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720일 만에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담은 윤 대통령의 국정기조 전환 의지를 가늠하는 장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결렬 수준' 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윤 대통령의 변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대표의 정권 비판 앞에 윤 대통령의 '굳은 표정'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대통령실은 제1야당 대표와의 회담으로 소통의 물꼬를 텄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조선일보는 두 사람의 만남이 '정치 복원의 희망을 줬다'고 주장했다. KBS와 TV조선은 대통령실 비서실장·정무수석 인터뷰를 진행했다.

29일 오후 2시경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만나 2시간 15분가량 회담했다. 두 사람은 의대 정원 증원 문제와 연금개혁에 대한 협력을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요구한 민생회복지원금,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대한 유감 표명 등에 대해 윤 대통령은 사실상 거부하거나 답변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답답하고 아쉬웠다"고 했고, 대통령실은 "야당과의 소통·협치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했다.
이 대표는 A4 10장 분량의 모두발언을 통해 '의제 없는 영수회담'에서 사실상 모든 의제를 던지는 전략을 펼쳤다. 인사말 종료 후 퇴장하려는 취재진을 붙잡아 준비해 온 원고를 읽는 이 대표 앞에서 윤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졌다.
동아일보 <의자 직접 빼준 尹, 李 '독재' 언급 5400자 입장문 읽자 표정 굳어>
중앙일보 <의자 빼준 윤 대통령, 이재명 5400자 모두발언에 표정 굳어>
한국일보 <李, 취재진 붙잡고 15분 간 원고 읽자 웃던 尹 표정 굳었다>
한국일보는 이 대표가 모두발언 초반부터 윤 대통령의 언론관을 직격하며 '정곡'을 찔렀다고 평가했다. 한국일보는 30일 기사 <이재명 "언론사 압수수색 일상적"... '尹 언론관'부터 겨냥했다>에서 이 대표가 '입틀막 정권' 비판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대통령을 향한 비판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는 취지지만,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상당히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지적으로 기선 제압에 나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대표는 ▲보도를 이유로 기자·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MBC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류희림)의 법정제재 7건이 법원에서 모두 효력정지된 것을 아느냐 ▲국민들도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잡혀가는 거 아닐까 걱정하는 세상이 됐다 ▲스웨덴 연구기관이 '독재화'가 진행 중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등 윤석열 정권 언론·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를 정면 비판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보고받지 않았다", "가짜나 조작일 경우 국가업무 방해로 수사된 것 아니겠느냐" 등의 답변을 내놓았다.
30일 경향신문은 사설 <성과 없이 끝난 윤·이 회담, 국정기조 전환은 없었다>에서 "이 대표가 전달한 총선 민심을 윤 대통령은 예고한 대로 듣는 것에 그쳤다"며 "총선에서 혹독한 심판을 받은 윤 대통령이 일절 변화 의지를 보여주지 않은 것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대통령실로선 제1야당 대표와 만나는 협치 모양새만 필요했던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며 "윤 대통령의 '기조 불변' 태도는 정국 대치만 키울 수 있어 유감스럽다"고 했다. 이날 경향신문 관련 기사 제목은 <720일 만의 영수회담, 성과없이 끝났다>, <결렬 수준 회담… 윤 대통령, 국정 부담만 키웠다> 등이다.

