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헬로비전의 OTT(Over The Top) 서비스 ‘티빙’은 5년 동안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상파가 하는 같은 서비스인 ‘푹(pooq)의 3년 만에 흑자를 봤다. 그것도 누적 흑자를 기록했다. 이유를 따져보면 물론, 지상파의 콘텐츠 파워 덕도 있겠지만, 이동통신사의 모바일TV 플랫폼에 입점해 수천만 가입자를 대상으로 영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 크다. 자체 유료회원은 22만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통사를 통해 모은 이용자가190만에 이른다.

그런데 푹이 190만 이용자를 포기하면서 이동통신사 플랫폼을 빠져나왔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에 월 5500원을 내며(또는 이통사의 대납으로)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모바일TV 서비스를 이용하던 가입자는 22일 자정 부로 지상파 실시간방송을 시청할 수 없게 됐다. 지상파VOD 서비스도 수일 내로 끊긴다. 두 이통사와 계약조건이 달라 푹을 남겨놓은 KT도 오는 11월 말까지만 푹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 이통 3사가 '푹'에서 지상파를 버리는 결정을 한 것은 나름의 고육지책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입자의 몫이다.

갑작스런 서비스 중단 소식에 애먼 이통사 가입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지만 들여다볼수록 사연은 복잡하다. 이통사는 “지상파의 일방적인 가격인상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상파에 내줘야 할 돈이 가입자 당 1900원(부가세 별도)에서 3900원(부가세 포함)으로 늘어난 것은 큰 타격이 분명하다. 모바일TV를 사실상 공짜 부가서비스로 제공하던 이통사 입장에서 보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이통사는 결국 '가격'과 '서비스'를 두고 고민하다 지상파 없는 모바일TV를 택했다.

계약내용을 보자. 킬러 콘텐츠가 필요했던 이통사와 영업공간이 절실했던 지상파는 함께 ‘공생’하고 서로 ‘기생’하는 계약을 맺었다. 푹 운영사 콘텐츠연합플랫폼(대표 장만호, 이하 CAP)은 2013년 말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자(IPTV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이듬해 초 이동통신사의 모바일TV 플랫폼에 입점했다. 일반적인 콘텐츠 제공 방식이 아니라 백화점에 업체가 들어가는 이른바 ‘플랫폼 인 플랫폼(platform in platform)’ 방식이었다.

푹에 따르면 CAP와 이통사 양측은 1900원짜리 푹을 모바일TV 기본상품에 넣기로 합의했다. 푹 가격은 CAP이 결정한다고 계약했다. 다만 양측은 2년의 계약기간을 17개월과 7개월로 나눴다. 17개월을 마케팅 기간으로 하고 250억원(이통3사 총합)을 주고받기로 했고, 이후 가입자당 1900원꼴로 정산하기로 했다. 이 기간 이통사의 모바일IPTV 끼워팔기로 가입자는 480만 이상 치솟았다.

그러는 동안 푹은 2014년 하반기부터 푹 2.0을 기획했고 올 상반기 중 출시를 확정했다. 23일 서울 상암동 SBS프리즘타워 1층 카페에서 만난 CAP 이희주 전략기획실장은 “정액 방식은 모바일 전용 상품이 나오기 전까지 유효하고, 푹 가격은 CAP이 결정한다는 계약조건에 따라 푹 2.0 출시에 맞춰 가격인상을 결정해 이통사에 전했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의 서비스 요금을 대납하던 이통사는 펄쩍 뛰었고, SK브로드밴드 등은 사전에 정한 계약조건에 따라 계약을 해지했다.

