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윤석열 대통령은 끝까지 황당할 정도의 뻔뻔함으로 일관했다. 19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10차 변론기일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싶을 정도의 얘기들이 걸러지지 않고 나와 많은 사람들을 새삼스레 기막히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게 윤석열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혈액암으로 투병 중인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경찰이나 검찰 조사 당시에 섬망 증세가 있다거나 그런 건 없었나”라고 물은 것이다. 조지호 청장은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원들을 국회에서 끌어내거나 체포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조지호 청장은 탄핵심판에 나와서는 “피고인 신분이라 증언을 못 하더라도 양해를 부탁한다”며 관련 진술 들에 대한 증언을 거부했다. 그러나 수사기록 자체가 탄핵심판의 증거로 채택돼 있어 증언을 거부하더라도 대세에 지장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 측에서 볼 때는 탄핵심판에서 증언을 안 하는 것에 더해 기존 수사기관 진술의 신빙성을 흔들 수 있는 추가 내용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섬망 운운 한 것이다. 만일 조지호 경찰청장이 이전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그랬던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이러한 ‘섬망’ 카드에 적극적으로 호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측의 괴이한 질문 배경에는 이런 고약한 맥락이 반영되어 있다.
그래도 여기까진 대리인단의 주장이다.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직접 나서는 대목은 황당을 넘어 허무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윤석열 대통령은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증인신문 뒤 발언 기회를 얻고 “저와 통화한 걸 가지고 대통령의 체포 지시라는 것과 연결해 내란과 탄핵 공작을 했다는 게 문제”라며 흥분한 투로 ‘홍장원 공작론’을 주장했다.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 당시 홍장원 전 1차장에게 전화한 것은 간첩 검거와 관련해 방첩사 지원을 지시한 것뿐인데, 홍장원 전 1차장이 해임된 이후 이러한 통화 사실을 악용해 야당과 협잡을 해 음모를 꾸몄다는 식의 스토리를 늘어놓은 것이다. 이에 더해 윤석열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국정원 CCTV 기록과 홍장원 전 1차장의 진술 내용이 맞지 않는다며 여러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의문인 것은, 홍장원 전 1차장 진술 내용에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십수 명의 체포 대상 명단의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거다. 이 체포 명단에 대해서는 군 방첩사, 수방사의 관계자도 같은 내용을 진술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홍장원 전 1차장과의 통화에 대해 국정원장이 미국에 있는 줄 알았다거나 간첩 검거와 관련한 독려 전화였다고 주장하지만, 조태용 국정원장은 이미 그 이전에 자신이 미국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했다고 증언했다. 야당의 국회 권한 남용에 대한 경고를 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는데, 그 긴박한 밤에 간첩 검거 지시를 국정원에 따로 독려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도 쉽게 이해하긴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의 홍장원 전 1차장에 대한 분노는 사실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괘씸함’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배신한 거 아니냐는, 그런 생각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진술할 때 윤석열 대통령이 이석한 것은 눈여겨볼만한 장면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 대해서는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으나 그 외의 여러 쟁점에 대해서는 방어적 태도로 일관했다. 이런 태도가 애초에 예상되었으니, 윤석열 대통령도 그냥 앉아있는 것도 트집을 잡는 것도 애매한 상황에서 차라리 나가버리는 걸 선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증인신문이 끝난 뒤 석동현 변호사를 통해 ‘대통령 국민변호인단’을 향한 메시지를 공개했다. “어른세대, 기성세대, 청년세대가 함께 세대통합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힘을 써달라. 그렇게 하면 내가 빨리 직무 복귀를 해서 세대통합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겠다”는 건데, 헌법재판소 밖에서 여론전을 좀 더 힘차게 해야 자신이 복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변호인단’은 변호와는 관계 없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윤석열 지지 조직으로 지난주 가입자 수가 10만 명을 돌파한 상황이다. 이는 명백하게 조직된 다수 지지자를 향한 선동인 셈이다.
냉정한 현실은, 직무 복귀는 되지 않을 것이고 탄핵 인용 가능성은 거의 100%이다. 그러나 이날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는 그 이후의 우려를 더욱 키운다. 자신의 지지층에 헌법재판소의 결론을 납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서사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결론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조건을 자신들이 만들고, 그걸 근거로 무슨 여러 정치적 옵션을 주장하는 보수 진영 일각의 시도도 있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얘기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시도는 모두에게 상처와 균열을 남길 것이다. 인터넷 유행어로 말하자면,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흑역사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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