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난달 30일 임기가 종료된 안형환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이 신문 기고문을 통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을 비판했다. 

안 전 부위원장은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공영방송은 '특정 방송 관련자들'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같은 지적을 하는 보수언론학자도 국민의힘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비판한다는 점이다. '대안없는 반대'를 지속하고 있는 국민의힘은 정치권이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는 관행을 유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동아일보 4월 3일 안형환 전 방통위 부위원장 기고 갈무리 (사진=빅카인즈) 

안 전 부위원장은 3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방송법개정안, 공영방송 공익성 훼손">에서 "현재 공영방송은 이사회를 구성할 때 양대 정당이 비공식적으로 이사를 지명한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면서 "하지만 개정안대로 하면 공영방송이 특정 방송 관련자들의 놀이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고 썼다. 

안 전 부위원장은 방송법 개정안은 방송분야 인물들이 과잉 대표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 수를 총 21명으로 늘리고 추천 주체를 다양화하는 내용이다. ▲국회 5명 ▲공영방송 시청자위원회 4명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 6명 ▲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각 2인씩 총 6명 등이 추천하게 된다. 

안 전 부위원장은 ▲지역성 대표성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방송사에는 10여 개 직능단체가 있는데 이들을 배제한 이유는 무엇인가 ▲수십 개의 방송·미디어 학회 중 어떤 기준으로 학회를 선정할 것인가 ▲시청자위원회는 방송사 집행부에서 위촉한다고 문제 삼았다. 

안 전 부위원장은 "(공영방송의)독립은 지고지선이 아니라 공익 실현을 위한 수단"이라며 "그런데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전혀 공정하지 않고 공익에 대한 사명감 없이 독립만 외친다면 어떻게 될까. 방송을 그들만의 무대로 만들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고 했다. 

이어 안 전 부위원장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는 방송을 언론으로만 보지 말고 미디어 시장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한국 공영방송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지배구조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의 역할, 재원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썼다. 안 전 부위원장은 방통위가 공영방송 협약제도를 강구하고 있으며 미디어 전체를 포괄하는 가칭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도 연구 중이라고 덧붙였다. 

안 전 부위원장의 주장은 지난 1월 국민의힘 박성중·홍석준 의원과 정책위원회가 주최한 <공영방송 개악법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황근 선문대 교수가 발제한 내용과 유사하다. 해당 토론회에 안 전 부위원장도 참석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론은 다르다. 황 교수는 민주당이 방송법 개정안을 추진하면 여권은 대통령 거부권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 교수는 "이 사람들(민주당)이 노리는 것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그 순간 이 정부를 '언론탄압정권'으로 공격할 것"이라며 "이런 것에 말리면 안 되고 우리도 개정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든 당에서 만들어서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방송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 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정권교체 이후 자신들이 내놓은 법안보다 후퇴한 정치권 추천안을 주장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민의힘 간사 박성중 의원은 "효율성이나 비용 등을 감안해서 현행 유지(정치권 추천 관행)가 합리적이라고 2008년에 합의된 바 있다"며 "선거라는 대의민주주의로 당선된 여야 교섭단체의 추천이 그래도 민주적인 방식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공영방송 이사회는 정치권 추천 관행에 의해 여야 7대4(KBS 이사회), 6대3(방송문화진흥회, MBC 최대주주) 구조로 구성된다. 박성중 의원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 구성 시 국회 여야 7대6 추천 비율로 이사진을 구성하고, 사장 추천 시 이사회 3분의 2 이상의 동의(특별다수제)를 얻도록 하고 있다.

보수성향 언론학자 윤석민 서울대 교수도 지난 1월 언론학회·방송학회 주최 특별세미나에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정치권력이 나눠먹는 방식을 여러 기구에서 참여해서 다원화시킨다는데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 반대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다만 윤 교수는 집권여당 시절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민주당의 사과가 전제돼야 하고, 민주당 법안에 명시된 추천주체가 다원화 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 1월 31일 안형환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영방송 개악법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지난 1월 31일 안형환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영방송 개악법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안 전 부위원장은 국민의힘 주최 토론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방송인들이 특정 정치집단과 이익공동체가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과 현업 방송언론인들을 이익공동체로 규정해 비판한 것이다. 안 전 부위원장은 "전 세계 어느 언론사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어느 특정 세력이 마음대로 할 성격의 법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방송법 개정안을 '민주당·민주노총 공영방송 영구장악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관련기사▶안형환, 국힘 토론회서 "방통위 불만, 조만간 해결될 것")

안 전 부위원장이 미디어 환경과 사회적 합의를 명분으로 거론한 '공영방송 협약제도'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등은 윤석열 정부의 방통위 흔들기 때문에 입안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과방위 민주당 간사 조승래 의원은 지난달 28일 열린 KBS법 공청회에서 "지난 정부에서 상당히 논의됐는데 지금 실종된 것은 변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통합미디어법'(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등)을 만들 필요성"이라며 "제가 알기로 방통위는 법안 성안까지 해놓은 것으로 안다. 정부가 바뀌면서 방통위원장과 관련한 정치적 시비 때문에 동력이 확보되지 못해 법안 제출 등 구체적인 행동이 진행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안 전 부위원장은 한나라당 의원 출신으로 국민의힘 전신 미래통합당 추천으로 방통위원에 임명됐다. 이후 김현 전 민주당 의원, 김효재 전 한나라당 의원 등 전직 의원들이 방통위원으로 임명됐다. 당시 언론시민사회에는 방통위를 '미니 국회'로 만들 수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다. 

안 전 부위원장은 퇴임을 앞두고 TV조선 재승인 고의감점 의혹을 근거로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직위해제를 주장했다. 한 위원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은 지난달 31일 새벽 기각됐다. 법원은 "주요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의 정도, 수사의 경과 등에 비추어 볼 때 피의자의 자기방어권 행사 차원을 넘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검찰이 한 위원장 교체를 겨냥해 무리한 수사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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