한겨레는 사설 <‘변화’ 안 보인 윤 대통령, 총선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에서 "이번 회담은 윤 대통령이 먼저 제안했다. 총선 이후 야당의 국정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도 윤 대통령"이라며 "그렇다면 회담에 임하는 자세 또한 총선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 양보나 절충이 가능한 야당 쪽 요구에 대해 과감히 수용하고 타협하는 첫 선례를 만들 수는 없었나"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윤 대통령은 이번 회담이 왜 열렸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가"라며 "윤 대통령은 민심이 확인된 총선 결과를 받아본 뒤에도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는가"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서로 할 말만 한 尹-李... 협치 불씨는 살려라>에서 "의제 조율 등 성사 과정의 우여곡절이 말해주듯, 양측은 첫술부터 배부르기 어려운 회담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면서도 "윤 대통령부터 불통 이미지 불식을 위해 영수회담 정례화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남은 임기 3년간 여소야대 구도하에선 거대 야당의 협조는 국정운영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720일 만의 尹-李 차담회, 어렵게 말문 텄지만 갈 길 멀어>에서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데 의의를 찾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할 말만 하고 헤어졌다는 한계도 뚜렷했다"면서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여러 요청에 대해 정책이건, 정치적 선택이건 특별히 변화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있는 회담이긴 하지만 먼저 만남을 제안한 대통령이 조금은 유연해질 것이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반면 중앙일보는 사설 <“종종 만나자” 첫발 뗀 영수회담, 신뢰 확보가 중요하다>에서 "영수회담은 때늦은 감은 있지만, 총선 민의에 다가가는 모습이자 정치 복원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며 "협치와 타협의 단초가 마련됐다는 점만으로도 작지 않은 성과"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윤 대통령은 국정 운영 기조를 바꿔 오만과 독선·불통 이미지를 털어내야 하고, 이 대표도 입법 폭주와 방탄국회 유혹에 휘둘려선 안 된다"면서 "강성 지지층에 영합해 상대를 비방하는 언사부터 자제하기 바란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尹·李 의대 증원 연금 개혁 협력하기로, 정치 복원 희망 줬다>에서 "이 대표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두어야겠다'고 했다. 그러나 두 회동의 의미가 작지 않다"며 "사람이 만나니 의료 파행 사태와 연금 개혁안에 대한 협력이 원칙적으로 합의됐다. 이를 정치 복원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도저히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것 같은 사안에서도 양측이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하면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다"며 "그렇게 하라는 것이 총선 민심이기도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KBS와 TV조선은 29일 저녁종합뉴스에서 대통령실 핵심 참모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원고를 꺼내 읽은 것은 사전에 조율된 것인가'라는 질문에 "사전 조율은 없었을 것"이라며 "다만 우리 윤 대통령께서는 야당 대표의 말씀을 경청하겠다, 좀 듣겠다라는 기본 입장이셨기 때문에 15분이면 다소 긴 준비된 연설이었지만 조용히 경청하셨다"고 했다. 정 실장은 "비공개 회담으로 이어져서도 아주 진지하게, 또 이 대표 질문에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상세하게, 성의 있게 답변하는 그런 회담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원고를 읽을 때 대통령 표정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는 질문에 "(윤 대통령께서)그러실 수 있다. 갑자기 알고 계신 것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이 되고, 이 대표가 좀 과한 표현까지 쓰시다 보니 웃으실 수는 없을 거라고 본다"고 했다.
'회담 직후 대통령이 참모들을 소집해 회의했다는 얘기가 있다'는 질문에 홍 수석은 "대통령께서 이 회담에 대해 의미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갖고 계신 것으로 느꼈다"며 윤 대통령이 '이거 자주 해야 되겠다. 소통' '우리가 다음에는 국회 가서, 사랑재에 가서 하는 것은 어떠냐' 등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관련기사
- ‘너는 말해라, 나는 듣겠다’는 영수회담
- 민주당, 영수회담 주요 의제로 "윤석열 정권 언론탄압" 못박아
- 윤석열, 이재명에 '법률수석' 양해 구해…"검찰 그립감 강화"
- 영수회담 '음성 엠바고' 들어보셨나요
- 영수회담 당일 보도된 대통령실 '거부권 수호' 발언
- ‘영수회담’ 줄다리기, 채상병 특검이 손해나는 장사일까
- '방송3법', 영수회담 의제 불발되나
- 윤석열·이재명 모두 시험대에 올린 ‘영수회담’
- 윤 대통령 '언론 쥘 생각 없다' 발언 하루만에 EBS 압수수색
- 이재명의 연금개혁 고대한다는 조선일보
- 조선일보, '윤석열-이종섭 통화' 결국 한마디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