 게 더 비싼 상황이 돼 버렸다. 거실TV의 수신료를 올리는 것은 ‘미션임파서블’에 가까운데, 요금을 100% 가까이 올려도 별 논란이 일지 않으니 바야흐로 스마트미디어 시대, 전국민 호구시대다. 유료방송사업자는 현재 지상파에 채널 당 280원을 주는데(최근 지상파가 400원으로 올라 달라 요구해 협상 중이다), 푹 제공 채널이 21개나 된다고는 하지만 핵심채널만 따지면 ‘무선’ OTT가 ‘유선’ 유료방송보다 비싸다.

얼마 전부터 방송사발 물가인상이 시작됐다. 학업, 취업준비, 직장생활에 바쁜 사람들은 <개그콘서트>와 <무한도전>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지만 VOD를 보려면 1500원을 내야 한다. 지상파는 11일부터 인기프로그램 5개의 VOD 가격을 500원 올렸고, 연내 각사당 11개로 확대한다고 한다. 실시간방송 기본료는 안 내려가고 VOD 이용요금만 차곡차곡 쌓인다. VOD 원가는 100원이나 할까? 스마트한 시대, 시청자 호주머니는 이렇게 쉽게 열린다.

사업자만 스마트하고 윈윈한다. 사실 집에 무선인터넷만 설치하고 티빙 같은 값싼 OTT나 크롬캐스트를 쓰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놈의 결합할인과 약정이 발목을 잡는다. 위약금이 앞으로 낼 요금의 총합보다 많다. 광랜과 상품권의 유혹을 이겨냈어야 했지만, 유혹은 달았고 탈출은 불가능해졌다. 콘텐츠사업자와 유료방송사업자가 VOD 매출을 65대 35(모바일IPTV 푹은 75대 25)로 나눠먹는 꼬락서니가 싫지만 안 보면 섭섭한 방송이 많다. 어제도 1500원을 갖다 바쳤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문제다. 케이블과 IPTV 사업자는 모두 “지상파가 갑질을 한다”고 일러바치고, 지상파는 “이대로면 지상파가 붕괴한다”고 생떼를 부린다. 그 다툼 속에 결국 가격이 오를 거라는 사실을 모든 사업자가 안다. ‘수신료 인상’을 제외하고 그 동안 지상파든 유료방송사업자든 힘들이지 않고 가격을 올려왔다. 코드커팅 하지 않는 이상, 이들의 영업구역을 벗어날 도리가 없는 시청자들은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은 돈을 바치고 있다.

유료방송 기본요금은 7천원, 8천원인데 지상파 VOD상품은 1만5천원이나 되는, 배보다 배꼽이 큰 이 황당한 상황은 누가 만들었을까. 물론 남들이 힘들게 만든 콘텐츠를 공짜로 보는 건 도리에 어긋나지만 공영방송 수신료가 2500원인 나라에서 VOD 한건이 1500원인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것도 리모컨 버튼만 서너 번 누르면 결제가 이루어지는 환경이다. 웹하드, 토렌트로 다운로드해 USB에 담은 뒤 TV에 꽂는 간단한 일도 이젠 귀찮아졌다.

사실 해법은 간단하다. OTT(Over The Top)서비스를 방송사업으로 규정하고, 정부가 유료방송에 대한 요금인가제를 시행하면 된다. VOD 한편 1500원이 적절한지, 사업자들이 얼마나 챙기는지 확인하면 될 일이다. 물론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업자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이런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방송발전기금도 기업 펀딩으로 모으는 정부에 무슨 미디어생태계 선순환과 시청자 보호를 물을까 싶다.

그래서 오늘도 돈을 갖다 바칠 것 같다. 앞으로도 유료방송사업자와 지상파방송사의 충성고객일 것 같다. 지상파도 결국 N분의 1이 될 것이고 갑질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기사를 주구장창 써왔고, 1년에 몇 천억의 이익을 올리는 유료방송사업자들이 가입자를 봉으로 안다고 지적하면서도 결국 이들이 정해준 가격표와 결합할인을 따를 것 같다. 매번 사업자를 비판하고 미래부와 방통위에 불만을 쏟아내지만 벽이 너무 공고하다. 이번에도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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