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번 총선의 사전투표율은 31.28%, 예상대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사전투표라는 제도가 정착되면서 사전투표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져 왔다. 여기에 이번에는 그간 사전투표에 대해 소극적이던 국민의힘도 전향적 태도를 보였다. 이 두 가지 요인이 역대 최고의 사전투표율을 만들어 낸 거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는 대다수 식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높은 사전투표율이 최종투표율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선 다르다. 높은 사전투표율이 높은 최종투표율을 예고하는 것인지, 높은 사전투표율이 높은 최종투표율을 견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분산효과’에 불과한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는 점에 대해서만 의견이 일치한다.
이번 선거에 국한해 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적어도 최종투표율이 ‘낮은 수준’이 될 거라는 예상은 소수일 거다. 선거에서 투표율을 좌우하는 건 무엇보다도 주요 정당 지지층이 무엇으로 얼마나 결집하느냐일 텐데, 양당 지지층 모두 강하게 결집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선거 구도가 이미 형성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배경에는 ‘정권심판론’이 있다. 정권심판론의 강력한 효과가 없었으면 야당 지지층이 결집하기 어려운 국면이 이어졌을 거고, 그랬다면 높은 투표율 역시 예상하기 어려웠을 거다. 놀라운 것은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정권심판론은 야당에 의해 거의 모든 선거에서 제기됐지만, 총선에서 이 정도로 위력을 발휘한 일은 흔치 않았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404/308480_211711_2431.jpg)
1등 공신은 역시 윤석열 대통령이다. 일방적인 무리수로 일관하는 국정운영 스타일과 이게 논란이 되면 ‘전 정권 탓’으로 돌파하려는 무책임이 토대를 형성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등장으로 시선이 가려지는가 했지만, 총선을 코앞에 두고 채상병 사망 사건에 관계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하고 무리하게 국외 출국을 시키면서 불에 기름이 끼얹은 형국이 됐다.
고물가로 인한 민생고엔 별다른 대책도 없이 민생토론회라는 명목으로 사실상의 토건 공약을 쏟아내면서 대파 가격을 무심하게 언급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염장을 질렀다’고 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동아일보가 8일 ‘천광암 칼럼’에서 다룬 것도 이런 측면이다. 천광암 논설주간은 “윤 대통령이 하나로마트를 방문한 취지는 ‘장바구니 물가 현장 점검’이다. 그런 현장으로 정부의 납품단가 지원액, 농협 자체 할인, 정부 할인쿠폰을 다 갖다 붙인 가격으로 서울 시내 최저가 수준으로 할인판매를 하는 하나로마트 양재점이 적절한가”라고 썼다. 이러니 사전투표소가 ‘대파’로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는 거다.
한겨레 최혜정 논설위원은 8일 칼럼에서 “돌아보면 윤 대통령의 지난 2년은 ‘총선 승리’를 향해 달려온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무리한 민생토론회 개최, 이준석 축출 및 한동훈 등판, 반국가세력 및 공산전체주의 타령, 연속된 거부권 행사 등을 대통령의 총선 주도권 행사와 지지층 결집을 목표로 한 것으로 해석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런 끝에 여당이 받아든 것은 ‘탄핵저지선’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인데, 더 걱정인 것은 대통령이 아직도 현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는 거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여당의 맞불놓기식 ‘심판론’도 이해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역대 총선은 대개 견제론 대 안정론의 구도로 펼쳐졌다. 안정론은 ‘정부가 일할 수 있게 기회를 달라’는 ‘일꾼론’으로 이어졌고, 유권자들은 이런 구도에서 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위기의 여당이 꺼내든 것은 운동권 심판론, 거야 심판론, 이재명-조국 심판론 등이다. 물론 야당을 겨냥한 이러한 심판론은 사법리스크라는 족쇄를 달고 있거나 2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사람들이 야당 대표가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프레임이었을 거다. 이재명, 조국 대표와 같은 사람들이 주요 야당의 대표를 맡은 것은 흔치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총선을 오직 ‘야당심판론’으로만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유권자를 만만히 본 것이다.
뻔한 일임에도 여당이 오히려 심판론에만 집중하는 이유는 뭘까? ‘일꾼론’은 정권이 국정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겠다는 지향이 분명해야 작동할 수 있다. 목표하는 바가 분명히 있어야 유권자도 그걸 이루기 위한 의지나 노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뭘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대로 내놓은 일이 없다. 공정과 상식을 외치긴 했으나, ‘문재인 정권의 비정상을 바로잡겠다’는 구호에 머무른 게 전부다. 3대 개혁을 오랫동안 얘기했지만 구체적 상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들어본 바 없다. 노동조합에 대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단속이나 킬러문항 제거 등 카르텔 공격, 장기간에 걸친 연금 관련 회의 등은 ‘청사진’이 아니다. 이러니 일을 할 수 있게 힘을 모아 달라는 얘기를 하기가 어렵다. 무슨 일을 할지 알 수도 없는데 무슨 힘을 모아달라고 하겠는가.
대통령도 여당 대표도 결국 검사 출신이다. 청사진을 만드는 것보다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게 왜 잘못인지를 논증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나름대로 ‘민생’으로 포장한 공약을 던지며 일할 기회를 달라는 주장을 하려 했으나 잘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남는 것은 읍소뿐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8일 선대위 회의에서 개헌선, 탄핵 저지선은 막아달라는 식의 호소를 내놨다. 조선일보는 8일자 신문에 높은 사전투표율은 야당에 유리하고 실제 야당이 유리한 지역에서 사전투표율이 높았다는 분석 기사를 배치하고 따라서 본투표가 중요하다는 여당의 판단을 기사 제목에 반영했다. 높은 사전투표율이 어느 쪽에 유리할지 알 수 없다는 다른 신문들의 분석과는 결이 확실히 다르다. ‘범야권 200석’ 등에 대한 경계심을 최대화하면서 보수 유권자층 결집을 모색하는 결집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보수진영의 ‘전략’치고는 초라한 전략인데, 이런 식으로 해서 처참한 결과를 맞이하지 않은 일이 없다. 아니, 처참한 결과가 예상되기에 할 게 이것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야 옳은 말일 것이다.
선거 전반에 할 말 많은 사람은 다들 ‘최악의 선거’라고 한다. 정책이나 가치에 대한 얘기는 실종되고 양당 혹은 그에 가까은 세력의 ‘심판’ 대결에만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 조건 자체가 양당의 유불리 판단 근거에 속하고, 그렇기 때문에 돌고 돌아 이번 선거는 ‘정권심판’이 주된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다. 야당의 말을 빌자면 ‘심층프레임’이다. 결국 선거 결과도 이 조건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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