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융합 시대에 대비한 방송·통신 관련 법제를 손질하는 과정에서 방송의 자유와 공익성에 대한 문제가 가볍게 다뤄져선 안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방송관계법 개정, 신문법 개정 또는 폐지,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 새 정부의 미디어 정책이 사회적인 공론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돼선 안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지난 18일 한국언론정보학회(회장 강상현)가 주최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 정책' 토론회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 출범으로 정책기구의 일원화가 불완전하게나마 실현된 상황에서 향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방통융합 법규 마련 문제, 신문법 개정, 신문·방송 겸영 규제 완화 등 이명박 정부에서 예상되는 주요 미디어 정책이 차례로 논의됐다.

▷"방송관계법 정비, 방송의 자유·공공성 해쳐선 안돼"='미디어 융합시대에 대비한 방송관계법 개정과제와 전망'을 발제한 지성우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현재 방송에 적용되는 방송관계법과 통신에 적용되는 통신관계법이 엄격히 구분돼 있어 '방송적 성격을 가진 통신서비스' '통신적 성격을 가진 방송서비스' 등 새로 등장하는 경계영역적 서비스에 대한 규율이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법제 정비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 언론정보학회 주최로 4월 18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 정책' 토론회 ⓒ미디어스 서정은
지 교수는 이어 방송통신 법제의 구체적인 개편방향과 관련해 논의되고 있는 세가지 안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우선 방송법의 정책부분과 사업부분을 분리, 정책부분을 방송과 통신을 아우르는 '방송통신기본법'(가칭)으로 규정하고 현행 '전기통신기본법'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통합하는 안에 대해서는 "법령의 일원화·체계화로 신속하고 효율적인 집행이 가능하지만 이질적인 매체 규제를 단일법 체계로 흡수·통합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적 효율성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법제 정비가 이뤄질 경우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두번째 안으로 방송법의 부분 개정을 통해 융합 현상을 해결하는 방안의 경우에는 "급격한 법제 정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유사방송서비스 가운데 통신적 속성이 강한 서비스까지 방송과 유사한 규제가 이뤄지면 원활한 서비스 제공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제기됐다.

"방통위, 확실한 원칙·논리 확립해 방송·통신사업자 입김에서 자유로워야"

