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2월초부터 한반도를 뜨겁게 달군 한미FTA 협상. 국내외 거센 반대여론에도 협상시한 연장을 거듭하다가 2007년 4월 2일 타결된 이후 대선과 총선을 거치며 잠잠해지고 있다.

이번 <미디어스>의 초대 방통위 정책과제를 묻는 질문에서도 ‘한미 FTA협상 등 미디어 시장 개방의 대비책’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방통위의 주력 정책으로 예상한 답변자는 없었고 핵심과제로 뽑는 응답자도 전체의 3%(1명)에 그쳤다. 정권 교체 이후 새롭게 불거지는 공영방송 민영화 등 미디어 시장 전반의 구조개편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한미FTA 문제는 ‘한물 간 이슈’로 보인다.

이례적으로 17대 국회는 임기말을 앞두고 이달 25일부터 한달간 임시국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지난 주 4박5일간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일정으로 쇠고기 개방이 확정됨에 따라 국회의 한미FTA협상 조기비준설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한미FTA 협상 비준과 정부의 대책 마련 현황 등에 대하여 주목해보아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 미디어스가 4월 2일~10일 방통융합 유관 분야 대표자 및 전문가 60명을 대상(응답자 32명)으로 실시한 '초대 방통위 정책과제' 설문조사 결과 ⓒ미디어스
협상 타결 이후 1년, 정권 교체로 전선 '이동'

스크린쿼터 축소를 선결조건으로 넘겨주면서 시작된 한미FTA는 해를 넘겨가며 8차례의 긴 협상을 진행했다. 국내 민간부문에서는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를 중심으로 농업, 교육, 의료는 물론이고 영화, 미디어, 문화예술 등 각 분야별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져 한미FTA협상 저지를 내걸고 줄기차게 대응해왔다.

언론계의 반발도 격렬했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2006년 7월 13일 신문과 방송의 송출 근무자를 제외한 모든 조합원이 하루간 총파업을 벌였고 그 다음해 2월 집단 릴레이 단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의 일관된 주장은 한미FTA협상은 경제, 문화 등 국내 제도와 일상 전반에 대변화를 가져와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방송분야 한해 매출액은 2004년 기준 73조원으로 한국의 10배 수준으로, 문화부의 2004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문화콘텐츠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41.9%인 반면 한국의 점유율은 1.6%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놓고 '한국과 미국은 ‘경쟁’이라는 개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차이'라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강력한 반대 여론에도 결국 우리 정부는 유례없는 시한 연장을 통해 ‘막판 퍼주기’라는 비판 속에서 지난해 4월2일 협상을 타결했다. 문화예술, 영화, 방송 등을 포함하여 무역, 농업/공공서비스, 자동차, 섬유 등 전 분야에 걸친 대대적인 개방이었다. 미디어 분야 협상 내용은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146일에서 73일로 축소된 스크린쿼터의 현행유보 △외국인의 PP 간접투자 100% 허용 △영화 애니메이션의 쿼터확대 및 1개국가의 수입방송물 쿼터제한을 80%까지 대폭 확대 등이다.

협상 타결 직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및 문화관광위원회 등의 청문회, 국회 공청회 등이 끝났고 지난한 협상 저지 투쟁의 과정을 거친 범국본과 공대위는 타결 이후 활동방향을 전환해 나갔다. 한 범국본 활동가는 “2년여간 집회때마다 경찰이 강경 대응하며 잡아들여서 요즘은 줄줄이 재판 다니느라 바쁘다”는 말로 근황을 전했다. 실제로 범국본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국회 조기비준을 반대와 함께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불가’ 투쟁에 주력해오고 있다.

지난해말부터 '한미FTA저지 시청각미디어공대위' 등도 대선과 총선 국면을 거치면서 전선이동으로 '동력'도 함께 이동했다. 한 언론운동단체 관계자는 “시청각부문에서는 다 내줬다는 쪽과 일정정도 막아낸 측면이 있다는 평가로 엇갈리면서 집중된 이슈로 부각이 안됐다"고 지적하면서 "협상타결 이후 불거진 방통융합 기구의 독립성 확보 및 신문방송 교차소유와 민영화 등 숨가쁜 국면으로 넘어갔다"고 평가했다.

