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민의힘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 카드를 꺼내 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드라이브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민주당 위원들은 "민주당은 오늘부터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혁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 내에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법률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며 법안심사에 착수했다.
민주당 과방위원들은 "방송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이 5만명을 돌파, 국민동의청원이 성립됐다. 우리는 언론계 숙원이자 국민의 염원인 방송법 개정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갈 것"이라며 "공영방송 독립을 위한 방송법 개정은 시대적 소명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공영방송 운영위원회'안은 '악법 중의 악법'이라며 자신들도 당론 법안을 만들 시간을 달라고 요구를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법안을 단독 처리할 시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해달라고 건의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상임위원회 법안심사도 마치지 못한 법안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꺼내든 것이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대통령이 이의가 있을 때, 해당 법률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는 법률안을 다시 본회의에 상정한다. 이 경우 의결 정족수는 '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다. 현재 국민의힘은 국회 재적의원 299석 중 115석(38.5%)를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의 힘을 빌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막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통령 거부권은 헌법상 국민의 권리인 청원권을 근간으로 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제도와 충돌한다. 현행법상 상임위는 국민동의청원이 회부된 날부터 9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고 국회의장에게 보고해야 하며 60일 범위에서 한 차례 심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상임위 의결로 국민동의청원 안건을 폐기하지 않는 한 국회 본회의에 청원이 상정되는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맡고 있는 국민의힘이 과방위에서 의결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의 심사와 처리를 지연시켜도 다수당의 의지에 따라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중요한 건 다수당의 의지다. 상임위 의결로 국회의원 임기가 끝날 때까지 심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24일 민주당 과방위원들이 밝힌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이유는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이다. 이들은 MBC 전용기 탑승 배제, YTN 민영화 추진, 출근길 문답 잠정 중단과 MBC 기자에 대한 비난 등을 거론하며 "공영방송은 물론 언론에 대해 자행되고 있는 윤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행태를 규탄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MBC 전용기 탑승 배제 등이 '탄압' '통제'라는 여론은 각종 조사에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18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29%, 부정평가는 61%로 부정평가 이유에 '언론 탄압/MBC 기자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3%)가 등장했다. 25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 긍정평가는 30%, 부정평가는 62%로 부정평가 이유 중 '언론 탄압/MBC 대응'(6%) 언급이 전주 대비 늘었다. (두 조사 모두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언론현업단체들은 '언론자유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법률 개정'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기한 이틀을 남기고 시민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성립된 것은 윤 대통령 덕이라고 말한다. 21일 국회 앞에서 6개 언론현업단체는 "국민동의청원 성사는 몰상식에 천박한 언론관을 가진 윤석열 정부에 대한 경고이자 법안 상정을 미루며 눈치만 보던 민주당에 대한 채찍"이라고 평가했다.
최성혁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윤 대통령이 청원 성립 일등공신"이라고 말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MBC 기자는 대통령에게 '뭐가 악의적이냐'고 물었다. 대통령은 무시했다"며 "대통령실은 MBC 기자 징계를 운운하고 있다. 질문하는 기자에게 돌아오는 것이 징계인가"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자신의 대선 공약과 충돌한다. 김동훈 협회장은 24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지난 대선 때 모든 대통령 후보들이 방송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담보를 얘기했다. 이렇게 얘기했던 윤 대통령이 만약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건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언론자유 보장과 불개입 원칙을 여러 차례 공언했으며 당선인 시절에 "공영방송이 정치적 중립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윤 대통령은 국정과제에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이사회 구성 및 사장 선임 절차 등 방송관계법 개정'이라는 문구를 적시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미디어스에 "법안의 최종형태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통령 거부권 얘기까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침대축구' 전술"이라고 말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19대, 20대 국회에서도 논의됐던 해묵은 이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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