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졌다. “합산규제하면 스카이라이프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어떤 대안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KT가 국내 유일의 위성방송 플랫폼을 가져간 것부터가 문제였는지 모른다. 물론, “KT 말고 아무도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었다”, “KT가 아니었으면 망할 상황이었다”는 스카이라이프 사람들 이야기도 수긍이 간다. 그런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정부가 위성방송을 방치한 탓이 크다. 지상파 등 여러 사업자들이 ‘사회적으로’ 소유했던 스카이라이프를 사실상 KT에 내준 것은 정부였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2년 넘게 시간을 끌어오다가 최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와 미방위 전체회의를 연이어 통과한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의 발단은 KT가 전국에서 영업할 수 있는 유료방송 플랫폼을 두 개나 갖게 되면서 부터이다. KT와 스카이라이프가 제아무리 항변하더라도 ‘입법공백’이 있었던 만큼 합산규제는 방송시장을 정상화하는 조치다. 방송법 상 다른 규제를 보더라도 점유율 ‘3분의 1’ 기준은 결코 과도하지 않다. 합산규제는 분명 필요하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추혜선 사무총장은 “지역성과 공공성을 팽개친 다른 사업자들에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디어생태계를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합산규제 뿐”이라며 “유료방송플랫폼에는 편성권이 있고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도 하고 있다. 아무리 시청행태가 VOD로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시청자의 3분의 1 이상이 특정사업자에게 쏠리는 것은 여론다양성 측면에서 옳지 않다. 합산규제의 대전제는 특정사업자의 여론지배력을 막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KT는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주인 없는 기업’이다.

합산규제를 두고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이 최대 수혜자가 된다는 말이 나온다. KT는 “합산규제는 유료방송에게 ‘블랙아웃’과 같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까지 밝혔다. 그런데 이 사업자들의 주가는 큰 변화가 없다. 국회가 논의 중인 합산규제는 △가입점유율 3분의 1 규제 △3년 뒤 일몰 재논의 등이 핵심인데, 한국처럼 ‘저가’로 출혈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한 사업자가 ‘3분의 1’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현재 점유율을 감안하면 1등 KT의 점유율이 33.3%로 오르는 시간은 수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스카이라이프다. KT는 그 동안 스카이라이프의 실시간방송과 KT의 VOD서비스를 결합한 ‘올레TV스카이라이프’(OTS)를 활용해 영업을 해왔다. 스카이라이프의 2014년 연간 실적자료를 보면, OTS 가입자는 233만9천명인데 11월까지 꾸준히 늘었다가 12월 들어 갑자기 줄었다. 지난해 올레TV 가입자가 70만명이나 꾸준히 늘어난 것과 비교된다.

지난해 연말부터 합산규제 가능성이 커지면서 ‘KT가 스카이라이프를 버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국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지부는 합산규제 논의 직전 발표한 성명에서 “KT는 OTS 가입자의 올레TV로의 교체, 그리고 위성방송 가입자를 올레TV로 전환시킴으로써 실속을 챙기면 된다”며 “KT가 작년부터 보여준 OTS 영업에 대한 고의적인 소극성과 올레TV로의 전환에 대한 적극성에서 보듯, 이런 ‘곶감 빼먹기’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선망사업자에게 위성방송은 ‘곶감’이다. 스카이라이프는 유선망을 깔기 어려운 산간오지나 대규모 설비투자를 꺼리는 지역, 이동하는 차량에 단독으로 들어갈 수 있다. 스카이라이프가 만드는 PP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위성방송은 ‘단방향’이라 양방향 VOD서비스가 없다는 점이다. VOD를 주로 보는 2040시청층에게 위성방송의 경쟁력은 사실상 제로다. 지금 스카이라이프는 OTS와 ‘접시 없는 위성방송’(DCS) 같은 기술결합상품 없이는 가입자가 빠질 수밖에 없다.

합산규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KT의 위성방송 버리기는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스카이라이프를 ‘오픈플랫폼’으로 만들어 여러 사업자가 위성방송 결합상품을 만드는 방안이 제안됐고 일부 사업자들은 의지를 내비치고 있지만,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는 KT 계열사와 사업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이동전화+IPTV+인터넷’ 결합상품을 파는 게 더 이득이다. 알뜰폰(MVNO)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도 마찬가지다.

스카이라이프가 모회사 KT와 통신재벌 SK LG CJ와 경쟁해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장기적인 생존방안도 뚜렷하게 안 보인다. 정부와 국회가 나서 미디어생태계의 큰 그림을 그리고 ‘국내 유일의 위성방송’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스카이라이프의 지배구조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야 하지만, 미래창조과학부도 방송통신위원회도 이미 업계의 이해관계에 포획된지 오래다. 스카이라이프 관계자는 “정부와 국회를 계속 돌며 ‘위성방송의 공공성을 살릴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에 대고 위성방송을 살릴 방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KT에게 OTS 영업을 해달라며 설득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면, 스카이라이프 주장대로 가입자도 줄고 협력사 직원들까지 피해가 갈 게 분명해 보인다. 이대로면 KT에 더 휘둘릴 가능성만 남는다. KT는 OTS 가입자를 뺐을 게 빤하고, OTS에서 스카이라이프 몫 또한 줄어들 것이다. 스카이라이프 차원에서 KT 의존도를 낮추는 자구책을 만들지 못하면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다.

우선 단기적으로 보자. 디지털 전환을 끝낸 스카이라이프의 다음 스텝은 위성방송의 녹화기능(SOD)을 VOD서비스에 최대한 가깝게 하고, 셋톱과 유저인터페이스를 최적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용자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손쉽게 프로그램을 녹화해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이용자가 실제 납부하는 유료방송 요금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결합상품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KT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위성방송 플랫폼이 붕괴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방송사업자와의 협력관계를 다시 구축하는 건 역시 절실하다. KT와 함께 서비스하는 OTS 같은 결합상품을 다른 사업자와도 만들어야 한다. 스카이라이프가 다른 사업자의 망을 빌려 양방향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 역시 법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의 유료방송 모델을 확대해 지상파 등 콘텐츠사업자와 위성방송 플랫폼이 함께 값싼 유료방송을 구축하는 것도 고민해봄직 하다.

문제는 KT가 스카이라이프를 놔주지 않는다면 스카이라이프의 자구책이든 정부와 국회의 지원이든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공적 역할을 위해 출범한 위성방송이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인데, 모회사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곤란한 상황이다. 단기적으로는 KT가 스카이라이프의 경영 자율성을 보장하는 게 먼저다. 그리고 정부와 국회는 스카이라이프의 소유구조를 다시 사회적으로 돌아가게끔 유도해야 한다. KT여, 이제 스카이라이프를 놔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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