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가격안정법,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 국회증언감정법, 국회법개정안 등 6개 법안에 대해 19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법령상으로는 권한을 대행하는 것에 특별한 제한은 없다. 다만 직접 선출된 바 없는 인사가 임시적 과도적 체제의 책임을 맡는 것이므로 현상유지적 권한 행사에 그쳐야 한다는 게 대다수 헌법학자들의 관점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는 어느 쪽인가? 주장하기에 따라 이쪽도 되고 저쪽도 되지만, 권한 행사의 성격만 기준으로 놓고 볼 때 거부권 행사를 하지 않았다면 결론은 가장 깔끔했을 것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주장하는 대로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했다면, 그저 거부권 행사를 선포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여야정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논의하는 프로세스로 이어지도록 하는 게 그나마 정당성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여야가) 가는 길에 대해 각자의 위치나 상황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고 모두를 위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가 함께 노력하는 것이 절실하다. 국회에서 다시 한번 심도 있게 논의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드린다”라고 한 것에는 이런 고려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민주당의 국정안정화협의체 제안을 국민의힘이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거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 놀이’ 운운하며 이 제안을 거부하였는데, 이게 과연 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태도였는지 다시 한 번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직무정지가 돼 국정에 공백이 발생하였다면 여당으로서 국민들에게 사죄를 하고 국정 공백을 우선적으로 막기 위해 여당이 오히려 야당에 여야정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제안하는 게 상식적이다. 앞서 6개 법안에 대한 대체입법 논의도 거부권 행사 이전에 이 틀에서 진행을 우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이 틀을 거부하며 한덕수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부추겼다.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가려는 듯한 태도인 것이다.
권선동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헌법재판관의 임명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바로 직전까지 권선동 원내대표는 ‘전임 원내대표가 인사청문회 일정까지 합의한 사안이라 입장 변경은 어렵다’는 태도였는데, 어느 순간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기 전까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탄핵심판 절차의 무력화를 기도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측의 전략에 사실상 호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 측은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미 반박되거나 무력화된 법적 방어논리를 반복 유포했다. 윤석열 대통령 측이 내놓은 이런저런 얘기를 법리적으로 재구성하면, ‘계엄 선포는 통치행위라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된다 하더라도 내란죄 성립을 위해선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어야 하는데,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지 않았고 진정으로 전시 사변에 준하는 사태로 생각한 것이었으며, 실체적으로 폭동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건데, 이는 이미 보도된 군경 책임자들의 증언에 의해 거의 다 반박된 내용이다.
주목할 것은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 측이 이미 TV를 통해 직접 밝힌 대국민 입장문을 출력물로 다시 배포했다는 것이다. 야당이 예산을 삭감하고 국무위원과 검사 등을 탄핵한 것, 부정선거 의혹이 있는데도 선관위가 대응하지 않은 것 등을 비상계엄 선포의 근거로 드는 이 입장문은 언론의 ‘팩트체크’에 의해 근거가 없는 내용이 상당수임이 이미 드러났다. 그런데도 이러한 입장문을 배포한 이유는? 현장에 유튜브 채널 운영자 등이 모여들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여론전’을 계속해서 펼치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종합하면, 윤석열 대통령의 전략은 법정 안에서는 이미 반박된 논리도 재차 끝까지 주장하며 절차 하나하나를 문제 삼으며 시간을 끄는 침대 축구를 펼치면서, 법정 밖에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자신을 여전히 지지하는 소수 지지층을 아스팔트 위로 동원해 ‘내전’에 가까운 상황도 불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건데 그런 의도라면 당연히 여당과 정부를 향한 나름의 주문과 접근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 연장선에서 볼 때에야 권성동 원내대표의 무리한, 가령 “국회에서 통과한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경우 그 탄핵안을 발의, (찬성) 표결한 국회의원을 직권남용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북한에서나 가능할 법한 주장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이라면, 누가 봐도 무리일 수밖에 없는 ‘권성동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 시도가 왜 이뤄지는지도 추정이 가능하다.
만일 여당과 정부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영향력이 아직도 상당한 수준이라면 우리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게 된다. 첫째, 한덕수 권한대행은 여당의 주장대로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해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무력화 전략을 거들 것인가? 이 전략을 거들지 않을 생각이라면 여당 혹은 윤석열 대통령 측에 대신 무엇을 해줄 생각인가? 둘째, 이 모든 사태의 시작점 중 하나로 추정되는 김건희 특검에 대한 거부권을 끝내 행사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끼리의 파국을 감수하고 그나마 ‘지연된 정의’라도 선택할 것인가? 한덕수 권한대행의 선택에 따라 이후 국면은 아주 크게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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