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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논리’ 쓰는 지상파, 그 힘 싫다면서도 ‘기생’하는 유료방송1/N 사업자 됐으면서도 여전한 지상파의 VOD ‘갑질’
박장준 기자 | 승인 2015.04.22 20:19

“여기 지상파 기자들 없죠?” 케이블VOD(구 홈초이스) 최정우 대표는 작심한 듯 말을 꺼냈다. 21일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에서 열린 ‘케이블TV VOD산업’ 세미나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의 VOD 서비스 현황과 전망을 소개하는 자리였지만 실제 내용은 지상파 성토대회였다. 최정우 대표에 따르면 △지상파방송사와 유료방송사업자는 VOD 홀드백(무료화 시점) 3주 동안 수익을 65대 35 비율로 나누고 △케이블SO는 홀드백 이후에도 콘텐츠를 서비스하기 위해 지상파에 연간 260억 원을 지급하고, 지상파에만 VOD광고 매출의 17%를 배분한다.

최정우 대표는 홀드백 연장, VOD 가격 인상, 무료VOD 광고 매출 배분 같은 조건은 모두 지상파방송사의 ‘힘의 논리’로 결정된 것이라며 “(케이블SO는) 지난해 지상파 VOD에서 적자를 봤다”고 전했다. 그는 “지상파는 제값을 받겠다며 VOD 가격을 올렸다. 그런데 콘텐츠가 하나의 재화라면 프로그램의 가치는 시청률도 측정할 수 있다.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데 (가격을 내리고) 그렇다면 ‘박리다매’를 해야 맞다”고 말했다. 유료방송사업자가 주도하는 VOD 산업이 빠르게 성장 중인 상황에서 콘텐츠사업자에 대한 ‘우위’와 ‘자신감’을 드러낸 발언이다.

콘텐츠, 플랫폼 양자에게 VOD 시장은 새로운 먹을거리다. 앞으로 VOD 이용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TV 시청자 중 VOD 이용자는 2011년 5.23%에서 2014년 19.79%로 늘어난 반면 실시간방송 시청자는 94.77%에서 79.74%로 크게 줄었다. 이 시각 TV를 보는 사람 다섯 중 한 명은 VOD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VOD 이용자의 비율은 30%대까지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2~3년 내 VOD산업이 극장 매출(2014년 기준 1조6천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프로그램 하나를 천원 이상 주고 시청하거나 월 정액상품에 가입한 시청자가 늘어나면 콘텐츠 사업자는 지금보다 더 큰 수익을 얻게 되지만 시장에서의 권력은 그만큼 줄어든다. 콘텐츠사업자 대표 격인 지상파방송사를 예로 들면 채널이 많아지고 실시간시청이 줄면서 지상파가 방송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씩 줄고 있다. 케이블VOD 내부자료에 따르면, 케이블SO의 VOD 매출 중 지상파는 32.3%밖에 안 된다. 이 비율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럴수록 플랫폼사업자의 지배력은 커지고 콘텐츠사업자의 가격 결정권은 낮아지게 된다.

   
 

플랫폼사업자는 발을 넓히고 있다. 시청자의 90% 이상이 유료방송플랫폼에 가입한 터라 ‘VOD 전용 드라마’와 ‘극장 동시개봉 영화’가 등장하고 있다. 실시간 방송과 VOD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극장을 안방으로 흡수한 셈이다. 게다가 플랫폼사업자가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기까지 한다. 미국의 OTT사업자 넷플릭스가 콘텐츠 수급에 어려움을 겪자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직접 제작한 게 대표적이다. 최정우 대표는 “최근 넷플릭스가 VOD로만 제공하기로 한 영화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을 미국 메이저 극장들이상영 거부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유료방송 가입자의 절반이 VOD를 이용하면 유료방송이 모든 콘텐츠의 ‘First Window’가 될 수 있는 게 사업자들 생각이다. 최정우 대표는 “지난해 1700억원 매출 중 80%는 헤비유저 20%에서 발생했다”며 “VOD 시간대(정오~3시)의 소비 콘텐츠를 분석해 추천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VOD 시간대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장르는 성인영화인데, 시청을 끝낸 이용자에게 또 다른 VOD를 추천하는 식이다. 이밖에도 ‘모든 VOD 한달 공짜’ 마케팅 같은 것도 고민 중이지만 콘텐츠 쪽 반대에 부딪혔다는 게 사업자들 이야기다.

가입자에게 플랫폼 대형화는 독이다. 콘텐츠 사업자의 가격 인상 요구가 고스란히 이용자들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의 유료방송은 이중지불 구조다. 한국의 케이블방송 수신료는 평균 7700원(2012년 OECD 보고서)이고 IPTV 기본요금은 만원 초반(3년 약정에 인터넷 결합 기준)인데 한 가입자가 1만5천원짜리 지상파 월정액 상품과 월 만원의 CJ E&M 월정액 상품에 가입한다면 기본요금 이상을 유료방송사업자에 이중납부하는 꼴이 된다. 규제기관이 유료방송의 기본요금과 VOD 유통 및 가격 결정에 개입할 필요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각한 문제는 콘텐츠의 대표인 지상파가 플랫폼 ‘기생’ 전략을 택했다는 데 있다. 규제기관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적 플랫폼을 강화하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상파 방송사가 유료방송의 가격 인상을 부채질하는 것은 이동통신 3사와 5대 MSO가 가장 바라는 모습이다. 사업자들은 건당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오를 때 겉으로는 반대했지만 속내는 찬성이었다. 가격 인상은 유료방송사업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희소식이다. 이들은 가입자에게 지상파 VOD를 한 편 틀어줄 때마다 앉아서 500원 이상을 벌게 됐다.

VOD 시장은 커지는데 역설적으로 콘텐츠 사업자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특히 지상파 방송사는 ‘N분의 1’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이야 협상력이 있다지만 가격 인상 요구, 홀드백 연장, 광고 수익 배분 같은 기생 전략은 콘텐츠 진영 전체는 물론 이용자에게 좋지 않다. 재벌 대기업이 쥐락펴락하는 플랫폼에서 콘텐츠가 살아남을 길을 고민하는 게 급선무다. 케이블SO가 지상파VOD를 팔아 기록한 ‘적자’는 요금 인상의 근거가 되고, 앞으로 기록할 ‘흑자’는 이중지불의 결과다. 공적 플랫폼을 활용한 공적 유료방송 같은 큰 그림을 그려야 할 시기다.

박장준 기자  wesh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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