당초 6개월로 정한 가입자 보호기간 또한 ‘17개월 이후는 비용정산을 전제로 한다’는 부속합의 내용에 따라 한 달이 채 안 돼 끝났다. 이희주 실장은 “우리는 가입자 보호를 위해 이통사 모바일TV 가입자 중 푹 이용약관에 동의한 이용자에게 푹 2.0 초고화질 서비스를 한 달 동안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대신 한 달 서비스가 끝나면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공지’와 ‘링크’를 넣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통사가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통사는 푹 1900원 중 25%를 가져가는데, 지금도 같은 값을 받고 있다면 25%를 착복하고 있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물론 이통사의 주장은 정반대로 ‘지상파의 갑질로 서비스가 중단됐다’는 입장이다.

이통사는 지상파를 내세워 490만에 이르는 모바일TV 가입자를 끌어 모았지만, 사실 냉정하게 따지면 푹과 모바일IPTV는 ‘경쟁관계’다. 이런 점에서 이동통신사가 지상파 없이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결정한 배경에는 결합상품과 고가요금제로 잡아놓은 물고기(가입자)가 그물을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푹, 티빙 같은 경쟁서비스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있다는 자신감도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통3사의 모바일TV 가입자 490만명(추정치) 중 푹 약관에도 동의한 가입자는 190만명 수준으로 거실TV에서 지상파의 위력에 못 미친다. 이희주 실장은 “한국에서는 아이폰을 제외한 대부분 단말기에 지상파DMB가 나와 푹의 실시간방송 상품에 대한 니즈(needs)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희주 실장은 “실제 푹 매출을 분석하면 실시간방송보다 VOD 매출이 더 많다”고 전했다.

계약조건과 이해관계에 따른 ‘결별’이지만 푹은 이동통신사 플랫폼에서 푹 약관에 동의한 이용자 190만(SK브로드밴드 80만, KT 60~70만. LG유플러스 45만)을 잃게 됐다. 올해 매출을 지난해보다 150% 수준으로 잡은 CAP 입장에서는 치명타를 입은 셈이다. 그러나 푹이 다시 이통사에 입점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희주 실장은 “이통사가 건네는 마약을 더는 맞지 않기로 했다”며 “이제 콘텐츠연합플랫폼이라는 이름에 맞게 비지상파 콘텐츠도 모아 자체 플랫폼을 키워 내년 한국에 상륙할 넷플릭스와 경쟁하겠다는 게 CAP의 기본 미션”이라고 말했다.

이희주 실장은 “지금도 이통3사를 정기적으로 만나며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기존 PIP 방식도 이통사에 유리하게 설계됐다고 생각한다”며 “진정한 PIP라면 이통사라는 백화점에서 푹이 나올 때 고객을 데리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이통사는 애초 계약할 때는 모바일TV 가입자에게 푹 약관동의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다 잃었다. 이런 PIP방식을 고집한다면 다시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통사를 뛰쳐나온 ‘푹’이 성공할 수 있으려면 지상파와 CAP이 ‘콘텐츠’를 위해 어떤 정책을 내놓느냐에 달렸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CAP은 ‘시청점유율’에 따른 보상체계가 합리적이라고 설명한다. 애초 CAP은 실시간매출 절반을 각 채널에 N분의 1로 지급하고 나머지 절반은 점유율에 따라 차등지급했는데 내년부터 전면 점유율에 따라 차등지급할 계획이다. 지상파가 유료방송사업자에게 요구하는 CPS(가입자당 대가) 인상 요구 같은 ‘제값받기’가 오히려 과도한 ‘사업자 마인드’가 돼 중소PP(방송채널사용사업자)는 물론 자신을 옥죌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가격에서 이통사에 밀린다면 남은 것은 ‘비지상파 콘텐츠’ 확보다. 이희주 실장은 “정치적이고 정책적 이슈가 많아 CJ와 JTBC 같은 경쟁력 있는 사업자와 손을 잡고 같이 사업을 하는 게 쉽지는 않다”면서 “그래도 다른 사업자도 계속 만나고 있다. 우리는 영화도 들여왔고, 웹툰 서비스까지 할 수 있다. 콘텐츠연합플랫폼이라는 이름답게 지상파만을 위해 일하지 않고, 다양한 콘텐츠의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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