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합상품이 문제다.” 이동통신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어 결합상품 유치에 가장 유리한 SK도, 이례적으로 IPTV와 위성방송 플랫폼을 동시에 소유해 단숨에 유료방송시장 1위로 치고 올라온 KT도, 가입자 유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한다. 유료 방송 사업자들은 기자들과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결합상품 경쟁 탓에 저가구조가 고착화했다. 이렇게 가단 다 죽는다.”

물론, 한국만큼 방송을 ‘땡처리’해 파는 곳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드물긴 하다. 하지만 ‘결합상품 때문에 시장 전체가 망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들갑'이다. SK텔레콤이 지난 2월 공시한 투자설명자료를 보면, 2014년 3분기 기준, 각 사업부문별 영업이익률은 무선 10.1%, 유선 0.4%, 기타 (–) 0.1%이다. 언뜻 방송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숫자로 보이지만 ‘이동통신+IPTV+인터넷’ 결합상품 가입자를 고려하면 영업이익률 0%는 착시효과다.

사업자는 영업이익률 0% 사업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며 왜 ‘돈 안 되는 방송’을 팔까. 결합상품이라는 ‘비법’이 있기 때문이다. 고가의 이동통신에 염가의 방송을 끼워 팔면서 이동통신 가입자를 유지하는 게 사업자들의 전략이다. 결합상품 관련 통계를 보면 속내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전자신문은 19일 “우리나라 가구의 85%가 결합상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동통신 가입자로 따지면 열 중 셋이 결합상품에 묶여 있는 셈이다. 단순계산하면 SK텔레콤 가입자 2647만 명(2014년 12월 기준) 중 794만 명이 결합상품에 가입한 셈이다.

결합상품은 사업자의 새로운 수익창출 전략이다. SK텔레콤이 투자설명회에서 “통신산업이 성숙단계에 접어들면서 사업자간 경쟁강도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마케팅비용 증가로 인해 이동전화사업자의 영업수익성은 저하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과도한 마케팅비용 지출에 따른 비판적 여론과 정부의 정책적 의지 등으로 통신요금 인하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각 통신 사업자들은 유무선을 통합한 결합상품을 활성화하여 경쟁력을 제고하고 있다”고 밝힌 점은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실제, 결합상품 가입자는 큰 폭으로 계속 늘고 있다. 특히 2008년 IPTV 등장 이후 급격하게 증가세다. 19일 <미디어스>가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이용제도과에 결합상품 가입가구 현황을 확인한 결과, 2013년 말 기준 1553만 가구가 각종 결합상품(무선+유선 또는 유선+유선)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251만에 불과하던 결합상품 가입가구는 2008년 623만, 2009년 964만, 2010년 1208만, 2011년 1314만, 2012년 1459만 가구로 계속 늘고 있다.

▲ 이통 3사는 결합 상품을 '공짜'라고 홍보하며, 가입자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형태의 영업은 고가의 이동통신 요금에 방송을 저가로 묶어 판매하는 방식이다.

결합상품 가입자가 늘어난 배경에는 IPTV 등장 이후 정부가 시행한 규제완화가 있다. 2009년 이전 10~20%였던 결합상품 할인 상한 규제는 2009년 30%로 완화됐다. 언뜻 소비자에게 유리한 정책으로 보이지만 이는 사업자들이 가입자를 결합상품으로 쉽게 유도하는 마케팅을 디자인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가족결합, 카드제휴 할인 상품도 규제하지 않는다. 이제는 방송을 미끼 삼아 이동통신 가입을 유도하는 게 관행이 됐다. 미래부는 사전규제를 계속 완화했고, 방송통신위원회가 담당하는 사후규제는 맹탕인 경우가 많았다.상황을 단순 수치화하면, ‘정상적인 요금을 내는 IPTV 단독가입자’ 70%가 ‘공짜 가입자’ 30%의 요금을 대납하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사업자들의 경쟁력 제고 전략이 ‘결합상품 활성화’라는 점은, 이동통신 결합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이동통신 단독가입자를 확보하는 것보다 더 수익성이 좋다는 점을 드러낸다. 다른 상품과 재차 결합할 수 있단 잠재적인 수익 확대도 기대할 수 있다. 결합상품 가입자는 단독가입자보다 고가의 요금을 내기 때문이다. 케이블SO가 제4이동통신에 진출해 ‘디지털케이블+이동통신+인터넷’ 결합상품 경쟁에 뛰어들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업자들은 그 동안 이동통신 요금은 물론 IPTV와 인터넷 단독 상품의 가격을 뻥튀기해왔다. 각종 카드회사와의 제휴 할인으로 마치 “공짜”로 마케팅하는 분위기를 풍겼지만, 결합상품은 명백히 공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들은 방송요금을 상향 조정하기 위해 결합상품을 디자인하며 방송의 영업이익률을 낮게 잡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정부는 이용자 편익을 위한다며, 결합상품 규제를 완화했고 사업자들은 공짜 마케팅을 앞세워 가입자들을 결합상품으로 유도했다. 많은 가입자들이 결합상품에 환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가입자들은 사업자들이 뻥튀기한 이동통신·인터넷·IPTV 요금을 내고 있고, 결합상품은 이 상술을 가리는 역할을 했다. 늘어나는 유료방송가입가구는 이런 뻥튀기 상술의 결과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결합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알뜰폰으로 이동통신요금을 내리고, 실시간방송을 안 본다면 과감하게 유료방송을 '코드커팅' 하는 게 낫다. VOD 시대, 실시간방송을 안 보면서 기본요금을 낼 이유는 전혀 없다. VOD서비스만 이용할 수 있는 저가 유료방송 상품도 많다. 만약 당신이 이동통신사와 또 다시 3년을 약속한다면 다시 3년 동안 호갱님이 될 뿐이다. 통신요금 인하 없는 결합상품은 그렇지 않아도 호갱님인 이용자를 만년 호갱님으로 묶어두는 상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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