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가 난리다. 의무교육에 따른 의무급식이라고 불려도 모자랄 무상급식은 무차별 급식으로 비난받고, UHD의 보편적 서비스를 위해 주파수를 달라는 무료 지상파 방송은 엄살 부리는 공룡 취급을 받고 있다. 이는 현 정부의 관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당 인사들은 보편적 복지를 이야기하는 시민을 마치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마시는 사람 대하듯 한다. 그런데 과연 ‘무료’라는 것이 시장경제의 질서를 해칠만한 것인지, 이를 통해서 보편화한 제도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나는 이 지면을 통해서 700㎒ 대역 주파수 분배의 상황을 놀이터에 비유한 적이 있다. 아직도 국제기술표준이 정해지지 않은 재난망 주파수 분배는 이른바 알박기 식의 통신사업자 배려라고 보았다.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이 언제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양질의 놀이터가 사라지는 것처럼, 700㎒ 대역 주파수 논쟁은 돈과 사업 논리 속에서 시민들의 보편적 시청권이 배제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무료 보편적 서비스의 필요성, 엄밀히 말해서 그 공공성이 복원·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공원의 예를 통해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여의도 공원처럼 거대한 도심의 공원을 생각해보자. 여의도 공원에는 산책로가 있고, 공중 화장실이 있으며, 농구 골대와 같은 체육시설과 아스팔트로 뒤덮이긴 했지만 광장도 있다. 이곳은 시민들 누구나 쉴 수 있고, 때로는 집회를 할 수도 있는 공간이다. 시민들 역시 약간의 아쉬움도 있지만, 큰 불만 없이 공원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근처에 ‘케이블 랜드’라는 놀이공원이 들어섰다. 이곳에는 온갖 첨단 시설과 정원이 마련되어 있고, 매주 페스티벌이 열렸다. 최근에는 ‘종편 코스터’와 같은 재미있는 놀이기구도 생겼다. 그렇지만 이곳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한다. 비록 그 입장료가 그다지 비싸지 않아서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지만, 입장료와 입장객을 대상으로 한 부대사업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한편 개인 소유인 이 공원에서는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없다. 즉 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무료인 여의도 공원의 시설이 더욱 좋아지고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개장으로써 강화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재 여의도 공원의 시설들을 개선하는 작업은 전반적으로 녹록치 않다.

앞선 예에서 여의도 공원은 지상파 방송, 놀이공원인 케이블 랜드는 유료방송을 빗댄 것이다. 지상파 방송은 국민과 국가재산인 전파 자원을 이용하여 사업을 수행하는 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라는 의무를 부여받는다. 따라서 지상파 방송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 제공된다. 그런데 문제는 지상파 방송이 UHD 서비스처럼 방송의 질적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 마치 과도한 이익 챙기기, 공룡의 몸집 부풀리기로만 이해된다는 데에 있다. 광고 제도를 비롯해 유료방송과의 비대칭 규제를 철폐하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여전히 지상파 독과점을 반대한다는 주장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지상파 방송에 대한 문제제기는 적합한 것인가?

이와 관련해서는 다시 공원의 예로 돌아가 보자. 헐리웃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센트럴 파크는 남북 길이가 4㎞가 넘고 그 넓이가 3.41㎢ 달하는 뉴욕의 거대 도시공원이다. 이 공원은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호수와 잔디광장,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벨베데레 성, 동물원, 야외 원형극장 등을 갖춘 거대한 문화공간이다. 월가 점령 시위 때에는 시위대들의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이 공원은 연간 4,000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명소이자 누구나 공짜로 입장할 수 있는 유료 못지않은 ‘무료’ 공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이미 1853년에 부지 확보에만 550만 달러의 공적 재원이 투입되었다.

센트럴 파크는 여의도 공원, 즉 지상파 방송이 지향해야 할 목적지이다. 서두의 문제제기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무료라고 해서 질적으로 부족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무료 보편적 서비스의 질적 상승이 유료방송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판단은 그 자체로 사업자들이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시장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다. 또한 갈수록 공공 서비스가 약화되고 민영화되는 추세에 있어서 보편적인 제도로서 문화 생산자 및 공정한 보도 기관으로서 역할은 더욱 중요해 지고 있다. 따라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 의무를 부여받은 지상파 방송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필수적이다. 혹시 여러 이익집단과의 대립이 문제라면, 적어도 비대칭규제 만큼은 해소되어야 한다.

지상파라는 공룡은 과거의 거대한 위상과 조직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의 지상파는 고길동네 구박떼기 둘리처럼 여기저기 치이고 있다. 어쩌면 둘리와 객식구들처럼 욕먹을 짓도 많이 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질적인 구조의 문제로 돌아가면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서 지상파의 역할과 공적 의무만큼은 줄어들지 않았다. 게다가 재원 부족으로 인한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고길동 둘리 보듯, 미워도 다시 한 번 지상파 플랫폼의 복원 논의가 필요하다.

이경락 _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원. YTN사이언스의 사이어스투데이에서 '미디어 앤 사이언스'라는 이름으로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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