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2일에 동일한 지면을 통해 빈약한 저작권 논리에 대해서 비판을 했다. 이 글은 당시 글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수치를 확인하고자 한다. 지난 4년간 저작권 신탁단체에서 저작권 수익을 거둬들이고 저작권을 신탁한 회원들에게 분배한 금액이다. 지난 1월 확인한 시점 이후 2014년 자료가 추가됐다. 전체 분배금액은 큰 변화가 없지만 회원 수의 증가로 인해 1인당 평균 분배금액은 하락했다.

2015년 기준 최저임금은 시간당 5,580원이다. 이 금액을 주당 유급주휴 8시간 포함한 주소정근로 40시간으로 월환산하면 1,166,220원(5,508원*209시간)이 된다(최저임금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금액을 연봉으로 받는다고 하면 13,994,640원(1,166,220원*12개월)이 된다. 저작권료로 생계를 이어가는 작가가 있다면 최저임금의 1/2 수준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형편이다.

지난 글에서 음원 한곡이 내려받기가 발생해서 작가에게 최저임금 수준에 도달하려면 58,311건의 내려받기가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5만 8천이라는 수치는 일반적인 수준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다. 책과 비교하면 대략의 느낌을 알 수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출판물의 경우 초판 인쇄부수는 평균 2,733부 정도로 조사됐다. 반품률은 18.6%라고 한다(출판산업 실태조사 참조).

이러한 수치를 언급하는 이유는 저작권 강화가 제작을 하거나 창작을 하는 개인(이른바 작가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저작권의 기원은 대략 3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저작권법으로 알려진 앤 여왕법(Statute of Anne)은 인쇄술의 발명으로 증가한 출판물에 대해 출판업자(지금으로 보면 플랫폼사업자 내지는 음반 제작자)들이 허가받지 않은 출판에 대한 규제를 요청하면서 제정된 법으로 알려져 있다.

출판업자들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통제하고 허가받지 않은 출판을 통제하여 부를 축적했고, 국가는 검열 없이 출판되는 서적을 통제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자한 이해관계가 조응하여 생긴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앤 여왕법이 저작자를 보호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출판업자들이 가지는 독점력으로 인해 저작권의 지위는 열악했고, 단순히 출판업자들의 복제권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최초의 저작권법이자 지금까지도 저작권법의 전범(典範)이 되고 있는 법제도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이다. 현재 작동하고 있는 저작권은 창작자보다 창작자를 고용하고 있는 법인에 이익을 증진시키고 있다. 업무상 창작(work for hire)이 여기에 해당한다. 고용주(또는 자본가)가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력을 구매했기 때문에 해당 노동으로부터 나타난 가치나 결과물은 고용주에게 귀속된다는 논리다.

창작물이 유통될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창작물은 유통되면서 발생하는 이익을 유통사업자에 귀속시킨다. 저작인접권이라는 법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을 주장하는 논리는 자유로운 주체가 창작을 통해 하나의 문화적 산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을 제공해야한다는 개념에서 시작한다.

▲ SM의 유영진 작곡가(좌), YG의 테디 작곡가(가운데) 그리고 용감한 형제(우)

이른바 낭만적 저자(romantic author)도 같은 논리를 뒷받침한다. 예술가의 독창성은 내면에서 발생하고, 외부의 영향력 없이 내면에서 창조된 작품은 개인이 전유하며 재산권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저작권을 옹호하는 낭만적 저자의 현실적 모습은 어떠한가. 자본가에 고용된 노동자,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생활고를 겪는 무명의 작가가 아니었던가. 저작권 강화 논리는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이지 이 시점에서 드러낼 필요가 있다.

지난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회장은 800만 원 가량의 저작권료를 받았다. 지인인 무명의 작곡가는 50만 원을 수령했다고 한다. 물론 두 명의 작곡가를 직접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등록된 노래의 수가 다르고 대중적으로 이용되는 횟수가 다르다. 저작권 강화라고 해서 모든 작가에게 경제적으로 보상되지 않는다. 주어진 외적 조건에 따라 다르다. 내면은 무슨 내면이란 말인가. 모든 작가의 음원을 유통시키는 플랫폼은 저작권 강화에서 승리자로 남는다. 저작권 강화를 주장하기보다 저작권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한찬희 _ 언론학을 공부하고 직업인이 되었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 한 죄 때문에 십대 시절 심취했던 음악분야로 탈주하기 위한 경로를 아무도 모르게 구축하고 있다. 문화의 표상방식과 이데올로기 비판에는 늘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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