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의 정책 과제와 방향을 살펴보기 위해 최근 <미디어스>가 실시한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단연 주목을 받은 분야는 '융합미디어 서비스'였다. 방통위가 가장 주력할 것 같은 예상 정책 과제는 물론이고 방통위가 가장 우선적으로 중점을 둬야하는 분야에서도 모두 'IPTV 등 융합미디어 서비스 활성화'가 1위로 꼽혔기 때문이다.

융합미디어 서비스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각종 기술의 발전으로 방송과 통신이 서로 융합되면서 경계 영역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신규 미디어 서비스를 지칭하는 말이다. 요즘 시행령 제정 논의가 한창인 IPTV(Internet protocol Television)가 대표적인 융합 서비스다.

"융합미디어 혜택이 이용자에게 돌아가는 방송산업 토대를…"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안'(이하 IPTV법)은 IPTV 도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기술 발달에 따른 신규 서비스의 활성화와 유료시장에서의 시청자 매체 선택권을 확대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 'IPTV 시행령' 관련 방통위 전체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자 언론단체들이 4월 17일 방통위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미디어스 정영은
특히 IPTV의 서비스 성격을 '방송'으로 규정하고 사업허가, 겸영규제 등의 상당 부분을 방송법에 준용한 점, 공정경쟁의 틀을 마련하고 △전국사업자의 직접사용채널 제한 △망 동등접근 △이용요금 승인제 등을 도입한 것은 진일보한 내용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시행령과 고시를 제정하고 실제 서비스에 돌입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IPTV 서비스를 둘러싸고 통신사업자와 케이블 SO(종합유선방송)의 이해관계가 적잖이 대립하고 있어 방통위가 이 문제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방통위, 'IPTV 시행령' 전체회의 비공개 진행…'밀실행정' 비판"

현재 케이블TV방송협회는 △KT의 시장지배력 전이 방지를 위해 IPTV 사업자는 별도 법인으로 분리할 것 △콘텐츠 동등 접근권은 방송법 상의 '보편적 시청권'으로 제한할 것 △전기통신설비의 동등 제공이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 △지역단위 IPTV 서비스는 케이블TV의 77개 권역을 적용할 것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KT를 비롯한 통신사업자들은 IPTV 시행 시기의 조기 도입을 주장하며 콘텐츠 동등접근 보장과 관련해 주요 프로그램을 고시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안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겨레 2007년 11월 21일자 25면

그러나 IPTV 서비스 도입을 위한 관련 정책을 합리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초대 방통위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방통위가 지난 16일 전체회의에서 'IPTV법 시행령 토론과 방통위 회의 규칙'을 비공개로 논의하면서 "방통위 설치법에 명시된 회의공개 원칙 위배" "밀실 행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IPTV 서비스의 활성화를 위한 공정경쟁 토대 마련, 수용자 권리 확보, 공익성 제고 등을 위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거쳐 법제의 수정·보완이 이뤄져야 하지만 방통위는 시작부터 '비공개' 방침이라는 악수를 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이날 비공개 회의에서 IPTV법 제정 당시 주요 이슈로 제기됐던 △지배적 기간통신사업자의 지배력 전이 방지 규정이나 △망 동등접근 규정 등의 구체적 방법도 시행령이 아닌 고시에 명시하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민감한 사안을 피해나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공정경쟁 '조건' 마련도 소비자에게 이로운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IPTV와 관련된 논의들이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앞으로 도입될 각종 융합미디어 서비스 규제 정책이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와 파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업적이고 기술적인 발전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콘텐츠 생산·유통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보편 서비스 구현 △표현의 자유를 통한 공론장 역할 등 '미디어의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각종 규제와 진흥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신규 서비스가 속속 도입되면서 미디어 시장의 '공정경쟁' 원칙을 수립하는 문제 역시 초대 방통위가 놓쳐선 안되는 중요한 정책 과제다. 신규 융합서비스의 등장으로 미디어 시장은 새로운 재편과 경쟁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기존 사업자의 시장지배력, 거대 미디어의 여론독과점을 견제하면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는 원칙과 법 체계가 정립돼야 하는 이유다. 물론 여기에서도 "소비자의 이익에 이로운 것인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공정경쟁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방통위가 해야할 몫이다.

▲4월 18일 열린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의 'IPTV 시행령 관련 기자간담회' ⓒ케이블TV방송협회
결국 방통 융합의 혜택을 직접 향유하고 소비하는 국민들에게 합리적인 서비스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정책 방향이 맞춰져야 한다는 뜻이다. 관련 업계의 잇속만 챙겨주는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청자·소비자 중심, 보편적 서비스 내용 확고히 자리잡아야"

이와 관련해 이만제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 책임연구원은 지난 2월 '방송영상산업과 국가경제의 미래' 토론회에서 "방통융합과 디지털전환을 계기로 방송산업을 한단계 발전시키려면 성장단계의 산업구조를 성숙단계로 진입시켜야하고 '산업적 성과'와 '공익적 목표'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디지털 전환과 융합의 혜택이 이용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방송산업적 토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은 "융합미디어 서비스 도입에 있어서 시청자·소비자 중심의 정책, 보편적 서비스 내용이 확고히 자리매김돼야 한다"며 "IPTV 등 유료서비스에서도 장애인과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들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서비스를 접할 수 있도록 방통위가 가격 규제 등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양 총장은 이어 "IPTV 뿐만 아니라 와이브로 등 개인휴대용멀티미디어와 같은 각종 신규 서비스의 규제 방향을 어떻게 상정하는가도 중요하다. 업계의 강력한 요구와 아이디어 속에 무분별하게 도입되면서 콘텐츠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하는 무임승차 방식은 문제가 있다"면서 "멀티미디어·융합미디어의 공공성 문제, 여론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 규제 등도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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