협상 타결후 1년…정부, 대책마련에는 ‘잠잠’

지난해 협상 타결 후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여야의원들은 모두 정부가 내놓은 ‘졸속 대책’을 질타했다. 피해정도에 대한 실태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시급히 타결된 협상으로 대책도 미흡하다는 것이다. 당시 방송위원회는 국회 문광위에 △국내 방송콘텐츠 제작활성화 지원으로 연간 5백억씩 10년간 5천억원의 일반회계를 조성하고 △ ‘pp전용 디지털방송제작센터’ 건립과 운용으로 약 4천억원을 일반회계로 조성하겠다는 대책을 보고해 '막연하고 무책임한 대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천영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국회 문광위)은 지난해 6월 27일 국회문광위 한미FTA 청문회를 마치고 나서 “내실있는 청문회를 기대했지만, 결국 정부의 변명과 불성실을 명백히 확인한 자리였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천 의원은 “한미FTA 문화분야 퍼주기 협상의 장본인인 김종훈 한미FTA 한국측대표,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조창현 방송위원장 등 3인의 증인은 무책임(無責任,), 무염치(無廉恥),무성의(無誠意)의 3무 증언으로 청문회를 기만했다”고 밝혔다. 정부측 증인들은 협상기간 내내 ‘믿어 달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끝나고 나니 입을 모아 ‘불가피했다’고 답했다는 평가다.

한미FTA 청문회장에서 '책임지고 대책마련에 힘쓰겠다'고 장담하던 해당 부처 증인들 다수는 현재 책임에서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은 드라마 '대왕 세종'에 출현중이고, 조창현 옛 방송위원장과 최민희 옛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은 공직에 물러나 있다. 당시 방송위원회 측의 한미FTA협상 담당자였던 곽진희 옛 방송위 국제교류부장은 현재 방송통신위원회로 자리를 옮겨 기획조정실 내의 의안조정팀장을 맡았다.

옛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해체되어 출범한 초대 방송통신위원회는 여전히 개점휴업 중이다. 아직 직원들의 부서발령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콘텐츠정책 주무부서를 자임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도 이렇다할 FTA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콘텐츠 정책을 놓고 옛 방송위와 문화부의 '밥그릇 다툼'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초대 방통위원들이 지난 3월 26일 현판 제막식을 갖고 있다. ⓒ미디어스 정영은
때문에 지금 상황은 다급해진 업계쪽에서 대책 수립에 앞장서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케이블TV방송협회 PP협의회(회장 서병호)는 국내 방송콘텐츠 제작 및 유통 활성화를 주요 내용으로 담은 `디지털 방송콘텐츠 진흥법' 제정에 서두르고 있다. 서병호 PP협의회 회장은 "한미 FTA에 대비하여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이 자생력을 갖추려면 한시적으로라도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법안 제정의 취지를 밝혔다. 이들은 다음주 안에 방통위와 문화부 쪽으로 법안을 전달하고 대책 수립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새정부, 광우병 우려에도 쇠고기 개방…4월 임시국회 한미FTA협상비준 통과 '유력'

대선과 총선이 끝나자 예상대로 한미FTA 비준 통과가 유력시되고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지난 21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4월 임시국회는 17대 마지막 국회인 만큼 결자해지 차원에서 한미 FTA비준 동의안을 18대 국회로 넘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축산농가 및 국민이 우려하는 부분의 대책을 세워야한다”는 원칙적인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에 민주당 강효석 원내대표는 '쇠고기 협상 청문회를 한미 FTA 비준안 처리와 연계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벌써부터 민주당 의원 다수가 협상 타결을 찬성해 온 터라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 비준안 밀어부치기'에 별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 시점에서 1년전 협상 저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시민사회운동권이나 국민들에게 비준저지를 굳게 약속했던 민주노동당 등 정치권 내에서도 비준을 효율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움직임이 크게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전규찬 교수(한미FTA저지 시청각미디어공대위 집행위원장)는 △한미FTA협상 비준통과를 기정사실화해 온 정치권과 언론매체로 인한 대중적인 관심부재 △시민사회운동권의 무기력 상황을 현재 미온적인 비준 반대양상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전 교수는 "한미FTA 협상은 지난 몇년간 대한민국 전체를 들썩거리게 한, 너무도 중대한 사안"이었다면서 "정권교체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신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국민다수가 반대하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 등이 일방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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