세번째, 방송과 통신의 법 체계를 분리하되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때마다 제3의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 방안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법제 개편에 따른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고 신속한 의사결정과 산업의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신규 서비스를 방송과 통신, 어느 쪽으로 분류하느냐에 따라 규제의 강도나 내용이 달라지고 제3의 법률을 만드는 동안 이미 낡은 기술로 전락해 그 실효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토론자로 참석한 윤호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 책임연구원은 "그동안 미디어 정책이 거대 방송사업자와 통신사업자의 입김이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라면 앞으로 방송통신위원회가 확실한 원칙과 논리를 갖고 사업자를 아우를 수 있는 권위를 가지길 바란다"며 "그 권위라는 것이 법으로부터 나온다고 볼 수 있어 방송관련법이 얼마나 논리와 체계성을 갖추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장기적으로 '새 술을 새 부대'라는 말처럼 모든 법이 통합적으로 개편돼야 하지만 현실을 고려할 때 세번째 안이 현실성이 있다"며 "규범적 차원에서의 기본법은 있더라도 기존 방송법이나 통신법을 유지하면서 두 영역을 존중하고, IPTV 법안처럼 한동안은 제3의 법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또한 "방송의 소유구조 개편도 중요한 과제"라면서 "공영방송이 고립된 섬이 되고 다수가 상업방송이 되면 선정적이고 상업적인 콘텐츠 양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방송 민영화 논의는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 언론정보학회 주최로 4월 18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 정책' 토론회 ⓒ미디어스 서정은
황근 선문대 교수는 "단일법으로 체계를 정비할 경우, 통신이 범위가 넓기 때문에 기본 원칙이 통신에 치우칠 가능성이 높아 공공서비스인 방송의 공공서비스 영역이 위축될 수 있다"며 "따라서 공영방송, 공공서비스 영역을 뺀 나머지 영역에서 수평적 규제체계로 가야하는데 매체간 진입장벽을 해결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공영서비스를 어디까지 정하면서 진입장벽을 유지할 것인지 그 범주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문법 개정, 특정 기업·정치세력 이해관계 좌우 안돼"='신문법과 신문지원제도 개혁방향'을 발제한 류한호 광주대 신방과 교수는 "신문법 개정의 목표가 무차별적인 규제완화인가, 합리적 규제인가"라고 반문한 뒤 "신문법은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일정한 가치를 담고 있고, 특정 기업의 이익이나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수 없다. 단순히 정치적 역학관계의 변화에 따라 시류를 반영한 개정이라면 찬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류 교수는 "여론의 다양성과 신문산업 발전 보호라는 현행 신문법의 핵심가치를 깨뜨릴 수 있는 변화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신문방송 겸영규제의 폐지나 시장지배적 사업자 조항의 폐지 등 새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은 특정 기업가의 이익에 도움이 될지언정 여론의 다양성을 해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토론자로 나선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교수도 "신문법 완전 폐지나 대체 입법은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만 유발시키기 때문에 개정이 필요한 부분만 손질하는 것이 절적하다고 본다"며 "미디어 정책이 한반도 대운하처럼 밀실에서 논의된다면 정말 우려스럽다. 국가의 미디어 정책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충분한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방 겸영 허용, 여론 다양성 훼손 우려"='신문방송 겸영규제 완화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발제한 이용성 한서대 신방과 교수도 "제한적 겸영 허용이든 단계적 허용이든 완전 금지이든 현재의 이같은 논의가 불가피하다면 이를 진전시키기 위한 '위원회' 등을 만들어 종합적인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며 "사회적 공론의 장 없이 일방적인 힘으로 밀어붙여 겸영을 허용한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방 겸영이 단순히 두 미디어 영역간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 이유는 신문이나 방송이 우리나라 여론 다양성에서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심도 깊은 논의와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겸영금지의 취지가 소수자의 이종미디어 겸영을 통한 여론독과점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겸영의 형태이든 출자든 이종미디어에 대한 지배력 행사가 가능한 경영방식은 모두 규제해야 마땅할 것"이라며 "신방겸영 허용이 과연 신문산업에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인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고종원 조선일보 미디어전략실 부실장은 "신방 겸영은 '사상의 자유시장' 관점에서 봐야 하고 사상의 자유시장에선 정부의 간섭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며 "미디어 환경이 많이 바뀌고 새로운 매체들이 계속 들어오는데 과거의 사고를 바탕으로 신문과 방송을 무 자르듯이 나누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미디어의 다양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염려는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은 "자본주의의 천국에서 사장의 자유시장이라는 개념은 이미 파탄난 개념"이라며 "시민사회는 미디어 다양성이 아니라 여론 다양성 훼손, 즉 대통령 선거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론에 대해서 걱정을 하는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외국사례를 제시하며 대세론을 이야기하지만 신문방송 교차소유 등 경쟁 조건을 일방적으로 풀어준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라며 "일방적이고 거대한 힘을 가진 거대매체가 들어와 시장의 광고질서를 흔들고 정상적인 영업활동과 방송활동 영역을 무참하게 짓밟는 것은 산업적 측면에서도 좋지 않고 여론독과점이라는 영역에서도 큰 부작용을 낳을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방청석에서 의견을 밝힌 김승수 전북대 신방과 교수도 "조선일보가 주장하고 있는 '신방겸영을 통한 시너지 효과와 규모의 경제'라는 것은 교차소유 미디어에게만 해당되는 특권이고 그렇지 않은 매체는 망할 수 밖에 없다"며 "신방 겸영이 허용되면 지금보다 강력한 여론 독과점과 중소·영세기업 해체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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