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드라이브에 당론을 만들 시간을 달라는 지연 전술로 대응했다. 여기에 더해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거론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공영방송 정치적 독립' 국회 국민동의청원까지 성립되자 국민의힘이 법안처리를 막기 위한 결사반대와 시간끌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언론현업단체에서 '침대축구'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2소위는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발의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 전부를 심사 테이블에 올렸다.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안2소위위원장 자리를 요구하며 '카카오 먹통 방지법' 심사를 보이콧한 국민의힘은 이번 법안심사에 참여했다. 민주당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 주체를 다양화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국민의힘은 정치권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을 명문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법안2소위 종료 후 과방위 국민의힘 간사 박성중 의원은 "민주당 안은 '25인 운영위원회'로 정해졌지만 여당은 아직 당론이 없다"며 "우리도 내부 토론을 거쳐 당론으로 정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 우리 당 개별 안은 우리가 야당일 때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안2소위원장이자 과방위 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당론 채택 요구는 국민의힘 지연 전략일 뿐이다. 그동안 당론도 정하지 않고 뭘 했나"라며 "당론을 정하든 안 정하든 논의에 큰 의미는 없다. 신속하게 진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국민의힘이 이미 특별다수제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며 "법안이 제출된 지 2년 이상이 됐기 때문에 충분히 논의 과정을 거쳐왔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의원 전원이 지난 4월 공동발의한 '공영방송 운영위원회' 법안은 KBS·MBC·EBS 등 공영방송 이사회를 '운영위원회'로 변경하고 운영위원 정수를 25명으로 확대·개편하는 내용이다. 운영위원 추천 주체는 정당, 방송·미디어 학회, 공영방송 시청자위원회, 한국방송협회, 공영방송 종사자 대표, 방송관련 직능단체, 광역단체장협의회 등이다.
국민의힘은 정치권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을 명문화하자는 입장이다. 박성중 의원은 공영방송 이사 구성 시 국회 여야 7대6 추천 비율로 이사진을 구성하고, 사장 추천 시 이사회 3분의 2 이상의 동의(특별다수제)를 얻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허은아 의원은 KBS 이사회 구성을 여당이 6명, 제1야당이 6명, 방통위가 3명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고, 2년마다 이사의 3분의 1씩을 교체하는 내용의 '임기 교차제'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은 법안2소위 심사 전후로 발표한 성명을 통해 민주당 당론 법안을 '민노총(민주노총) 언론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공영방송 장악법'으로 규정하며 민주당 단독 처리 시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과방위원 일동은 "민주당에 경고한다. 설령 과방위에서 통과되더라도 법사위에서 엄격한 검증을 받아야 할 것"이라며 "여야 협의없이 독단적으로 통과시킨 방송법은 의회 폭거의 상징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기에 우리는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공정방송소위는 성명에서 "공영방송 영구지배 음모를 위한 민주당과 언론노조의 결탁"이라며 "정치적 후견주의 방지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친민주당·친언론노조 성향의 시민단체를 이용해 공영방송을 영구 장악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수언론이 민주당 당론 법안에 대한 '언론노조 장악' 주장을 보도했다가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라 정정·반론보도를 게재한 사실이 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신문, 뉴데일리, 시사포커스, 펜앤드마이크 등의 보수언론은 언론노조를 '민주당 정권 대변인' 등으로 비방하거나 민주당 당론 법안에 '언론노조 장악' 딱지를 붙였다. (관련기사▶언론노조-민주당 유착설 보도·사설, 삭제·정정·반론 매조지)
국민의힘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 건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제도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난 18일 '언론자유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법률 개정'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시민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과방위에 회부됐다. 현행법상 상임위는 국민동의청원이 회부된 날부터 9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고 국회의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60일 범위에서 한 차례 심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맡고 있는 국민의힘이 법안 심사와 처리를 지연시킨다고 해도 국민동의청원제도상 기한이 되면 본회의에 회부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라는 무리수를 꺼내든 배경이다.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법안의 최종형태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통령 거부권 얘기까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침대축구' 전술"이라며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시절 공영방송의 편향성·공정성 문제를 공격했다. 결국 그걸 바로잡겠다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공영방송을 장악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윤 위원장은 "작금의 방송·언론자유 문제에 대해 국내·외에서 걱정이 많다. 국민의힘은 과연 누가 국격을 떨어뜨리고 있고, 국익을 저해하고 있는 것인지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도 미디어스에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국민의힘도 야당 시절 민주당 정권에 의해 공영방송 사장이 임명된 것을 보고 그토록 비판을 했지 않나"라며 "지난 대선 때 모든 대통령 후보들이 방송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담보를 얘기했다. 이렇게 얘기했던 윤 대통령이 만약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건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MBC 민영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협회장은 "국민의힘이 MBC를 불공정 보도 프레임으로 몰아 민영화를 얘기하는데, 보도가 불공정했다면 언론중재위 조정신청이나 제소를 하면되는 일"이라며 "대통령 자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 입을 다물고 있는데 무엇이 불공정했다는 것인가. 국민의힘이 말하는 민영화는 사실상 정권의 입맛에 맞게 방송을 사용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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