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담이 칼럼]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에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불법 비상계엄 선포 123일 만이었다.

그 123일 동안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뉴스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뉴스를 보는 생활이 계속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뉴스를 찾아보고 헌법재판소에서 아직도 소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실망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추슬렀다. 겨울에 시작한 탄핵심판은 겨울을 지나 봄이 되고 꽃이 피는 동안 무수한 소문만 만들어내고 소식이 없었다.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지난해 12월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촉구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지난해 12월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촉구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1년의 3분의 1. 그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뉴스를 보았다. 볼 때마다 화가 났다.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혹시, 라는 생각에 불안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너무나 당연하게 드러난 ‘위법’한 행위가 혹시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 아닌가, 저들의 주장대로 파면이 아니라 기각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의 씨앗이 싹텄다. 100일 넘게 계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불면의 밤을 보낸 악몽의 시간이 현실에서 부활할까 봐 두려웠다.

너무나 당연하고 뻔한 결과를 기다리면서 애가 타는 것은 우리나라 재판관에 대한 신뢰가 낮아서이다. 법률인과 정치인이 샴쌍둥이처럼 밀착된 공생하는 관계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침, 저녁으로 틈틈이 헌법재판소 소식을 찾아보며 한숨 짓고 지쳐가고 있었지만, 간절히 바랐다.

2025년 4월 4일 11시. 텔레비전 앞에 앉아 헌법재판소의 선고를 기다렸다. 선고가 있기 전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지저분한 것을 모두 치웠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정화수를 놓고 기도를 드리는 마음이 그때 내 마음이었다.

11시가 되었다. 여덟 명의 헌법재판관이 입장하고 문형배 재판관이 선고문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 문장부터 고개를 끄떡이게 되었다. 조목조목 모두 대통령 윤석열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문장 하나 하나에 안도하고 이해하고 가슴이 울컥거렸다. 100일을 넘게 시달리던 우울, 불안, 공포로 잠식되던 내 안의 감정이 조금씩 놓여나는 것 같았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MBC 뉴스특보 화면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MBC 뉴스특보 화면 갈무리)

11시 22분. 문형배 재판관이 마지막 문장을 말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나는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감정을 추스릴 수 없어 전화를 걸었다. 아는 선생님과 이 순간의 벅찬 마음을 함께 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 선고문 영상을 몇 번이고 다시 돌려 보고 저장했다.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8:0, 만장일치로 국민의 분열을 막았다. 만장일치가 되지 않았다면 헌법재판소에서 비롯된 분열이 그대로 국민 분열로 이어져 극단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통치행위가 국민의 기본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 라는 대전제는 그 무엇보다 우선한다. 파면이라는 당연한 결과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고단하고 서글프고 고달팠다. 123일, 그 험난한 여정을 지나면서 깨달았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국민으로서 비판과 경계의 시선을 늦추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 일로 몸소 깨달았다.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으며 정치 견제가 잘되고 있다고 믿었던 것에 배반당했다.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단 사람의 잘못된 가치관과 판단이 우리가 지키고 믿었던 민주주의 가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한 다음날인 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승리의날 범시민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한 다음날인 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승리의날 범시민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그동안 우리는 방만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그 토대를 바탕으로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더욱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계엄령이라는 사회 교과서에서나 보던 단어가 실제로 실체를 가지고 교과서 밖으로 튀어나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123일은 춥고,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결국 우리의 민주주의는 승리했고 아름다웠다. 군인을 막은 시민이 있었고, 국회를 지킨 국민과 국회의원이 있었고, 매일 매주 안국역 앞에서 응원봉을 들고 윤석열 파면을 외치며 시위를 이어간 국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 민주국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가치를 깨닫고 다시 서는 날이 되었다. 다시는 국민을, 주권을 위협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고 지켜보아야 한다. 정권이 바뀐다고 하여도 마찬가지이다.

나라가 어두우면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나와 길을 밝힌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80년대, 90년대를 지나며 지켜온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담은 우리의 마음이며 등불이다.

김담이,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2023년 12월 첫 번째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 출간.  2024년 11월, 소설집 『경수주의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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